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진주(晉州)이다. 삼사좌사(三司左使) 유지정(柳之淀)의 아들이다.
공민왕 때 형부상서(刑部尙書)로 있다가 서북면부원수가 되어 도원수 염제신(廉悌臣)과 함께 원나라의 침입을 방어하였다.
1361년(공민왕 10) 반성(潘誠)이 인솔한 홍건적이 침입할 때 병마사로서 총병관 김용(金鏞)과 더불어 황해도 금천(金川)의 금교역(金郊驛)에 나아가 홍건적의 난을 평정하고, 그 뒤 문하평리(門下評理)가 되었다.
제주도의 목호(牧胡: 몽고 출신의 牧子)들이 명나라가 말 2,000필을 요구하는 것을 거절하므로, 명나라가 이들을 응징하기 위하여 군대를 보낼 때 양광도도순문사(楊廣道都巡問使)가 되어 방어의 책임을 맡았다. 찬성사상의(贊成事商議)에 이르러 죽었다. 시호는 정정(貞靖)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