1410년(태종 10)에 현유(賢儒)의 위패를 봉안, 배향하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하여 창건되었다. 1575년(선조 8)에 현의 북쪽에서 가산리로 이전하였고, 1640년(인조 18)에 현재의 위치로 다시 이전하였다. 1758년에 현감 이건(李建)이 중수하였으며, 1967 · 1970 · 1973년에 보수하였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3칸의 대성전, 5칸의 명륜당, 동재(東齋) · 서재(西齋) · 양사재(養士齋) · 교직사(校直舍) · 내삼문(內三門) · 외삼문(外三門) 등이 있다. 대성전에는 5성(五聖), 송조4현(宋朝四賢), 우리나라 18현(十八賢)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건축형태는 명륜당이 있고 그 너머로 대성전이 자리하고 있는 전학후묘(前學後廟)의 형태이다. 명륜당은 양박공 머리에 방풍판을 달고, 겹처마에 두리기둥을 사용하였다.
조선시대에는 국가로부터 토지와 전적 · 노비 등을 지급받아 교관 1명이 정원 30명의 교생을 가르쳤으나, 조선 후기 이래 향교는 교육 기능이 쇠퇴하고 대신 선현에 대한 제향을 통한 교화 기능을 주로 담당하였다. 봄 · 가을에 석전(釋奠)을 봉행(奉行)하며 초하루 · 보름에 분향을 하고 있다.
이 향교의 대성전은 1984년 전라북도 문화재자료(현, 전북특별자치도 문화유산자료)로 지정되었으며, 향교의 운영은 전교(典校) 1명과 장의(掌議) 수명이 담당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