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가정(可貞), 호는 송와(松窩). 이을충(李乙忠)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이원길(李元吉)이고, 아버지는 현감 이형(李衡)이며, 어머니는 안동권씨(安東權氏)로 직장 권명리(權明利)의 딸이다.
1462년(세조 8) 생원·진사 양시에 합격하였고, 1468년 식년 문과에 급제하여 영창전참봉(永昌殿參奉)을 거쳐 예빈시경력(禮賓寺經歷)에 제수되었다. 1470년(성종 1) 직언을 하다가 장기에 귀양간 뒤 1472년에 풀려나 내자시주부(內資寺主簿), 예조좌랑·정랑이 되었다.
1482년 헌납에 제수되고, 이어서 장령·제용감첨정(濟用監僉正)·봉상시부정(奉常寺副正)·사옹원부정(司饔院副正)·시강원보덕을 거쳐 1489년에 다시 사헌부장령·집의에 올랐다. 1490년 제주목사로 나갔다가 임지에서 죽었다.
그는 직언과 충간을 사명으로 생각하여 조정 간신의 처벌, 궁중불사(宮中佛事)의 저지에 힘썼으며, 환관들의 농간을 막고, 내수사의 높은 이자를 받아 치부하는 행위 등을 탄핵하였다. 모현사(慕賢祠)에 봉안되었다.
저서로는 『송와문집(松窩文集)』 4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