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주시 ()

대동여지도 중 강원도 원주, 횡성 부분
대동여지도 중 강원도 원주, 횡성 부분
인문지리
지명/행정지명ˑ마을
강원특별자치도의 내륙에 있는 시.
정의
강원특별자치도의 내륙에 있는 시.
개관

동쪽은 영월군과 횡성군, 서쪽은 경기도 양평군 · 여주시, 남쪽은 충청북도 충주시 · 제천시, 북쪽은 횡성군과 접하고 있다. 동경 127°45′∼128°13′, 북위 37°08′∼37°30′에 위치한다. 면적은 867.97㎢이고, 인구는 34만 792명(2016년 11월 현재)이다. 행정구역으로는 1개 읍 8개 면 8개 행정동(16개 법정동) 378개 행정리(180개 법정리)가 있다. 시청은 강원특별자치도 원주시 무실동에 있다.

자연환경

치악산 서쪽에 자리 잡은 원주시의 동남쪽에는 험준한 차령산맥이 뻗어 내리며, 비로봉(飛蘆峰, 1,288m) · 삼봉(三峰, 1,073m) · 향로봉(香盧峰, 1,043m) · 남로봉(南盧峰, 1,182m) 등이 있고, 서북부는 비교적 낮은 산맥들이 완만한 경사로 봉우리를 이루면서 덕고산(528m) · 수래봉(壽來峰, 513m) · 당산(541m) · 관모산(冠帽山, 362m) 등이 있다. 남쪽에는 차령산맥의 줄기가 충청북도와 도계를 이루면서 서쪽으로 뻗어 구학산(九鶴山, 968m) · 백운산(白雲山, 1,087m) · 십자봉(985m) · 갈미봉(898m) 등이 있다.

치악산맥의 비로봉∼향로봉 서쪽은 대규모의 산록완사면(山麓緩斜面) 지형과 저위구릉지(低位丘陵地)를 이루면서 원주 시가지 쪽으로 이어진다. 치악산의 최고봉이자 원주의 진산인 비로봉은 소초면과 횡성군 강림면 경계에 위치하며, 시루처럼 생겼다 해서 시루봉이라고도 한다.

1984년 치악산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산세가 웅대 · 수려하며 가을 단풍이 유명해 전국 각지에서 많은 등산객이 찾는다.

남대봉과 백운산에서 발원한 원주천은 지류인 흥양천(興陽川) · 단계천(丹溪川) · 영랑천(永郞川) 등을 합치면서 원주시가지를 남에서 북서쪽으로 관류한다. 그리고 사방의 구릉지를 침식해 원주분지를 형성하고 호저면 옥산리에서 섬강(蟾江)으로 유입되고 섬강은 다시 사제천과 합류하여 남서쪽으로 흐르다가 부론면 흥호리에서 남한강을 이룬다.

횡성에서 흘러온 섬강은 호저면을 지나면서 무장리, 지정면 간현리, 문막읍의 문막리 · 후용리 일대에 비교적 넓고 기름진 충적평야를 형성한다.

내륙에 위치한 관계로 기온의 연교차가 크다. 그리고 여름에는 푄의 영향으로 가뭄이 심하다. 1월 평균기온 -5.5℃, 8월 평균기온 24.4℃, 연평균기온 10.5℃ 이다. 그리고 연강수량은 1,287㎜이다.

역사

삼한시대에 마한(馬韓)의 영역에 속했으나, 백제가 마한을 병합해 백제의 영토가 되었다. 그 후 고구려의 영토가 되어 469년(장수왕 57)에는 평원군(平原郡)이라 하였다. 신라 세력이 북상하면서 678년(문무왕 18) 북원소경(北原小京)이 설치되었다가, 757년(경덕왕 16) 북원경(北原京)이 되었다. 원주지역에 소경이 설치된 이유는 중원소경이었던 충주와 9주 가운데 수약주의 치소가 설치된 춘천 사이의 거점지로서 영서 · 영동 지역에 대한 취약한 지방통치력을 보완할 필요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북원소경을 호위하는 성은 685년에 축조되었는데 현재 원주 치악산 자락에는 영원산성과 해미산성, 그리고 금대산성의 흔적이 뚜렷이 남아있다. 이후 북원소경은 경덕왕대(742∼765년)에 북원경으로 공식 행정지명이 바뀌기도 하는데 동란의 시기인 후삼국기에는 양길이 이곳을 거점지로 삼게 된다.

통일신라시대의 원주지역 문화와 관련된 문헌 자료는 그다지 많이 남아있지 않지만 원주 인근에서 확인되는 폐사지와 불상 등의 유물을 통해 당시 성행했던 불교신앙의 모습을 알 수 있다. 고려시대 이전에 설립된 것으로 추정되는 법천사와 흥법사, 거돈사와 석남사, 구룡사, 황산사, 법흥사, 비마라사, 국형사, 보문사, 석경사, 천왕사 등의 유적과 여기에서 찾아진 불교 유물들이 통일신라시대에 번성했던 원주지역의 불교문화를 보여주는 단초들이라 할 수 있다. 한편 원주지역 일대에는 통일신라기에 풍미했던 신선술이나 도참사상과 연관된 유적들이 전해오기도 한다. 『조선환여승람』에서 확인할 수 있는 당시 원주면 상동리의 건손석이나 판부면 단구리 근방의 돌절구와 같은 유적과 전승은 불교문화와 함께 통일신라시대에 존재했던 원주지역의 또 다른 문화적 성격을 보여준다고 말할 수 있다.

940년(태조 23) 원주(原州)로 개칭되었다. 그리고 995년(성종 14) 전국이 10도 체제로 구획되면서 원주는 중원도(中原道)에 소속되었다. 그 뒤 현종(顯宗) 때 지방행정구역이 5도양계 체제로 개편되면서, 1018년(현종 9)에 주지사(州知事)가 되었다.

1259년(고종 46) 이 지역 사람 송필(松弼)의 반역사건으로 일신현으로 강등되었다. 그 뒤 1260년(원종 1)에 주지사로 다시 복구되었다. 그리고 1269년에는 정원도호부(靖原都護府)가 되었다.

1291년(충렬왕 17) 익흥도호부(益興都護府)가 되고, 1308년에 원주목이 되었다. 그리고 1310년(충선왕 2)에 성안부(成安府)로 되었다가, 1353년(공민왕 2)에 다시금 원주목으로 되었다.

1395년(태조 4)에 강릉도와 교주도를 통합해 강원도가 되면서 원주목은 강원도에 이관되었다. 그런 다음 강원감영의 소재지가 되면서 행정의 중심지가 되었다. 세조 때에는 진(鎭)을 두어 1부 3군 3현과 속현인 주천(酒泉)을 관할하였다.

1683년(숙종 9) 이 고장 여인이 남편을 죽여 강상죄인(綱常罪人)이 발생하자 현으로 강등되었다. 그 뒤 1692년 다시 원주목으로 복구되었다. 그러나 1728년(영조 4) 모반사건을 일으킨 역적 정무중(鄭茂重)이 태어난 곳이라 해서 또다시 현으로 강등되었다.

그러다가 1737년에 이르러 다시금 원주목으로 복구되었다. 당시 원주감영의 감사는 강원 26군을 통괄하였다. 그 때문에 원주는 관동 제1의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의 중심지를 이루었다.

1895년 8도제가 폐지되고 23부제가 실시되면서 원주는 충주부 소속의 원주군이 되었다. 다음 해 13도제의 실시로 충주관찰부에서 강원도 원주군이 되었고, 강원도청은 춘천으로 이전하였다.

그 뒤 1910년 원주는 원주면이 되어 5개 리를 관할하였다. 원주군은 강천면(康川面)이 경기도 여주군으로, 서원면(書院面)이 횡성군으로, 주천면과 수주면이 영월군으로 이속되어 10개 면을 관할하게 되었다.

1919년 3 · 1운동이 발발하자, 3월 27일부터 4월 11일 사이에 유학자 · 지식인 · 서당학생 · 천도교인과 보통학교 학생 등이 주동이 되어 열렬한 만세운동을 전개하였다. 흥업면과 소초면에서는 면 단위로 만세운동을 전개하였다. 그 밖의 지역에서는 마을단위의 시위운동을 벌였고, 특히 봉화시위가 많았다. 1937년 원주면이 읍으로 승격되어 원주군은 1읍 9면을 관할하였다.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이 지역 주민들은 지역수호를 위해 총력을 기울였다. 태장동에는 자유와 정의를 지키려고 싸우다가 산화한 순국충혼 680위를 기리기 위해 현충탑이 건립되었다.

1955년 원주읍이 원주시로 승격함에 따라 원주군은 횡성군으로 개칭됨과 동시에 읍장은 시장으로 14개 동을 통할하고 원성군수는 원주군 문막면, 소초면, 호저면, 지정면, 부론면, 귀래면, 흥업면, 판부면, 신림면 등 9개 면을 통할하였다.

1961년 9월 15일 원주시는 중앙동과 평원동을 중평동, 원동과 인동을 원인동, 학성1~2동을 학성동, 태장1~2동을 태장동, 봉산1~3구를 봉산동으로 통합하여 12개 연합동으로 개편하였다. 1970년 7월 1일 증가로 학성동, 태장동, 봉산동을 각각 2개동으로 분동 3개동을 증설하여 15개 연합동제를 실시하였다. 1973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원성군 판부면 관설리 · 반곡리, 호저면 가현리, 흥업면 무실리가 원주시로 편입되면서 18개 법정동으로 늘어났다. 원주시 청사는 1955년 원주읍이 승격되면서 중앙동의 읍사무소 건물을 2층으로 증축해 이용해 오다가 1973년 11월 5일 일산동으로 신축 이전하였다.

