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언 ()

유교
인물
조선후기 대사헌, 전라도관찰사, 형조판서 등을 역임한 문신. 학자.
이칭
미숙(美叔)
농계(聾溪), 취몽헌(醉夢軒)
시호
정간(正簡)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636년(인조 14)
사망 연도
1697년(숙종 23)
본관
한산(韓山: 지금의 충청남도 서천)
출생지
미상
주요 관직
대사헌|전라도관찰사|형조판서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조선후기 대사헌, 전라도관찰사, 형조판서 등을 역임한 문신. 학자.
개설

본관은 한산(韓山). 자는 미숙(美叔), 호는 농계(聾溪)·취몽헌(醉夢軒). 관찰사 이동직(李東稷)의 아들이며, 이색(李穡)의 후손이다. 14세에 송시열(宋時烈)의 문하에 들어가 수학, 1660년(현종 1) 사마시에 합격하였다.

생애 및 활동사항

1669년 정시문과에 을과로 급제, 예문관의 벼슬을 거쳐 정언·지평을 역임하고 1681년(숙종 7) 응교를 거쳐 경상도관찰사로 특진된 뒤 승지·대사간·대사헌 등을 지냈다. 1689년 기사환국 때 초산(楚山)에 유배되었다가 1694년 갑술옥사로 풀려나와 형조판서에 올랐다.

이어 대사헌으로 오도일(吳道一)을 탄핵하다가 전라도관찰사로 좌천되었다. 그 뒤 다시 내직에 임명되었으나 벼슬을 사직하고 고향인 청주에 내려갔다.

그 뒤 예조판서를 비롯하여 판윤·참찬·지중추부사 등의 벼슬로 조정에서 여러 번 불렀으나 뜻을 굽히지 않고 끝내 벼슬에 나아가지 않았다. 김창협(金昌協)은 이수언의 용퇴와 지조를 높이 칭찬하였다 한다. 청주의 국계사(菊溪祠)에 제향되었다. 시호는 정간(正簡)이다.

참고문헌

『도곡집(陶谷集)』
『숙종실록(肅宗實錄)』
집필자
이민식
    • 항목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