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이중(彛仲), 호는 서하(西河). 이극강(李克綱)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이유록(李綏祿)이다. 아버지는 영의정 이경여(李敬輿)이며, 어머니는 박임경(朴任景)의 딸이다. 뒤에 도정 이후여(李厚輿)에게 입양되었다. 서울에 살았으며, 송시열(宋時烈)을 사사하였다.
1650년(효종 1) 진사시에 합격하고, 1652년 증광문과에 을과로 급제한 뒤 검열·정언·지평·교리 등을 역임하였다. 현종초 수찬으로 있을 때 허적(許積)을 탄핵하다가 병조좌랑에 전직되었고, 검상·헌납·응교·사인·나주목사 등을 역임하였다. 이조와 호조의 참의를 거쳐 광주목사(光州牧使)로 있을 때 병으로 사직하였다.
그 뒤 승지·대사간·대제학에 이어 공조·이조·병조·호조의 참판을 거쳐, 1683년(숙종 9) 강화부유수가 되고, 예조·호조·이조의 판서를 차례로 역임한 뒤 지돈녕부사(知敦寧府事)가 되었다.
문장과 글씨에 뛰어나 많은 시문을 남겼으며, 김수항(金壽恒)·이단하(李端夏)·남구만(南九萬) 등과 교유가 깊었다. 1677년 광주목사로 있을 때에는 임진왜란 때의 의병장 박광옥(朴光玉)의 사우를 중수하고, 김덕령(金德齡)을 제향하였다.
나주의 서하사(西河祠)와 흥덕의 동산서원(東山書院)에 제향되었다. 시호는 문간(文簡)이다. 저서로는 『서하집』 17권이 있고, 편서로 『고시선(古詩選)』·『김장군전(金將軍傳)』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