1983년 2월 15일 원성군 소초면 장양리 일부를 원주시에, 원주시 관설동 일부를 원성군 판부면에, 강원도 횡성군 서원면의 매호리, 산현리 및 압곡리 일부를 원성군 호저면에 편입하였다. 1989년 원성군을 원주군으로 개칭했고, 1990년 4월 1일 18개동(중앙동, 평원동, 원동, 인동, 개운동, 명륜동, 단구동, 일산동, 학성동, 단계동, 우산동, 태장동, 가현동, 봉산동, 무실동, 행구동, 관설동, 반곡동)중 5개동(단계동, 봉산동, 무실동, 행구동, 반곡동)을 제외한 나머지동의 구역을 변경하였는데, 단구동 일부를 명륜동과 개운동으로, 우산동 일부를 학성동과 태장동으로, 명륜동 일부를 원동으로, 원동 일부를 명륜동으로 조정하였다. 1992년 9월 29일 원동 일부가 명륜동으로 단구동 일부가 개운동으로 각각 편입되었다. 1993년 부론면의 일부를 문막면으로 편입하였고, 무실동 일부가 단계동으로 편입되었고, 개운동 일부가 단구동으로, 명륜동 일부가 원동과 단계동으로 편입되었다. 1994년 12월 22일 공포로 경기도 여주군 강천면 대둔리 일부가 원주시로 편입되었고, 동년 12월 22일 행정운영 읍면동 조정으로 명륜동이 명륜1 · 2동으로 분리되어 9면 19동이었다. 1995년 1월 1일에 원주시와 원주군이 통합되어 원주시가 되었다. 같은 해 3월 2일에는 문막면이 읍으로 승격되었다. 통합 원주시는 1읍 8면 18동으로 문막읍, 소초면, 호저면, 지정면, 부론면, 귀래면, 흥업면, 판부면, 신림면, 중앙동, 평원동, 원동, 인동, 개운동, 명륜동, 단구동, 일산동, 학성동, 단계동, 우산동, 태장동, 가현동, 봉산동, 무실동, 행구동, 관설동, 반곡동을 행정구역으로 나누었다. 1995년 11월 17일 1읍 8면 18개동 중 일부동 구역 조정을 실시하여 종전 일산동중 일부가 원동, 개운동 일부가 명륜동, 일산동 일부가 학성동, 학성동 일부가 단계동으로 편입 조정되었다.

1999년 1월 1일 시 조례 제341호(1998. 12. 24 공포)로 행정운영 읍면동 명칭 및 구역조정이 단행되어 학성2동과 중앙평원동이 중앙동, 봉산1.2동이 봉산동, 관설동과 반곡동이 반곡관설동, 학성1동이 학성동, 단계동일부를 무실동으로 명칭 및 구역이 조정 변경되었다. 이에 현재 원주는 1읍 8면 16동으로 문막읍, 소초면, 호저면, 지정면, 부론면, 귀래면, 흥업면, 판부면, 신림면, 중앙동, 원인동, 개운동, 명륜1.2동, 단구동, 일산동, 학성동, 단계동, 우산동, 태장1.2동, 봉산동, 행구동, 무실동, 반곡관설동이다.

유물 · 유적

원주시의 지정문화재 중 국가 지정은 12개, 강원도 지정은 31개이다. 국가지정문화재는 국보 1개, 보물 4개, 사적 3개, 천연기념물 3개이고, 강원도 지정문화재는 유형문화재 23, 기념물 3개, 무형문화재 5, 문화재자료 13개이다.

시의 북쪽에서 서쪽으로 관통해 흐르는 섬강 · 남한강 유역일대에서 선사시대의 유적이 발견되고 있다. 지정면 안창리 · 월송리의 섬강 옆과 부론면 흥호리 · 법천리 앞을 흐르는 남한강 옆에서 정교하게 다듬은 구석기시대의 찍개와 주먹도끼가 발견되었다.

이러한 유물의 존재는 남한강 유역에서 구석기시대 사람들이 한동안 마물러 살았음을 알려준다. 뿐만 아니라, 그 시대 사람들이 강줄기를 이동 통로로 해서 상 · 하류로 옮겨가면서 살았음을 알려준다.

신석기시대의 유물로는 부론면 법천리에서 빗살무늬토기가 발견되었다. 이는 당시 사람들이 강 옆의 비옥한 들판을 이용해 농경생활을 하면서 정착하고 살았음을 알려주고 있다.

청동기시대의 유물으로는 문막읍 궁촌리와 부론면 법천리 · 손곡리에서 간돌검 · 간돌화살촉 등이 발견되었다. 그리고 고인돌 유적은 부론면 노림리에 있다. 이는 청동기시대 사람들이 이 일대에서 농경과 물고기잡이 생활을 하였음을 짐작케 해준다.

초기철기시대의 유물으로 호저면 매호리 향미유적에서 민무늬토기와 두드림무늬토기가 대량으로 나왔다. 이 유물들은 시 일대에서도 2000년 전을 전후해 연맹왕국과 같은 사회구조가 있었음을 입증하는 것이다. 부론면 법천리의 삼국시대 고분에서는 쇠칼 · 청동초두 · 굽다리토기 등이 출토되었다.

산성으로는 삼국시대에 축성된 것으로 보이는 판부면 금대리의 원주영원산성(강원도 기념물, 1979년 지정)과 판부면의 해미산성지(일명 금대산성지), 문막읍에 후삼국시대의 견훤산성지 등이 있다.

불교문화재로 행구동의 국향사는 신라 경순왕 때 무착대사가 창건한 절이다. 이곳에는 보암당부도와 조선 정조 때 백일기도를 드렸던 동악제단지가 있다.

신라시대에 창건된 봉산동의 비마라사지에는 봉산동당간지주(강원도 유형문화재, 1976년 지정) · 원주봉산동석조보살입상(강원도 유형문화재, 1982년 지정) · 원주봉산동석불좌상(강원도 유형문화재, 1982년 지정) · 천왕사지보살입상 등이 있다.

태장동 영전사지에 있던 영전사지보제존자사리탑(보물, 1963년 지정)은 고려 말기의 것으로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이전되었다. 또한, 일산동의 일산동오층석탑(강원도유형문화재, 1971년 지정) · 일산동석불좌상(강원도 유형문화재, 1971년 지정)과 천왕사지에서 옮긴 학성동 법웅사의 석탑과 동종이 있다.

그리고 행구동의 보문사에는 조선 초기의 것으로, 옥신에 범서(梵書)가 새겨져 있는 원주보문사청석탑(강원도 유형문화재, 1985년 지정)이 있다. 호저면 용곡리에는 용운사지석조비로자나불좌상(강원도 유형문화재, 1973년 지정) · 용운사지삼층석탑(강원도 유형문화재, 1973년 지정)이 있다.

부론면 정산리의 거돈사지(사적, 1968년 지정)에 거돈사원공국사승묘탑비(보물, 1963년 지정) · 거돈사지삼층석탑(보물, 1983년 지정) 등이 있다. 거둔사원공국사승묘탑(보물, 1963년 지정)은 국립중앙박물관에 옮겨져 있다.

부론면 법천리의 원주 법천사지(강원도 기념물, 1982년 지정)에는 법천사지 지광국사탑비(국보, 1962년 지정) · 법천사지 당간지주(강원도 문화재자료, 1984년 지정)가 있다. 그리고 법천사지 지광국사탑(국보, 1962년 지정)은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옮겨졌다.

지정면 안창리의 흥법사지(강원도 문화재자료, 1984년 지정)에는 진공대사탑비귀부 및 이수(보물, 1968년 지정) · 흥법사지삼층석탑(보물, 1968년 지정)이 있다. 그리 흥법사진공대사탑부석관(보물, 1963년 지정)과 비신은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옮겨졌다.

이 밖에 신림면 성남리의 상원사지석탑 및 광배(강원도 유형문화재, 1971년 지정) · 상원사대웅전(강원도 문화재자료, 1984년 지정), 소초면 학곡리의 구룡사와 구룡사대웅전(강원도 유형문화재, 1971년 지정) · 보광루 · 부도 등이 있다.

그리고 소초면 평장리의 사층석탑, 흥양리의 입석사석탑(강원도 문화재자료, 1984년 지정) · 입석사마애아미타여래좌상 · 부흥사지석탑, 문막읍 동화리의 동화사지, 궁촌리의 염불암지가 있다.

또한 원주비두리귀부 및 이수(강원도 유형문화재, 1982년 지정), 귀래면 주포리미륵불 및 삼층석탑(강원도 문화재자료, 1984년 지정), 흥업면 대안리의 약사암지, 매지리의 석조보살입상 등이 있다.

고건축물로는 일산동에 소재한 강원감영 포정루(강원도 유형문화재, 1971년 지정)를 비롯해, 개운동에 소재한 정충각, 그리고 명륜동에 자리한 원주향교(강원도 문화재자료, 1985년 지정) 등을 들 수 있다. 이밖에 문막읍 반계리에 충효사, 신림면 용암리에 원주용소막성당(강원도 유형문화재, 1986년 지정) 등의 건축물이 있다.

분묘와 비로는 개운동에 선정비, 학성동에 문숙공김제갑충렬탑비와 의병장 이은찬추모비, 태장동에 원주태장왕녀복란태실비(강원도 유형문화재, 1982년 지정), 행구동에 원천석(元天錫)의 묘와 신도비가 있다.

그리고 봉산동에 민긍호의 묘와 의병대장 민긍호충혼탑, 지정면 간현리 작동에 조엄의 묘, 안창리에 김제남의 묘와 김제남신도비(강원도 문화재자료, 1984년 지정)가 있다.

부론면 흥호리에 흥원창지, 손곡리에 임경업 출생지, 법천리에 한백겸 출생지가 있다.

1217년(고종 4) 거란의 침입 때 관군을 이끌던 김취려가 적을 크게 이긴 거란족 격퇴지, 3 · 1만세운동 때 주민들이 독립만세를 불렀던 소초면 평장리 부채고개 등의 유적이 있다.

천연기념물로는 고산식물에서 야산식물에 이르기까지 각종 초식물이 있는 신림면의 원주성남리의 성황림(천연기념물, 1962년 지정)을 들 수 있다. 그리고 문막읍의 반계리은행나무(천연기념물, 1964년 지정), 흥업면 대안 느티나무(천연기념물, 1982년 지정)가 있다. 또한 소초면 학곡리에는 황장금표(강원도 기념물, 1979년 지정)가 있다.

교육 · 문화

조선시대의 교육기관으로는 명륜동에 원주향교가 있었다. 고려 인종 때 창건된 이 향교는 1422년(세종 4) 원주목사 신호(申浩)가 중수하였다. 그리고 그 뒤에도 여러 차례 중수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서원으로는 칠봉서원(七峰書院)과 도천서원(陶川書院)이 있다. 칠봉서원은 1612년(광해군 4)에 호저면 산현리에 설립되었다. 건립 당시는 서당(書堂)이었으나, 1624년(인조 2)에 사묘를 건립하고 운곡(耘谷) 원천석(元天錫)을 봉안하면서 운곡서원(耘谷書院)이라 하였다.

뒤에 한백겸(韓百謙) · 정종영(鄭宗榮) · 원호(元昊) 등을 봉안하면서 칠봉서원이라 하였다. 1663년(현종 4)에 사액서원이 되었다. 도천서원은 1693년(숙종 19)에 지정면 안창리의 흥법사지에 설립되었으며, 허후(許厚)를 배향하였다. 두 서원은 1871년 제2차 서원철폐령으로 모두 철폐되었다.

근대교육기관으로는 1907년 원주공립보통학교가 처음으로 설치되었다. 그리고 1917년 문막공립보통학교, 1920년 흥호공립보통학교, 1927년 사립 동명학원이 설립되었다. 1941년에 중등학교인 원주공립농업학교가 설립되었으며, 광복 후에는 사립으로 육민관중학교가 설립되었다.

