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흥양(興陽). 자는 숙재(叔載), 호는 월간(月澗). 아버지는 이수인(李守仁)이고, 동생은 이준(李埈)이다.
동생 이준과 함께 유성룡(柳成龍)의 문하에서 이황(李滉)의 학설을 배워 주자서(朱子書)를 전심으로 공부하였다.
임진왜란 때 이준이 의병을 일으켜 왜적과 싸우다 적중에 포위된 적이 있었는데, 그 때 이전이 동생을 데리고 적진 탈출에 성공하여 형제가 무사할 수 있었다.
뒤에 이준이 감복하여 화공을 시켜 이 모습을 그리게 하고 「급난도(急難圖)」라 이름하니, 당시의 명공·거경들이 이 일을 노래로 읊었다고 한다. 1603년(선조 36) 사마시에 합격, 세마에 제수되었으나 나아가지 않았다. 인조 때에는 지례현감에 제수되었으나 사퇴하였다. 상주의 옥성서원(玉城書院)에 배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