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원회(元會), 호는 청헌(聽軒). 이항복(李恒福)의 6대손이며, 이세장(李世章)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이문좌(李文佐)이고, 아버지는 진사 이종열(李宗說)이며, 어머니는 강석창(姜碩昌)의 딸이다. 도사 이종악(李宗岳)에게 입양되었다.
1768년(영조 44) 음덕으로 관직에 나와 온릉참봉 · 덕산현감을 지내고, 1775년 문과정시에 을과로 급제, 예조좌랑 · 사간원정언 · 홍문관부수찬 · 대사간 · 대사성 · 이조참의 · 황해도관찰사 · 이조참판 등을 역임하였다.
그 뒤 1800년(정조 24) 공조판서에 오른 다음, 이어 대사헌 · 우참찬 · 형조판서 · 한성부판윤 · 좌참찬 등을 지냈다. 1804년(순조 4) 우의정을 거쳐 1805년(순조 5) 좌의정에 올랐다.
우의정으로 있을 때, 성학(聖學)에 힘쓰고 정치기강을 바로잡을 것 등 제반시책을 건의하여 받아들여졌으며, 1793년(정조 17) 오은군(鰲恩君)에 피봉되었고, 1808년(순조 8) 나이 75세에 봉조하(奉朝賀)가 되었다. 저서에는 시문을 모은 『청헌유고』가 있다. 시호는 효정(孝定)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