교육기관으로는 2015년 현재 초등학교 48개교, 중학교 22개교, 고등학교 15개교, 특수학교 1개교가 있다. 그리고 상지영서대학교, 상지대학교, 한라대학교, 강릉원주대학교 원주캠퍼스, 연세대학교 원주캠퍼스가 있다.

1954년 미국공보원 한미원주문화원으로 발족하여 1964년 사단법인으로 변경된 원주문화원은 치악문화제(雉岳文化祭) 등 각종 문화행사를 주관하고 사회교육에도 이바지하고 있다. 2000년에는 원주문화의 집을 위탁운영하고 있다. 원주문화원 향토지인 원주의 얼 발간, 향토문화 자원의 발굴 및 소개, 원주독립운동자 자료 조사 및 자료집 발간 등의 추진하고 있다. 기타 문화예술단체로는 농악단, 연극단, 무용단, 합창단, 교향악단, 국악단, 기타 이다. 문화시설로는 원주시립도서관, 문막도서관, 평생정보교육관 등과 대학 등 다수의 공공 도서관, 종합공연장, 소공연장, 영화관 화랑, 문화의 집, 청소년관 등이 있다. 체육시설로는 실내체육관, 종합운동장, 양궁장, 골프장 등 있고, 기타 수영장, 테니스장, 무도장 등 신고체육시설은 다수 있다.

민속

이 지방의 대표적 민속놀이로는 호미씻이 · 목침빼앗기 · 수박따먹기 · 농악놀이 · 고누 · 땅재먹기 · 실놀이 · 호드기부르기 등을 들 수 있다. 호미씻이는 7월 중순경 논밭의 김을 다 맨 다음 호미를 씻어두는 행사이다.

이 날 온 마을 사람들은 온갖 음식과 과일을 들면서 노래와 춤판을 벌이고 장치기와 씨름을 즐긴다. 특히, 그 해 농사가 잘된 집 머슴을 머슴 중의 우두머리로 선정해 삿갓을 씌우고 황소에 태워 호강을 시킨다. 이 때 그 집 주인은 보답으로 술과 음식을 잘 차려내어야 한다.

목침빼앗기는 장정들이 하는 놀이이다. 목침을 맞잡고 서로 당겨서 빼앗는 쪽이 이기게 된다. 진 사람은 이긴 사람의 요구조건을 들어주어야 한다.

고누는 판자나 마당에 말밭(말판)을 그린 뒤, 흰 말과 검은 말을 벌여놓고 상대편 말을 많이 따먹음으로써 승부를 가리는 놀이이다. 우물고누 · 네밭고누 · 육밭고누 등 여러 종류가 있고 종류에 따라 노는 방법도 다르다.

수박따먹기는 아이들이 하는 놀이이다. 많은 아이들이 수박으로 가장하는데, 그 중 한 명은 주인할멈으로, 또 한 명은 수박을 따가려는 영감이 된다. 할멈이 수박으로 가장한 아이들을 여기저기 앉혀놓고 있노라면 영감이 수박을 먹고 싶다고 찾아온다.

할멈은 수박이 아직 덜 익었다고 몇 번이나 거절해 보내지만, 영감은 더 이상 기다릴 수 없다면서 한 번에 한 명씩 아이를 데려다 숨긴다. 영감이 아이들을 다 숨겨놓으면 반대로 할멈이 숨겨놓은 아이들을 찾아내어야 한다. 이 밖에 논매기와 지경다지기 등도 놀이화되어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 참가한 바 있다.

이 지방의 동제는 서낭제로 단구동의 당재서낭당 · 백운서낭당, 원동의 서낭당, 태장동의 구룡골서낭당, 행구동의 거름터서낭당 · 향구촌서낭당 · 고둔치(고든재, 直峴)서낭당 등에서 거행되었다.

예전 고둔치의 서낭제는 동악제라 해서, 봄 · 가을로 각 고을의 수령들이 모인 가운데 한양에서 특사로 파견된 사람이 제주가 되어 성대하게 올렸다. 매년 정월 열나흗날 밤 자정이 지나면, 각 마을 단위로 마을 입구 또는 뒷산의 사당이나 제단에 제물을 진설하고 제문을 읽으면서 마을의 태평과 풍년을 빌었다.

제주로 선정된 사람은 제사 1주일 전부터 제단 주위를 청결히 하고 육류를 삼가야 한다. 그리고 일절 외부인의 출입을 막는데, 특히 상을 당한 사람이나 병자를 만나서는 안 된다.

설화 · 민요

주로 지명유래전설과 인물전설이 전승되고 있다. 명륜동에 있는 원주향교의 유래에 대한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해 온다. 남산 기슭에 향교를 지으려고 목재를 쌓아놓고 많은 목수들을 동원해 작업을 진행하였다.

하루는 까치 한 마리가 일하는 목수의 자[尺]를 물고 날아가자 목수가 허겁지겁 쫓아갔다. 날아가던 까치는 어느 곳에 이르더니 자를 떨어뜨렸다.

목수가 자를 주워들고 보니 그 곳이 천하명당이었다. 그래서 향교를 이곳으로 옮겨지었는데 그 곳이 바로 현재의 명륜동 원주향교의 위치이다. 이 명륜동 향교 자리는 하늘이 점지해 준 명당이라 한다.

「쉬고개와 원장사전설」은 다음과 같다. 호저면 만종리에 쉬고개가 있고 그 고개에 서낭당이 있다. 이 쉬고개에서는 누구나 쉬어가야 하는데, 인근에 사는 원장사가 자기 힘을 과시하기 위해 이 곳에서 쉬지 않고 지나쳐버렸다. 이를 본 서낭할미가 화가 나서 원장사를 이 고장에서 살지 못하게 쫓아버렸다는 설화이다.

옛날 문막읍 취병리에 원씨(元氏) 성을 가진 힘센 농사꾼이 살고 있었다. 하루는 길을 가는데 호랑이가 우물가에서 쌀을 씻는 아낙을 해치려고 덤벼들고 있었다. 이를 보고 호랑이를 잡아죽여 그 가죽 · 고기 · 뼈를 팔아서 논 서마지기를 샀다. 그래서 그 논을 ‘호전(虎田)’이라고 불렀다 한다.

지정면 안창리에는 깎아지른 듯한 벼랑바위가 있는데 ‘욕바우’라고 부른다. 누구든지 이 곳에 와서 군수를 비롯한 그 누구를 욕해도 면책되었다 한다. 그리고 관원들은 이 곳을 통과하면서 들려오는 욕을 듣고 그것을 시책에 반영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호저면 옥산리 평천동(平川洞)에는 「피내울전설」이 전한다. 임진왜란 때 이인민(李仁敏) · 선민(善敏) 형제가 이곳에 와 피난하던 중 왜군 척후병 3명을 보고는 죽였다. 뒤따라오던 왜군들이 척후병의 시체를 발견하고는 인근의 주민들을 닥치는 대로 학살해 섬강이 시뻘겋게 피로 물들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건등산(建登山, 260m)은 문막읍에 있는 산이다. 옛날 고려 태조 왕건이 궁예의 부하로 있을 때 혁혁한 무공을 세워 이름을 날리고 있었다. 이 때 왕건은 이 산에 진을 치고 오르내리면서 견훤과 대적하였다. 즉, 왕건이 오른 산이라고 하여 ‘건등산’이라 했다는 전설이다.

원주 치악산과 관련된 설화이다. 옛날 이 산에 한 절이 있어 하루는 불존(佛尊) 수좌(首座)가 법당(法堂) 뒤를 배회하고 있었는데, 큰 구렁이 한 마리가 꿩을 감싸고 있었고, 구렁이와 꿩이 서로를 삼키려 하고 있었다. 아, 이렇듯 서로 물고 버티며 놓지 않는 다툼이 있었는데, 둘이 서로 싸움하는 사이에 어부지리(漁父之利)가 가까이에 있음을 알지 못하였다. 불존 수좌가 지팡이로 구렁이를 풀어 꿩을 구하니, 이날 이경(二更, 밤10시경)에 하얀 형상을 한 노인이 와서 전등(剪燈)의 왼쪽에 앉아 쇠붙이가 부딪치는 것 같은 소리를 내며 말하기를, "나는 이내 이 절의 종을 주조하는 화주승(化主僧)이다.

사방에서 시주를 모아 자선(慈善)을 베풀고자 이 큰 종을 주조하였으나 종소리가 맑지 못하여 도리어 죄업(罪業)에 대한 응보(應報)를 받았다. 살리고 죽이는 것은 구렁이의 뜻이었고, 지금에는 재앙과 액운이 헤아릴 수 없다. 오늘 다행히 꿩 한 마리를 얻어 점심으로 먹으려 하였다. 그대의 자비로 이와 같이 한번 굶주렸으니 반드시 그대를 대신으로 먹어야겠다. 그대의 뜻은 어떠한가. 만약 그렇게 되지 않으려면 나를 위해 종을 쳐서 소리를 내면 이러한 추한 응보를 면할 것이니, 이것 또한 자비이다." 하고 말이 끝나자 홀연히 떠나갔다.

의심스러워 괴상하게 여기는 사이에 앞에 있는 울리지 않던 종이 천천히 하늘 밖으로 소리가 울려 퍼졌다. 어두운 속에서 한 쌍의 꿩을 보니 부리를 사용하여 종을 울렸다. 한 번은 소리가 크고 한 번은 소리가 작아 큰 소리와 작은 소리가 마디가 있었고 한 번은 암컷의 소리였고 한 번은 수컷의 소리여서 암컷과 수컷의 차례가 있었다.

동틀 무렵에 노인이 다시 와서 말하기를, "나는 종이 울리는 힘을 입어 얽어맸던 몸에서 벗어나 승천한다."고 하였다. 해가 솟아 밝아올 무렵에 가서 보니 금구렁이 한 마리가 남쪽 처마 아래에 죽어 있으므로 승(僧)이 죽었을 때의 예와 같이 장사지냈다.

꿩은 자기의 몸을 희생하여 목숨을 구해준 승(僧)의 은혜를 보답했고 승(僧)은 꿩의 목숨을 구해 준 것으로 인하여 목숨을 구하는 보답을 받았다. 구렁이는 승(僧)으로 인하여 생명을 아껴 꿩을 살려 주었고, 꿩으로 인하여 쌓였던 억겁(億劫)의 고통을 벗었으니 이것이 일거삼득(一擧三得)이다. 사물은 비록 같지 않았으나 세상에서 보기 드문 일이었기 때문에 치악(雉樂)으로써 그 산의 이름으로 하였다고 한다.

