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8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수적(手迹)으로서는 ≪금쇄동집고 金鎖洞集古≫·≪금쇄동기 金鎖洞記≫·≪산중신곡 山中新曲≫이 있다. ≪금쇄동집고≫는 윤선도가 금쇄동에서 은거생활을 하면서 도연명(陶淵明)·이백(李白)·백거이(白居易) 등 중국시인들의 시구를 모아 자필로 쓴 것과 자신이 지은 한시, 우리말로 쓴 단가를 합하여 첩(帖)으로 만든 것이다.
≪금쇄동기≫는 금쇄동에 은거하면서 지은 자필본 한시집이다. ≪산중신곡≫은 보길도(甫吉島) 금쇄동에서의 자신의 불우한 생활과 풍자적인 내용을 담아서 지은 단가 20편을 모은 고본(稿本)으로, <만흥 漫興>·<조무요 朝霧謠>·<오우가 五友歌> 등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어 국문학적으로 그 가치가 높이 평가되고 있다.
그리고 문서로는 ≪은사첩 恩賜帖≫ 2권, ≪예조입안 禮曹立案≫이 있다. 그 중 ≪은사첩≫은 인조와 봉림대군(鳳林大君 : 뒤의 孝宗)이 윤선도 집안에 쌀·베·잡물 등을 내린 사송장(賜送狀)을 모아 첩으로 만든 것이다. ≪예조입안≫은 1602년(선조 35) 6월 2일에 예조에서 발급한 계후입안(繼後立案 : 생전이나 사후에 자신의 대를 잇도록 양자를 세운 것을 문서로 작성한 것)이다.
그 내용은 윤유심(尹唯深)의 둘째 아들인 선도를 큰댁 유기(唯幾)에게 양자로 들이는 일을 예조로부터 입안을 받은 것이다. 이는 조선시대의 가족제도연구에 좋은 자료가 된다. 종손 윤영선(尹泳善)이 소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