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서산(瑞山). 자는 유부(濡夫). 호는 저정(樗亭). 아버지는 정숙공(靖肅公) 유방택(柳方澤)이다.
1369년(공민왕 18) 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하였다. 춘추관수찬으로서 박실(朴實)·김도(金濤) 등과 더불어 명나라 과거에 참여하였다. 우왕 때 판내부시사(判內府寺事)가 되었다.
창왕 때 조준(趙浚)이 전제개혁안(田制改革案)을 주장하자 시중 이색(李穡)이 옛 법을 가벼이 고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반대하는 데 찬성하여 신구(新舊) 대립에 동참했다.
1391년(공양왕 3) 판전의시사(判典儀寺事)로서 전제개혁을 비난하였기 때문에 광주(光州)로 유배되었다. 조선 왕조가 개창된 후, 1407년(태종 7)에 좌사간대부(左司諫大夫)가 되었다. 시호는 문정(文靖)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