이 밖에 묘자리를 잡아준 스님의 주의사항을 어겼기 때문에 비명에 간 「임경업장군설화」, 선조를 업고 청천강을 건넌 공신 이응순(李應淳) · 응인(應寅) 형제에 관한 이야기, 원래는 구룡사(九龍寺)였는데 「거북바위전설」에 따라 구룡사(龜龍寺)로 고쳐졌다는 전설 등 많은 설화가 전승되어 온다.

이 고장에 구전되는 민요는 논매기노래와 「아리랑」이 중심이 되고 있다. 유희요 · 타령 등도 많이 불리고 있는 편이다. 논매기노래로는 “굿거리장단에 춤나간다/어화얼씬 단호리야//이장단에 춤못추면/어화얼씬 단호리야//어느장단에 춤을출까/어화얼씬 단호리야…….”라는 「단호리」가 있다.

이는 초벌 논맬 때 불리는 노래이다. 이 때 앞소리꾼이 북을 치며 소리를 하면 모두 앞소리를 받아 “어화얼씬 단호리야”라고 뒷소리를 한다. 노동의 강도나 일의 진행에 따라 장단을 변화시키기도 한다. 또한 논을 맬 때는 「미나리」를 부르기도 하는데, 길게 늘여 빼고 뒷소리 없이 혼자 부르는 경우가 많다.

「원주아리랑」은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라는 일반적인 후렴을 사용한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다양한 주제의 사설을 가진다. 그 중 일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슬슬동풍 재너머 바람에/홍갑사 댕기가 펄펄날린다/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울통에 불통에 저남산봐요/우리도 죽으면 저꼴이되네/……주재소가 멀어서 화토치기 좋구요/님의품이 넓어서 잠자리가 좋아요/……못사귈 친구는 순사나리/아닌밤중 칼소리에 몸서리나네/…….”등 인생의 모든 영역을 모두 담아낼 수 있을 정도로 개방적인 내용이다.

「범벅타령」은 다른 지방과 같이 월령체로 각종 범벅을 엮어 가는 것이 아니라, “……밀쌀찹쌀 다제쳐두고/메물범벅 하여놓면/뒷집의김도령 생각난다/둥글둥글 범벅아/누굴닮은 범벅인가/김도령닮은 범벅이로다.”라고 부른다.

부모의 은공을 생각하는 주제의 의식요가 있다. 그 내용은 “아버님전 뼈를빌고 어머님전 살을빌고/칠성님전 명을빌고 하느님전 복을빌어/인생환도 출생하니 한두살에 철을몰라/부모은공 못다갚고 이삼십세 지나가니/…….”와 같다.

「파랑새요」는 새를 쫓을 때 부르는 기능요이며 동요이다. “새야새야 파랑새야/깝쭉깝쭉 잘논다만/녹두꽃을 떨구고서/청포장사 부지깽이/맛이좋다 어서가라.”라고 부른다. 또한 발랄한 어린이들의 유희요가 있는데, “딱지딱지 코딱지/어름에 빠진 쇠누깔/두퉁두퉁 말부랄/담아먹는 김치독/…….”이라고 부른다. 이 밖에도 「신고산타령」이 많이 불린다.

산업 · 교통

섬강과 원주천 유역의 넓은 평야를 중심으로 농업이 발달하였다. 2015년 현재 농지현황을 보면 전체면적은 9,653㏊인데 농업진흥지역은 3,767.6㏊, 농업보호구역은 1,253.3㏊이다. 그리고는 경지는 논이 4,950㏊, 밭이 4,703㏊이며, 가구당 경지면적은 119.6a이다. 농가가구는 8,074호, 농가인구 2만 2707명이다.

다른 지역에 비해 논이 많아 문막평야와 지정평야는 벼농사 중심지를 이룬다. 주요 농산물은 쌀 · 보리 · 옥수수 등이다. 그리고 과일 · 채소를 중심으로 한 원예농업도 성하다. 잡곡은 신림면 · 소초면 · 판부면, 과일은 소초면 · 지정면 · 초저면 · 문막읍, 채소는 문막읍 · 부론면 · 지정면 등이 중심지이다.

영동고속국도 개통 이후 목축업이 기업화되고 있으며, 사육두수도 증가하고 있다. 한우는 문막읍 · 소초면 · 호저면 · 부론면, 젖소는 문막읍 · 지정면 · 소초면 · 부론면 · 호저면, 돼지는 호저면 · 지정면 · 소초면 · 부론면, 사슴은 문막읍 · 신림면 · 소초면 · 흥업면, 양계는 호저면 · 신림면, 지정면과 무실동 등이 중심지이다.

임야 면적은 6만 2059㏊ 중 국유림 8,263㏊, 공유림 1만 3402㏊, 사유림 4만 311㏊이다. 임상별 임야 면적은 침엽수 2만 2326㏊, 활엽수 1만 6953㏊, 혼효림 2만 2779㏊ 미입목지 1,229㏊이다. 주요 임산물로는 대추 · 밤 · 도토리 · 잣 · 은행 등 종실류와 표고 · 송이 · 느타리 등 버섯류가 있다. 그리고 특산물로는 칠(漆)이 유명하다. 광업은 신림면에서 돌로마이트 · 석회석 등을 생산한다.

원주에는 지방산업단지 3곳과 농공단지 3곳이 운영 중에 있다. 지방산업단지는 문막(41만 290㎡), 우산(35만 5235㎡), 동화(41만 1607㎡) 3곳이 있고, 농공단지는 문막(50만 660㎡), 태장(29만 7524㎡), 동화(33만 2000㎡) 등이 있다. 문막 지역은 영동고속도로와 중앙고속도로가 교차하는 지역으로 대단위 산업단지 많은 기업체들이 입주해 있어 기업도시로서의 기반을 확고히 하고 있다. 또 고부가가치 제품인 첨단의료기기 제조업체들의 입주가 늘어나면서 첨단의료기기 산업이 활성화되고 있다.

상업활동은 예로부터 이루어져 1770년대에 읍내장이 2 · 7일, 안창장(安昌場)과 굴파장(窟破場)이 5 · 10일, 흥원창장(興原倉場)과 주천장(酒泉場)이 3 · 8일에 개설되었다. 1825년에는 전과 같은 날에 국파장이 귀래장(貴來場)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1830년대에는 읍내장이 2 · 7일, 흥원창장이 3 · 8일, 단정장(端亭場)과 주천장이 1 · 6일에 개설되는 등 4개 장으로 감소되었다. 또한 1912년대에는 읍내장과 문막장이 2 · 7일, 부론의 흥원장이 3 · 8일에 개설되는 등 3개 장으로 감소되었다.

1923년대에는 기존의 3개 장이 3 · 8일에 함께 개설되었다. 그리고 1926년대에는 읍내장만이 2일과 7일로 바뀌면서 기존의 3개 장이 그대로 유지되었다. 1938년대에는 읍내장 · 문막장은 종전과 같은 날에, 흥원장 · 운남장(雲南場) · 신림장(神林場)이 1 · 6일에, 황둔장(黃屯場)이 5 · 10일에 개설되는 등 3개의 장이 증설되었다.

1963년대에는 기존의 6개 장에서 귀래면의 운남장이 폐쇄되어 5개로 감소되었다. 그 뒤 1976년대에 운남장이 부활되어 6개 장으로 되었다. 그러나 1994년대에는 읍내장과 문막장 2개만이 남게 되었다.

1895년 강원감영이 폐지되고 새로 강원도관찰부가 춘천으로 이관되기 전까지는 강릉과 함께 강원도를 대표하는 도시로 상업이 발달하였다. 그러나 춘천이 강원도의 행정중심지가 되면서 침체되었다. 그런데도 서울과의 교통이 편리해 1일 생활권이 되었다. 2006년 현재 정기시장 3개소, 일반시장 5개 소, 대규모소매점 3개 소, 중대형 소매점 12개 소가 있다.

교통은 요지에 있어 일찍부터 발전하였다. 즉, 강릉 · 춘천과 충청북도 충주 · 제천 및 경기도 여주 등지와 통하는 국도망의 중심에 있어 1942년 중앙선 철도의 개통으로 더욱 발전이 촉진되었다. 2006년 현재 원주관내 도로망은 영동고속도로와 중앙고속도로 등 2개, 일반국도 3개 노선, 지방도 8개 노선, 시도 1,813개 노선, 군도 21개 노선 농어촌도로 64개 노선이 있다.

영동고속국도가 관내의 문막읍을 비롯해 지정 · 호저 · 소초면과 시가지 북부를 동∼서로 지나고, 중앙고속국도가 호저 · 판부 · 신림면을 지난다. 특히, 영동고속국도와의 만종 분기점은 교통의 요지로 발전되고 있다.

국도망은 원주를 중심으로 5번이 제천∼횡성 · 춘천, 6번이 횡성∼강릉, 19번이 충주, 42번이 평창 · 정선 · 여주 등지와 연결된다. 지방도는 396번이 경기도 양평군 용문과 원주, 401번이 귀래∼문막, 402번이 문막∼귀래, 599번이 문막∼충청북도 충주시 주덕과 연결된다.

한편 시 · 군도는 18개 노선이 있어 각 읍 · 면 지역과의 교통이 이루어진다. 1번 흥양∼학곡, 2번 장양∼평장, 3번 주산∼고산, 4번 매호∼광격, 5번 신평∼용곡, 6번 매지∼덕동, 7번 가곡∼월송, 8번 운남∼도용 등이 있다.

또한 9번 문막∼판대 10번 서곡∼백운, 11번 정산∼흥업, 12번 용암∼학산, 13번 정산∼후용, 14번 금대∼구학, 15번 소림∼운암, 16번 반계∼도전, 17번 흥업∼월송, 18번 황둔∼송계 등이 있다.

