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성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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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정보
해남 이진성지
해남 이진성지
건축
유적
국가유산
전라남도 해남군 북평면에 있는 조선후기 에 축조된 석성의 성곽터. 진성.
시도자연유산
지정 명칭
이진성지(梨津城址)
분류
유적건조물/정치국방/성/성지
지정기관
전라남도
종목
전라남도 시도기념물(1988년 12월 21일 지정)
소재지
전남 해남군 북평면 이진리 1227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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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전라남도 해남군 북평면에 있는 조선후기 에 축조된 석성의 성곽터. 진성.
내용

1988년 전라남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둘레 약 2.5㎞인데, 지금 남은 성벽의 길이는 약 940m이다.

정유재란이 있은 1598년(선조 31)에 진을 설치하고, 1648년(인조 26)에 수군만호진(水軍萬戶鎭)으로 승격되어 성을 축조하였다고 전해오고 있다.

성의 동쪽으로 바다 건너에 달도(達島)가 있고 동북쪽으로 달량진성(達梁鎭城)이 마주보이고 있다. 성은 남쪽과 북쪽의 구릉을 이용하여 남북으로 긴 타원형이고, 동문과 서문터가 길로 이용되고 있다.

서문에는 둘레 34m, 높이 5m, 너비 2.2m의 옹성(甕城 : 성문의 앞을 가리어 빙 둘러친 성문을 방어하는 작은 성)이 남아 있다. 이 앞으로는 또한 목책(木柵)도 있었다고 알려져 있다. 성의 주위로 호수를 만들어 왜군이 침입하지 못하게 하였다.

이곳은 제주도로 왕래하는 출입통제소였으며, 제주의 말과 공물(貢物)을 상륙시키는 곳이었다고 한다. 성은 석축으로 기록에는 둘레가 2,478척이고 성안에 우물이 두 개가 있었다고 하였다.

전선(戰船) 한척, 병선(兵船) 한척, 사후선(伺候船 : 水營에 딸린 전선의 하나) 두척이 배치되어 있었고, 수군만호 이하에 군관 12명, 진리(鎭吏) 18명, 사령(使令) 6명, 군뢰(軍牢) 2명과 방군(防軍) 241명이 배속되어 있었다.

참고문헌

『여지도서(輿地圖書)』
『영암읍지(靈巖邑誌)』
『대동지지(大東地志)』
『강진병영성(康津兵營城)』(목포대학교박물관, 1991)
『문화유적총람(文化遺蹟總覽)』하(下)(문화재관리국, 19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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