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월성(月城). 자는 희로(希魯), 호는 관란(觀瀾). 경주 출신. 아버지는 훈도 이계간(李季干)이며, 어머니는 영천이씨(永川李氏)이다. 김대유(金大有)의 문인이다.
1558년(명종 13) 생원·진사시에 모두 합격하여, 추천으로 1560년 건원릉참봉(健元陵參奉), 1562년 사옹원제조(司饔院提調), 1564년 상의원제조(尙衣院提調), 1572년(선조 5) 상서원직장(尙瑞院直長), 1580년 종부시전첨(宗簿寺典籤), 1585년 사도시직장(司䆃寺直長) 등에 차례로 제수되었으나 모두 부임하지 않았다.
어머니의 상을 당하여서는 3년 동안 시묘를 하는데, 아침저녁으로 절을 올린 자리에 땅이 한자[尺]나 패었으며, 호랑이가 짐승을 잡아다가 제물로 바쳤다고 한다. 이에 관찰사가 문장과 효행을 조정에 알려 정려가 내려졌고, 마을 사람들은 그 효행에 감탄하여 마을 이름을 ‘충효동(忠孝洞)’으로 고쳤다.
만년에는 금학산(金鶴山)에 들어가 삼회당(三會堂)이라는 서당을 짓고 은거하며, 후진 양성에 힘을 기울여 문도가 수백명에 달하였다. 임진왜란 때에는 최동보(崔東輔)·최여호(崔汝琥)와 함께 의병을 일으켜 고을을 지켰다. 도연서원(道淵書院)에 봉향되었다. 저서로는 『관란문집(觀瀾文集)』 1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