원주시 관내 주요도로망은 다음과 같다. 북원로(우산철교~태장동~원주IC~KT&G제조창), 단계로(우산철교~지방합동청사), 원일로(남부시장~지하상가~우산철교), 중앙로(명파앞~중파앞~문화극장앞), 평원로(세종예식장앞~평원주유소~원주역), 남산로(법원~일산초교~버들갈비~원여중), 봉학로(농산물도매시장~시청앞~학성초교앞~태장1동사무소), 무실로(금강제화~원동아파트앞~하나로클럽~교도소삼거리), 일산로(시청정문~기독병원정문~문화원~KBS), 금대로(남부시장~원고앞~단구초교앞~원주영서고~신림면경계), 행구로(덕산아파트~치악교~행구동사무소~관음사), 남원로(남부시장~원주소방서~남원주공업사~흥업삼거리), 현충로(원주경찰서앞~현충탑~태장초교~한일주유소), 서원대로(지방합동청사~단구삼거리), 우산로(천일연립~진광중고앞~삼양판지앞~영덕산업), 봉산로(원주교~원주경찰서~봉2파출소~치악로), 흥양로(태장교~36사입구~흥양리 송문동 삼거리), 치악로(롯데슈퍼삼거리~행구동사무소 삼거리~ 석경촌 ~ 황골), 강변로(진우아파트~태학교~풍물시장~치악교~병영교~원주영서고), 봉화로(농산물도매시장~지방합동청사 사거리), 원문로(원주역~농산물도매시장~대명원~원주양궁장), 단구로(봉학로 사거리~환경청사거리~강원주건강랜드), 단계택지로(코오롱아파트 삼거리~현진아파트), 로아노크로(코오롱아파트 삼거리~무실동송삼부락), 단관택지로(동보노빌리티~KT원주전화건설국~동부교사거리), 흥업로(지방합동청사~연세대학교~양안치정상(귀래면 귀래리 리계), 소초로(송문동삼거리~소초면사무소~교항리횡성시계), 공항로(KT&G제조창~공군부대~둔둔리횡성시계), 호저로(가현동,호저면계~호저면사무소~예수사관학교~광격리횡성시계), 지정로(만낭포주유소삼거리~간현초등학교~안창리양평시계), 문막1로(원주양궁장~문막정보고등학교~반계초등학교~대둔리여주시계), 문막2로(문막교삼거리~경찰전적비), 문막3로(궁촌교삼거리~비두리(귀래면 귀래리 리계), 부론1로(부론면법천리농협주유소 삼거리~경찰전적비), 부론2로(부론면법천리농협주유소삼거리~단강리(귀래면 용암리 리계), 귀래1로(운남리충주시계~귀래면사무소~양안치정상(흥업면매지리 리계) 귀래2로(귀래면사무소사거리~용암리(부론면단강리 리계), 귀래3로(유현삼거리~원주공원묘원~귀래리(문막읍 비두리 리계), 사제로(흥업면사무소사거리~한라대학교~운전면허시험장~사제사거리), 신림1로(판부면금대리경계(치악휴게소)~신림역~구학리제천시계), 신림2로(신림면사무소~황둔터널~황둔출장소~송계리영월시계), 동부순환로(동부교사거리~TBN교통방송국~원주IC(내부순환도로 동쪽통과도로), 서부순환로(원주IC~하이마트~시청사(내부순환도로 서쪽통과도로) 운곡로(행구낚시터삼거리~입석대삼거리), 황골로(돌모루삼거리~흥양초등학교~입석대삼거리) 등이 있다.

중앙선 철도가 지정 · 호저 · 필부 · 신림면과 원주시내를 지나고 있다. 관내에는 삼산 · 동화 · 만종 · 원주 · 반곡 · 신림역 등이 있다. 그리고 판부면 금대리에 차령산맥을 넘어가는 루프식 터널이 있다. 이러한 교통여건으로 원주시는 강원도 남서부의 문호(門戶)의 구실을 하고 있다.

원주시 소초면 의관리 일대 원주공항은 원주~제주 노선을 정기적으로 운항하고 있어 강원 중부 내륙지방 항공교통의 중심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2017년 12월 22일 경강선 KTX가 운행을 시작하였다. 원주시 만종역이 있다.

관광

원주시에는 섬강(蟾江) · 치악산(雉岳山) · 백운산(白雲山) 등이 있어 경관이 수려하다. 신라 말기에 천하에 세력을 떨쳤던 양길 · 궁예 · 왕건 · 견훤 등의 발자취가 남아 있다. 게다가 통일신라 때 북원경(北原京), 조선 초기에 강원감영(江原監營) 등이 설치되어 오랫동안 군사적 · 문화적으로 중요시되어 온 유서 깊은 곳이다.

원주시 관내 주요 관광지는 치악산국립공원(소초.판부.신림면.행구.반곡관설동), 동서울레스피아(지정면 월송리), 한솔오크밸리(지정면 월송.판대리), 간현국민관광지(지정면 간현 안창리), 치악산드림랜드(소초면 학곡리), 치악산자연휴양림(핀부면) 등이 있다. 마을관리휴양지로는 금대리칠봉유원지(호저면 산현.용곡리 일원), 천은사계곡(귀래면 귀래2리), 백운계곡(귀래면 귀래3리), 용수골(파부면 서곡4리) 등이 있다.

무형문화재인 나전칠기장(螺鈿漆器匠), 유형문화재인 강원감영 문루 및 선화당과 석불좌상 · 오층석탑 · 당간지주 등 많은 문화재가 시내 곳곳에 산재해 있다. 그리고 태장동에는 6 · 25 때 원주전투에서 나라를 위해 몸바친 영령들을 기리기 위한 현충탑이 있다.

치악산은 북쪽에 비로봉(시루봉)과, 남쪽에 남대봉이 있다. 이 두 봉우리를 잇는 능선을 따라 동 · 서로 뻗어 내린 여러 계곡은 천태만상의 기암괴석과 폭포 및 울창한 수목들로 이루어져 있다.

옛날에는 고승들이 수도를 하는 산으로 이름이 높았고, 큰 뜻을 품은 호걸들이 넘나들던 산이었다. 그런가 하면 거란의 무리가 원주를 침입했을 때 원충갑(元?甲)이 이 산에서 적을 물리쳤다. 또한 임진왜란 때는 왜적과의 대격전장이 된 산이다.

철 따라 산의 경치가 달라지는데, 봄이면 진달래 철쭉이 온 산을 덮고, 여름이면 녹음이 돋보인다. 그리고 가을에는 단풍, 겨울에는 설경이 극치를 이룬다. 비로봉을 중심으로 해서 치악산 내에서 제일 큰 사찰인 구룡사와 태종대(太宗臺) · 구룡폭포 · 사다리병창 · 투구봉 · 도끼봉 · 창대바위 등이 있다.

남대봉을 중심으로 해서는 수많은 전설을 갖고 있는 상원사(上院寺)를 비롯해 세존대(世尊臺) · 만경대(萬景臺) · 문바위 · 아들바위 등이 있다. 치악산이 1984년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뒤로 치악로의 확장 및 포장, 안내표지판과 주차장 · 숙박시설 등이 갖추어지게 되었다.

이 고장에는 또 백운산(白雲山)이 유명하다. 이 산의 지맥에 해당되는 미륵산은 해발 약 800m로, 선녀봉을 비롯해 12봉의 장엄한 봉우리로 이루어져 있다. 이 산은 1일 등산코스로도 적합하며, 아름다운 황산골의 계곡과 국내 최대의 미륵불상이 있어, 관광객의 발길이 끊일 사이가 없다.

섬강은 옛날 사람들이 치악산보다 먼저 찾았다는 말도 있을 만큼 유명한 강이다. 지정면 간현리마을 앞 섬강변에서 동쪽으로 약 300m 지점에 바위산이 있고, 그 위에는 두꺼비바위가 있다. 이 부근이 원주 제일의 유원지인 간현유원지이다. 이곳은 예로부터 많은 시인과 묵객들이 자주 찾던 명소이다.

원주지역 지역축제는 정월대보름달맞이굿축제, 치악산복사꽃축제, 치악산산나물 축제, 장미축제, 섬강축제, 강원감영제, 원주예술제 및 청소년축제,한지문화제, 국제걷기대회, 원주따뚜, 시민의날 행사 등이 있다. 국제행사로는 원주따뚜와 한국국제걷기대회가 있다. 원주따뚜는 매년 10월 경에 진행되며, 장소는 원주따뚜 전용 공연장에서 펼쳐진다. 2006년 행사 참가국가는 미국, 뉴질랜드, 스페인, 대만, 싱가폴, 러시아, 일본, 프랑스, 트리니다드토바고 등 9개국이다. 국내에서는 육군 · 해군 · 공군 군악대, 해병대 군악대가 참가한다. 행사 주최는 원주시와 국방부가 공동으로 추진하고 있으며, 주관 재단법인 원주국제따뚜가 맡고 있다.

한국국제걷기대회 역시 매년 10월 경에 3일간 펼쳐진다. 행사종목은 5㎞, 10㎞, 20㎞, 30㎞, 50㎞가 있고, 매년 20개국 5만여 명이 참석한다.

읍 · 면
  1. 문막읍(文幕邑)

시의 서부에 위치한 문막읍은 문막공단을 중심으로 한 산업물류 유통의 거점 지역이다. 원주시청을 기점으로 하여 서쪽으로 약 17㎞ 떨어져 있으며, 동쪽으로는 흥업면, 남쪽으로는 부론면과 귀래면, 북쪽으로는 지정면, 서쪽으로는 경기도 여주시 강천면과 각각 인접해 있다. 시 면적의 12%인 104.3㎢로 농경지 19.5㎢, 임야 71.7㎢, 기타 13.1㎢이며 이중 도시계획구역은 4.32㎢이고, 임야가 68.8%를 차지하고 있다. 7,027세대에 인구는 1만 8678명이다.(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문막읍 건등리이다. 거주 인구는 시 전체의 7%를 차지하고 있으며, 반계리 산업단지, 건등리와 동화리 택지개발로 대단위 아파트단지가 조성되고 농촌의 도시화로 인하여 농촌의 정주형태 보다 도시의 정주형태가 급증하고 있다.

본래 사제면(沙堤面)이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건등면(建登面)으로 개칭하였다. 그 뒤 1937년 문막면으로 다시 개칭되었다. 1993년 부론면 일부를 편입하고, 1995년 경기도 여주군 강천면 대둔리 일부를 편입하였다. 그리고 같은 해 읍으로 승격되었다. 면의 동부에 명봉산(鳴鳳山, 599m), 서부에 관모산 · 구천봉(410m), 남부에 덕가산, 북부어 건등산이 있다.

섬강(蟾江)이 면의 중앙부를 관류하면서 문막 · 취병 · 반계 · 포진 · 후용 · 궁촌 일대에 넓고 기름진 충적평야를 이루어 강원 제일의 곡창지대를 이룬다. 주산업은 농업으로, 문막쌀이 유명하다. 주요 농산물은 쌀 · 보리 외에 땅콩 · 사과 · 수박 · 배추 · 당근 등 원예작물이며, 잎담배 생산도 많다.

한우 · 젖소 · 사슴 · 산양 등의 사육이 성해 관내 1위를 차지한다. 문막농공단지를 중심으로 양조와 지퍼용 면테이프, 그리고 판지상자 · 식품가공 · 우유가공 등의 각종 제조업도 활발한 편이다. 동화리에 원주동화농공단지(의료기기전문단지)의 가동으로 의료기기업체의 증가가 두드러지며, 또한 동화지방산업단지의 신규 개발로 전기, 전자 제조업이 크게 증가하고 있다. 더불어 3차 산업인 서비스업종의 경우 점진적으로 증가하고 있으며, 특히 운수, 창고 및 통신관련 업종이 크게 늘어나는 추세이다.

