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주메뉴 바로가기

임억령(林億齡)

조선시대사인물

 조선전기 병조참지, 담양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확대하기축소하기프린트URL의견제시

트위터페이스북

의견제시
항목명임억령
이메일올바른 형식의 이메일을 입력해 주세요.
의견
10자 이상 상세히 작성해 주세요.
첨부파일
의견제시 팝업 닫기
영역닫기영역열기 정의
조선전기 병조참지, 담양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키워드
영역닫기영역열기개설
본관은 선산(善山). 자는 대수(大樹), 호는 임석천(林石川). 임득무(林得茂)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임수(林秀)이고, 아버지는 임우형(林遇亨)이며, 어머니는 박자회(朴子回)의 딸이다. 박상(朴祥)의 문인이다.
영역닫기영역열기생애 및 활동사항
1516년(중종 11) 진사가 되었고, 1525년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그 뒤 부교리·사헌부지평·홍문관교리·사간·전한·세자시강원설서 등 여러 직위에 임명되었다.
1545년(명종 즉위년) 을사사화 때 금산군수로 있었는데 동생 임백령(林百齡)이 소윤 일파에 가담하여 대윤의 많은 선비들을 추방하자, 자책을 느끼고 벼슬을 사퇴하였다. 그 뒤 임백령이 원종공신(原從功臣)의 녹권(錄券)을 보내오자 분격하여 이를 불태우고 해남에 은거하였다.
뒤에 다시 등용되어 1552년 동부승지·병조참지를 역임하고, 이듬해 강원도관찰사를 거쳐 1557년 담양부사가 되었다.
그는 천성적으로 도량이 넓고 청렴결백하며, 시문을 좋아하여 사장(詞章)에 탁월하였으므로 당시의 현인들이 존경하였으나 이직(吏職)에는 적당하지 않았던 것으로 사신(史臣)들이 평하였다. 전라남도 동복의 도원서원(道源書院), 해남의 석천사(石川祠)에 제향되었다. 저서로는 『석천집』이 있다.
영역닫기영역열기 집필자
집필 (1997년)
원영환
영역닫기영역열기 관련 멀티미디어 (1)
페이지 상단으로 이동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