교통은 영동고속도로가 읍의 중앙을 지나며, 원주∼이천을 잇는 42번 국도가 읍의 중앙을 동서로 지난다. 한편, 404번 지방도가 문막 · 부론 · 주덕으로 연결되고, 9번 시도(시도)가 문막∼판대, 13번이 정산∼후용, 16번이 반계∼도전 등으로 연결된다. 또한 읍의 북동부에 중앙선철도의 동화역이 있어 매우 편리하다.

문화유적은 반계리에 은행나무, 비두리에 귀부 및 이수, 건등리에 김두한가옥, 후용리에 견훤성(甄萱城), 궁촌리에 선사유적 등이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병설유치원 2개, 초등학교 4개 교(분교 1개 교), 중학교 1개 교, 고등학교 1개 교가 있다.

문막(文幕) · 포진(浦津) · 궁촌(宮村) · 비두(碑頭) · 후용(厚用) · 반계(磻溪) · 취병(翠屛) · 건등(建登) · 동화(桐華) · 대둔(垈屯) 등 10개 리가 있다. 문화시설로는 천연염색체험장, 옛고을책박물관이 있고, 문화행사는 문막읍민의 안녕을 기원하는 천마산 산신제가 매년 거행된다.

  1. 귀래면(貴來面)

시의 남부에 위치한 면. 총 면적은 71.44㎢로 답 4.12㎢, 전 5.44㎢, 임야 58.28㎢, 기타 3.56㎢이며, 도시계획 지역은 운계1, 2리 일부, 운남1, 3, 4리 일부 등 행정 5개리 지역으로써 면적은 4.45㎢로 상업지역, 주거지역, 일반공업지역, 자연녹지지역, 생산녹지지역 등의 용도로 지정되어 있다.

귀래면은 동경 127˚ 4', 북위 37˚10'에 위치하고 있으며, 시청에서 남서쪽으로 24㎞ 떨어져 백운산과 미륵산의 양 수지간에 위치하며 동으로 제천시 백운면, 서쪽으로는 부론면 단강리, 남쪽으로는 충주시 소태면, 북으로는 흥업면 매지리와 접하고 있다. 행정구역은 5개 법정리와 14개 행정리에 40개 반 43개 자연촌락으로 나뉘어져 있다.

면적 71.44㎢, 940세대에 인구는 2,171명이다(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운남리이다.

후삼국기 경순왕이 머물렀다고 하여 귀할 ‘貴’와 올 ‘來’를 써서 귀한 분이 오셨다는 뜻으로 귀래(貴來)라고 불려진다. 본래 구을파면(仇乙坡面)이었는데 귀래면으로 고쳐 초일 · 분일 등 7개 리를 관할하였다. 그 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용암 · 주포 등 5개 리로 개편되었다.

면의 동부에 십자봉(十字峰, 985m), 서부에 미륵산(彌勒山, 689m) · 봉림산(579m), 남부에 갈미봉(598m), 북부에 덕가산(德加山, 701m) 등이 솟아 있어 산지가 많다. 황산천(黃山川)이 면의 중앙을 남류한다. 그리고 운남리에서 서류해 온 운남천(雲南川)을 합쳐 면의 남부 경계를 이루며 서쪽으로 흐른다. 전형적인 농촌지역으로 미륵산과 십자봉, 천은사 계곡과 백운계곡 등이 있어 자연환경이 쾌적하다.

전형적인 농촌지역으로 주민의 85% 이상이 농업에 의존하며, 귀래리 일부지역은 석산(화강암 원석 등) 지역으로, 운남1리 소재지 지역은 상업지역으로 형성되어 있으나 농업이 주가 되는 산업구조를 갖고 있다.

이들 하천유역인 운남리와 운계리 일대에는 약간의 평야가 발달해 있다. 면의 북부 귀래리에서 발원한 궁촌천(宮村川)은 북서류해 문막읍으로 흘러든다. 하천유역의 평야지대에서 약간의 벼농사가 행해지나, 밭농사가 중심이다. 주요 농산물은 잎담배가 대표적이며 옥수수 · 보리 등의 잡곡과 표고버섯 · 닥나무 등의 재배가 성하다.

교통은 19번 국도가 면의 중앙을 지나 원주∼충주간을 연결한다. 그리고 면의 서부로 404번 지방도가 운계∼문막, 면의 남부에 8번 시도가 운남∼도용과, 15번이 소림∼운남 등으로 연결되어 비교적 편리하다.

문화유적은 주포리에 미륵불 · 황산사(黃山寺)삼층석탑 · 마애여래좌상 · 황산사지, 귀래리에 탑 등이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귀래초등학교와 귀래중학교가 있다.

운남(雲南) · 운계(雲溪) · 귀래(貴來) · 주포(周浦) · 용암(龍巖) 등 5개 리가 있다.

  1. 부론면(富論面)

부론은 강원, 경기, 충북의 삼도에 접해있고 원주시의 서남단에 위치하며, 동으로는 귀래면과 접하고, 서로는 섬강을 경계로 여주시 점동면에, 남으로는 충주시 소태면과 남한강을 경계로 충주시 앙성면에, 북으로는 문막읍과 여주시 강천면에 접하는 남한강변의 전형적인 농촌지역으로 자리잡고 있다.

총 면적 84.06㎢ 중 임야가 59.58㎢로 전체의 71%를 차지하며, 전7.45㎢, 답 8.39㎢, 기타 8.64㎢로 구분된다. 1,219세대에 인구는 2,781명이다.(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법천리이다. 행정구역은 6개 법정리, 16개 행정리에 52개반 60개 자연촌락으로 나뉘어져 있다.

1895년(고종 32년)부터 부론면으로 명명되었으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법천 · 흥호 등 6개 리로 개편되었다. 한강 수상교통의 요지였던 흥원창(興原倉:현 흥호리)이 면 소재지였으나 1936년 대홍수로 흥원창 주민들이 법천리를 중심으로 이주해 감에 따라 1950년 면 소재지를 법천리로 이전하였다. 1965년 1월 27일 단강 1 · 2리를 통할하는 단강출강장소를 설치되었고 1998년 9월 교통의 발달, 농촌인구의 감소로 인하여 폐지되었다. 고려시대부터는 12조창의 하나인 흥원창(興原倉)이 있어 경제활동의 중심지였으므로 많은 사람들이 내왕하였다. 부론이란 지명은 '말이 많이 오가는 곳'이란 뜻으로 흥원창을 중심으로 많은 사람이 왕래하면서 이야기 거리가 전해졌기 때문에 불려진 지명이다. 또 조선 후기 3대판서가 정치에 대한 식견을 얻고자 할 때에는 이곳에 와서 의논을 한 뒤 정사를 다스렸다고 하는 것에서 지명이 유래되었다고 한다.

현계산(玄溪山, 535m) · 봉림산(579m) · 황학산(黃鶴山, 332m) 등이 솟아 있으며, 곳곳에 산간분지가 발달되어 있다. 섬강이 면의 북부를 서류해 남한강에 합류한다. 그리고 남부경계를 이루면서 서류해 온 황산천을 합류한 남한강은 면의 서부 도의 경계를 이루면서 북서류한다.

섬강과 남한강의 합류 지점에는 넓고 기름진 평야가 발달해 농경지로 이용된다. 이 곳은 옛날에는 한강 수운의 요지로 흥원창이 있던 자리이다. 산지가 많으나 남한강유역의 충적지에서 벼농사가 이루어진다. 그리고 고추 · 잎담배 · 땅콩 · 채소 등의 생산이 많다.

교통은 영동고속국도가 면의 북부를 지나고, 401번 지방도가 법천∼운남, 599번이 주덕 · 문막 · 원주를 연결한다. 그리고 11번 시도가 정산∼흥업, 13번 시도가 정산∼후용 등으로 연결되는 등 면의 서부를 남북으로 지나고 있어 편리하다.

문화유적은 법천리에 법천사지광국사현묘탑비 · 법천사지 · 법천사지당간지주 · 고분 · 법천사지석조물부재, 정산리에 거둔사원공국사승묘탑비 · 거돈사지삼층석탑 · 거돈사지, 흥호리에 흥원창지, 손곡리에 임경업 출생지 및 추모비 등이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단강초등학교와 부론초등학교, 부론중학교, 부론고등학교가 있다.

법천(法泉) · 흥호(興湖) · 손곡(蓀谷) · 정산(鼎山) · 노림(魯林) · 단강(丹江) 등 6개 리가 있다.

  1. 소초면(所草面)

시의 북동부에 위치한 면. 소초면의 동쪽에는 치악산이 웅립(雄立)해 있고 북쪽에는 섬강유역으로 중산간지대를 형성하고 있다. 총 면적의 20%에 해당하는 농경지는 대부분 비옥한 땅으로서 지리적으로 동쪽으로 횡성군 강림면과 안흥면에 접하고 남쪽으로 태장동, 북쪽으로 횡성읍에 접한다. 면적은 103.09㎢로 전7.39㎢, 답 7.09㎢, 임야 76.67㎢, 기타 11.94㎢로서 호당 경지면적은 1.2㏊이다. 4,035세대에 인구는 1만 409명이다.(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평장리이다. 관할구역은 장양1~9리, 흥양1~5리, 수암1~4리, 평장1,2리, 의관1,2리, 둔둔1~3리, 교항1,2리, 학곡1,2리로서 29개 행정리를 관할하고 있다. 법정리는 8개이고 129개반에 59개의 자연촌락이 있다.

본래 원주군 지역으로 흥양리의 소새바우의 이름을 따서 소초면이 되었다. 초일 · 분일 등 10개 이를 관할하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교항 · 둔둔 등 8개 이로 개편되었다. 1965년 1월27일 학곡출장소가 원성군 조례 제63호에 의거 원주시 소초면 학곡리 402번지에서 업무을 시작하여 교항2리, 학곡1,2리를 관할하고 있었으나 1998년 9월 30일 출장소 직제가 폐지되면서 학곡 현장민원실로 전환되었고 1999년 3월 31일 폐쇄되었다. 1983년에는 장양리 일부가 원주시로 편입되었다.

면의 남동부에 차령산맥에서 뻗은 치악산지의 최고봉인 비로봉을 비롯해 매화산(梅花山, 1,084m) · 삼봉(三峰, 1,072m) 등이 솟아 있어 높고 험한 산지를 이룬다. 북부에는 덕고산(德高山, 528m)이 솟아 있다.

남동부 산지에서 발원한 학곡천(鶴谷川)이 면의 동부를 북류하며, 섬강이 서부 면계를 이루며 남류하고 있다. 학곡천 유역의 한곡리와 평장리, 흥양리의 구릉지, 섬강유역의 둔둔리 · 의관리 등지에 약간의 충적평야가 발달해 벼농사의 중심을 이룬다.

주요 농산물은 쌀과 보리 · 밀 등의 곡물 외에 복숭아 · 배 등의 과수재배가 성하다. 그리고 한우와 젖소의 사육도 많이 한다.

교통은 영동고속국도가 면의 북서부를 통과하고, 원주∼평창간의 42번 국도가 이와 병행한다. 그리고 원주∼홍천간의 5번 국도가 서부를 통과하고, 흥양∼학곡을 연결하는 1번 시도와 장양∼평장을 잇는 2번 시도가 있어 매우 편리하다.

문화유적은 학곡리에 구룡사대웅전 · 구룡사보광루 · 황장금표, 흥양리에 입석사석탑, 평장리에 미륵불 · 부채고개 3 · 1운동유적 · 석조불두, 수암리에 석탑재 · 와요지, 교항리에 불두 등이 있다. 이 일대는 원주지구 제1의 명소인 치악산국립공원의 구룡사지구에 해당되어 많은 관광객이 찾아 든다.

교육기관으로는 2개의 병설유치원과 교학초등학교, 두둔초등학교, 흥양초등학교, 소초초등학교가 있다. 한국담배인삼공사원주제조창, 강원도자연학습원 등이 있다.

평장(平庄) · 장양(長陽) · 흥양(興陽) · 수암(壽巖) · 의관(衣冠) · 둔둔(屯屯) · 학곡(鶴谷) · 교항(橋項) 1 · 교항 2 등 9개 리가 있다.

  1. 신림면(神林面)

시의 남동부에 위치한 면. 신림면의 지리학적 위치는 동경127°57′, 북위 37°21′지점이며 차령산맥(車嶺山脈)인 치악산(雉岳山)과 백운산(白雲山)의 중간에 위치한다. 면적은 127.62㎢(원주시 면적의 14.71%)로, 총 면적의 77.7%이상이 산악지대인 산간분지형이다. 1,739세대에 인구는 4,008명이다.(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신림리이다. 7개 법정리, 14개 행정리에 59개반 47개 자연촌락으로 나뉘어져 있다.

본래 원주군 지역으로 금창리에 큰 굴이 있어 구을파면(仇乙破面)이라 하였다. 1895년(고종 32) 전국을 23부(府) 331군(郡)으로 행정구역 변경시 가리파면(加里坡面)으로 불리다가, 그 뒤 가리파면(加里坡面)으로 개칭하고 일리 · 이리 등 6개 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구학 · 금창 등 7개 리로 개편되었다. 조선 광무(朝鮮光武) 9년인 1916년에 신림면(神林面)으로 개칭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유래(由來)에 의하면 신림면(神林面)은 지역 주민들이 자연림을 존중하여 성황림(城隍林)을 신성한 수림(樹林)이라고 신성시 한 것에 기인한다고 한다. 1954년 5월 신림면 청사가 건립되었고, 1955년 9월 1일에는 원주시와 원성군으로 분리되면서 원성군 신림면이었다. 1995년 1월 1일 원주시 · 군 통합으로 원주시 신림면이 되었고, 1998년 9월 23일 황둔출장소를 황둔현장민원실로 개편하였다.

치악산과 백운산(白雲山) 사이에 남대봉 · 감악봉(紺岳峰, 886m) · 석기암(石機巖, 906m) · 구학산(九鶴山, 971m) 등 높고 험한 산들이 면 전체를 둘러싸고 있어 대부분 지역이 산지로 이루어져 있다.

용암천(龍巖川)이 면의 서부를 남류하며, 유역의 신림리 · 용암리 일대에 좁은 충적평야가 발달하였다. 그리고 북동부의 주천강 지류인 서만이강 유역인 황둔리 · 송계리에도 좁은 평야가 형성되어 있다.

주요 농산물은 하천유역에서 벼농사가 소규모로 이루어진다. 그리고 옥수수를 비롯해 양배추 · 마늘 · 들깨 등의 밭농사가 중심을 이룬다. 이 밖에도 도토리 · 버섯 · 잣 등 임산물의 생산량도 많다. 석회석 · 플로마이트 · 쇄석 등의 광산이 있고, 엿 · 후춧가루 등의 식품공장도 있어 소득을 높이고 있다.

교통은 중앙선 철도가 신림역을 거쳐 면의 서부를 남북으로 통과한다. 도로는 원주∼제천간의 중앙고속국도와 5번 국도가 철도와 나란히 지나고 있다. 또한 402번 지방도가 백운 · 신림 · (터널개통)황둔 · 영월을 동서로 연결하고, 12번 시도가 용암∼학산, 14번 시도가 금대∼구학, 18번이 황둔∼송계와 연결되는 등 편리하다.

문화유적은 성남리에 성황림 · 상원사지석탑 및 광배와 상원사대웅전, 용암리에 용소막성당과 석탑, 황둔리에도 석탑이 있다. 치악산국립공원 남부진입로로서 상원사와 남대봉의 입구가 되어 많은 관광객이 찾아든다. 신림리 주거지는 통일신라 · 고려 · 조선시대의 주거지로 추측되며 중앙고속도로 지표조사 과정에서 처음 조사된 곳으로 용암천이 흐르는 동쪽강변 일대의 농경지가 유적이다. 발굴 유물의 현황을 보면 통일신라시대 토기편 3점, 고려청자편 1점, 조선백자편 6점, 조선시대 기와편 8점, 질그릇 6점 등이다.

교육기관으로는 신림초등학교와 황둔초등학교, 신림중학교와 황둔중학교가 있다. 또 가나안농군학교가 있다.

신림(神林) · 금창(金倉) · 구학(九鶴) · 용암(龍巖) · 성남(城南) · 황둔(黃屯) · 송계(松桂) 등 7개 리가 있다.

  1. 지정면(地正面)

시의 북서부에 위치한 면. 동경 127도 4분 북위 3도 2분으로 원주시청으로부터 12.3㎞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북쪽으로는 경기도 양평군 양동면, 동북쪽으로는 호저면과 경계를 이루고 있다. 지형적으로 북쪽은 대체로 높은 산악지대로 형성되어 있다. 한강지류인 섬강이 동북쪽으로 횡성군과 경계를 이루어 흘러내리다가 남쪽을 향하면서 본 면의 중앙부를 가로질러 면 소재지인 간현리를 비껴 흐르고 있으며, 동쪽 및 동남쪽으로 비교적 야산이 형성되어 있고 서북에서 서남으로는 해발 200~500m의 산악지대가 형성되어 있다.

면적은 89.5㎢ 로 전 6.08㎢(6.79%), 답 5.32㎢(5.94%), 임야 75.8㎢(84.7%), 기타 2.3㎢(2.57%)로 되어있다. 1,484세대에 인구는 3,672명이다.(2008년 현재). 면 소재지는 간현리이다. 7개 법정리, 18개 행정리에 51개반 43개 자연촌락으로 구성되어 있다.

본래 지향곡면(地向谷面)으로 일리 · 이리 등 5개 리를 관할하였다. 1908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횡성군 서원면 옥계리까지를 관할 구역으로 하여 면사무소 이름을 상지곡면으로 정하였고, 면사무소를 월송리 송호등에 두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정지안면(正之安面)의 본일 등 5개 리를 병합하고 두 면의 이름을 따서 지정면이 되었다. 1915년 행정구역 재조정에 따라 서원면 옥계리가 횡성군에 이속되어 면사무소 이름을 지향곡면으로 개칭하여 면사무소를 간현2리 작동으로 이전하였다. 1921년 면명을 다시 지정면으로 개칭하였고, 1948년 6월에 교통중심지인 간현1리로 면사무소를 이전하였다. 1964년 신평출장소를 신설하여 신평리, 무장리 주민들의 민원행정을 처리하다가 1973년 무장리가 호저면으로 이속됨에 따라 1976년 신평출장소를 폐지하였다.

면의 남부는 낮은 구릉성 산지로 이루어져 있으며, 북부는 400m 내외의 산지로 이루어져 있다. 삼산천(三山川)이 면의 서부를 남동류해 섬강에 흘러든다. 한편, 섬강은 중앙을 곡류하면서 남류해 유역의 월송리 · 간현리 · 안창리 일대에는 비옥한 충적평야를 발달시켰다.

전체 가구 중 75%가 농업에 종사하고 있으며 10%가 영세 소매, 숙박, 음식업에 종사하며 제조업에 3%, 기타 12%의 산업구조 형태로 이루고 있다. 주요 농산물은 쌀이다. 그 밖에 채소와 과일의 재배도 활발하다. 특히 무 · 배추 · 참외 · 수박 등이 많이 난다. 신평리는 옻칠산지로 유명한 곳이다. 그리고 젖소와 돼지 등의 사육도 성하다.

교통은 중앙선 철도가 삼산역을 거쳐, 면내를 동서로 지난다. 그리고 영동고속국도가 면의 남부를 지난다. 또한 396번 지방도가 원주∼용문으로 연결되고, 7번 시도가 가곡∼월송, 9번이 판대∼문막을 연결해 점차 편리해지고 있다.

문화유적은 안창리에 진공대사탑비 · 흥법사지삼층석탑 · 김제남신도비 · 흥법사지, 간현리에 조엄의 묘와 공적비가 있다. 간현리에 있는 간현협곡의 간현유원지는 1984년 국민관광지로 지정 · 개발되어 원주 제일의 유원지로 손꼽힌다.

교육기관으로는 신평초등학교와 지정초등학교, 지정중학교가 있다.

간현(艮峴) · 판대(判垈) · 안창(安昌) · 보통(普通) · 가곡(佳谷) · 월송(月松) · 신평(新坪) 등 7개 리가 있다.

  1. 판부면(板富面)

시의 중남부에 위치한 면. 판부면은 동남방으로 치악산과 백운산 계곡을 끼고 있고, 백운산을 중심으로 동쪽으로는 횡성군, 서쪽으로는 흥업면과 무실동, 남쪽으로는 신림면과 충북 제천시, 북쪽으로는 반곡관설동과 단구동에서 인접하고 있으며, 금대천과 서곡천을 끼고 산지와 평야로 형성되어 있다. 시 전체의 7.8%인 68.1㎢로 임야 60.1㎢, 농경지 5.6㎢, 기타 2.4㎢이다. 2,659세대에 인구는 6,085명이다.(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관설동이다. 3개 법정리, 12개 행정리에 57개반 19개 자연촌락으로 구서되어 있다.

본래 판제면(板梯面)이라 해서 상일 · 하일 등 4개 리를 관할하였다. 그러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부흥사면(富興寺面)의 일리 등 5개 리를 병합해 판부면으로 개칭하였다.

1955년에 단구리(丹邱里)와 행구리(杏邱里)가 원주시로 편입되었다. 1964년 2월 1일 서곡출장소를 신설하였고, 1967년 12월 1일 행정구역 개편으로 15개 리로 행정리를 개편하여 금대 3개 리, 서곡 4개 리, 관설 4개 리, 반곡 4개 리를 관할하였다. 1973년에는 관설리와 반곡리가 또한 시로 편입되었다. 1982년 12월 15일 관설4리가 본면으로 편입되어 신촌리로 명칭이 변경되었고, 이에 따라 서곡 4개 리에서 5개 리로 분할되었고, 1983년에는 원주시 관설동 일부를 병합하였다. 1993년 서곡5리(경천원)가 해체되었으며 1997년 5월 7일 서곡 5, 6, 7리가 다시 신설되어 법정 3개 리(금대리, 서곡리. 신촌리), 행정 11개 리(금대 3개리, 서곡 7개리, 신촌 1개리)로 조정되었으며, 서곡1리 일부가 단관지구 택지로 개발되었다. 2004년 10월 1일 서곡 8개 리가 분할 신설되어 행정 12개 리(금대 3개리, 서곡 8개리, 신촌리)로 현재에 이르고 있다.

면의 동부에는 치악산지의 일부인 향로봉(1,043m) · 남대봉 등 높고 험한 산이 솟아 있다. 또한, 서부에도 작은 산줄기가 뻗어 있고, 남쪽에는 충청북도 제천시와의 경계에 백운산(白雲山, 1,087m)이 있다.

백운산에서 발원한 백운천이 면의 서부를 분류하며 흥업면으로 흘러들고, 봉천(鳳川)이 면의 동부를 북서류하면서 약간의 평야를 발달시키고 있다. 주산업은 농업으로, 서곡리의 백운천 유역에서 벼농사가 행해지고 있다. 그리고 옥수수 · 보리 · 밀 등도 생산된다. 도시 근교지역으로서 벼, 고추, 과수재배 등 1차 산업이 주종을 이루고 특히 과수 품종이 우수하여 과수재배농가들은 고소득을 올리고 있다. 또 금대계곡의 맑은 물과 수려한 경관으로 관광객들도 많이 내방하고 있어 서비스업의 비율이 높아지고 있다.

교통은 중앙선 철도가 치악역을 지나 면의 중앙을 남북으로 달리고 있다. 그리고 중앙고속국도가 만종∼제천을 연결한다. 또한 5번 국도가 원주∼제천간을 철도와 나란히 달리고, 10번 시도가 서곡∼백문, 14번이 금대∼구학간을 연결시키고 있어 편리하다.

문화유적은 금대리에 영원산성과 해미산성지, 서곡리에 선사유적지 등이 있다. 치악산 지역이 국립공원으로 지정됨에 따라 금대리 일대의 개발이 이루어지고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금대초등학교와 서곡초등학교가 있다.

금대(金垈) · 서곡(瑞谷) · 신촌(新村) 등 3개 리가 있다.

  1. 호저면(好楮面)

시의 북부에 위치한 면. 동으로는 섬강을 경계로 소초면, 태장2동과, 북쪽과 서쪽으로는 횡성군 서원면과, 남으로는 흥업면, 지정면과 인접하고 있으며, 1973년 행정구역 변경으로 단계동이 가로막은 2개 지역으로 분단되어 있다. 총 면적 77.10㎢ 중 임야가 55.0㎢로 전체면적의 71%를 차지하며, 경지면적이 15㎢, 기타 7.1㎢이다. 면적 77.11㎢, 1,891세대에 인구는 4,755명이다.(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주산리이다. 10개 법정리, 17개 행정리에 69개반 55개 자연촌락으로 구성되어 있고, 각 마을별 집성촌이 많이 분포되어(4개리 6개성씨) 있고, 만종3리는 나환자 정착촌으로 150여 가구가 거주하며, 대부분 영농에 종사하는 전형적인 농촌지역이다.

본래 호매곡면(好梅谷面)으로 일리 · 이리 등 7개 리를 관할하였다. 그러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저전동면(楮田洞面)의 4개 리를 병합해 호저면으로 개칭되었다.

1955년 우산리(牛山里) · 사천리(沙川里)가, 1973년에 가현리(加峴里)가 원주시로 이관되고, 지정면 무장리를 편입하였다. 또한, 1983년 횡성군 서원면의 산현리 · 매호리와 압곡리 일부를 병합하였다. 1995년 만종 대보아파트 신축으로 만종5리가 신설되었다.

면의 서부는 구릉성 산지로 이루어져 있으며, 동부로 갈수록 낮아진다. 원주천(原州川)이 면의 남부를 북류해 옥산리에서 섬강(蟾江)에 합류한다. 그리고 섬강은 소초면과 경계를 이루며 남서류하다가 원주천과 합친 다음 서류해 지정면으로 흘러간다.

이들 하천의 유역인 옥산리와 무장리 일대에는 비교적 기름진 충적평야가 발달해 주민들의 생활 중심지가 되고 있다. 농업이 주요 산업으로 벼농사가 중심이다. 또한, 포도 · 복숭아 · 마늘 · 들깨 등도 생산되며, 양돈과 양계는 시내 1위를 차지한다. 칠(漆)과 닥나무는 이 고장의 특산물로 유명하다.

교통은 영동고속국도와 중부고속국도의 인터체인지가 만종리에 있고, 여주∼평창으로 연결되는 42번 국도가 면의 남부를 가로지른다. 그리고 주산∼고산간의 3번 시도를 비롯해 매호∼광격의 4번 및 용곡∼신평간의 5번 등과 중앙선 철도의 만종역이 있어 편리하다.

문화유적은 산현리태실, 용곡리에 용운사지석조비로자나불좌상 · 용운사지삼층석탑, 고산리에 선돌이 있다. 그리고 주산리에는 옛 선비들이 물고기가 노니는 것을 보며 술을 마시고 시를 읊었다는 관어대(觀魚臺)터가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병성유치원 2개 교, 고산초등학교, 만종초등학교, 산현초등학교, 호저초등학교, 호저중학교가 있다. 경찰청원주면허시험장이 있다. 칠봉유원지가 있다.

주산(珠山) · 무장(茂長) · 옥산(玉山) · 대덕(大德) · 고산(高山) · 광격(光格) · 산현(山峴) · 매호(梅湖) · 용곡(龍谷) · 만종(萬鍾) 등 10개 리가 있다.

  1. 흥업면(興業面)

시의 중남부에 위치한 면. 원주시청에서 남쪽으로 7.08㎞거리에 있으며 동쪽으로는 판부면, 서쪽으로는 문막읍과 지정면, 남쪽으로는 귀래면, 북쪽으로는 호저면과 인접하고 있으며, 위도 상으로는 동경 128도 10', 북위 37도 4'에 걸쳐 있다. 원주시 총면적의 6.9%인 59.59㎢로 도시 12.09㎢(20.3%), 관리 19.9㎢(33.4%) 농림27.6㎢(46.3%)이다. 2,959세대에 인구는 6,604명이다.(2015년 현재). 면 단위로는 전국에서 유일하게 3개 대학(연세대학교 원주캠퍼스, 한라대학교, 강릉원주대학교)이 있어 교육의 중심지역으로 성장하고 있고, 대학타운이 발달되어 있다. 면 소재지는 흥업리이다. 행정구역은 법정리 4개, 행정리 16개에 68개 반 42개 자연촌락으로 구성되어 있다.

본래 대안리에 있는 거무산의 이름을 따서 금물산면(今勿山面)이라 하였다.

그 뒤 본일 · 분일 등 5개 리를 관할하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판제면 본삼리(本三里)와 사제면의 분칠(分七) · 분팔(分八) 등 리를 병합하였다. 그리고 1916년에는 흥업면으로 개칭하였다. 1973년 무실리가 원주시로 이관되었다. 1984년 12월 22일 현 청사를 신축하여 이전하였고, 1996년 10월 1일 매지택지 개발 지구에 매지현대 APT가 입주하여 매지4, 5리가 신설되었다. 2000년 1월 14일 흥업면 사제1리에 거장APT 신축으로 사제4리가 동년 6월 16일 흥업1리에 경동APT 신축으로 흥업4, 5리가, 동년 10월 27일 매지1리에 청솔APT신축으로 매지6, 7리가 신설되었다. 2004년 10월 1일자로 경동APT가 통합되어 흥업4리로 현대APT가 통합되어 매지4리, 청솔APT가 통합되어 매지5리로 조정되었다.

면내에 동북쪽에 포복산(胞腹?, 419m), 남쪽에 덕가산(德加山, 680m) 등이 솟아 있어 산지가 많다. 그리고 이들 산지 사이를 매지천이 북류하면서, 귀래면에서 발원한 백운천과 합류한다. 또한, 대안천이 면의 서부를 북동류해 사제리에서 매지천과 합류한다.

매지천과 백운천이 합류하는 흥업리 일대와 사제리에는 비옥한 충적평야가 발달하였다. 그리고 대안천 유역의 대안리에는 소규모의 침식분지가 발달하였다. 주업인 농업 외에 토마토 · 참외 · 잎담배 등이 재배된다. 특산물로는 밤이 생산된다. 제조업으로는 소규모의 고압수은 등 안전기 제조공장이 있다. 3개 대학의 대학타운으로서 학생들을 상대로 한 서비스업이 급격히 증가하고 있으며 원주시 중심부와 가까운 거리에 위치하고 있어 운수, 창고업이 서서히 늘어나는 추세이다.

교통은 원주∼충주 간의 19번 국도가 매지천 계곡을 따라 나있고, 6번 시도가 매지∼덕동, 11번이 흥업∼정산, 17번이 흥업∼월송간을 연결해 매우 편리하다.

문화유적은 대안리에 느티나무 · 운산태봉 · 고분, 매지리에 석조보살입상 등이 있다. 소설가 박경리(朴景利)의 역작인 ‘토지(土地)’의 산실인 토지문화관은 1999년 준공되었다. 토시문화관은 3천여평의 부지에 4층 규모로 신축되었으며, 연구 및 창작, 집필활동을 할 수 있는 24개소의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또 흥업초등학교 교정에는 기미독립만세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공공기관으로는 원주시농업기술센터, 생활환경사업소 등이 있고, 교육기관으로는 국립원주대학교 부설 유치원과 병설유치원, 매치초등학교, 흥업초등학교, 육민관중학교, 육민관고등학교, 강릉원주대학교, 연세대학교 원주캠퍼스, 한라대학교가 있다.

흥업(興業) · 사제(沙堤) · 대안(大安) · 매지(梅芝) 등 4개 리가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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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사(高麗史)』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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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행정구역요람』(행정자치부,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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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향토대관』(강원도민일보사,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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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지명요람』(건설부국립지리원, 1983)
『북원의 자취』(원성군, 1981)
『향토의 전설』(강원도, 1979)
『원주·원성향토지』(원주문화원, 19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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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지명총람』(한글학회, 1967)
『강원도지』(강원도, 1959)
『강원도지』(1940)
「범해선사문집 자웅종기」(원주문화원, 『원주얼』 9호)
원주시(www.wonju.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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