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풍천(豊川). 자는 성능(聖能), 호는 서재(西齋). 임환(任喚)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임홍망(任弘望)이고, 아버지는 집의(執義) 임형(任泂)이며, 어머니는 이의저(李義著)의 딸이다.
1713년(숙종 39) 진사가 되고 이듬해 증광시에 병과로 급제하였으며, 1717년 가주서를 거쳐 1721년(경종 1) 지평(持平)·사간원정언 등을 지내다가 신임사화로 삭직당하였다.
1725년 노론이 다시 집권하자 장령(掌令)으로 기용되었고, 6개조의 소를 올려 탕평책을 반대, 소론제거를 주장하다가 유배되었으며, 1727년 소론이 집권하면서 제주도에 위리안치되었다.
1729년 사헌부의 요청으로 다시 역모의 죄명으로 친국을 받을 때 끝까지 왕의 각성을 촉구하며 항거하다가, 언관을 벌주면 안 된다는 전통에도 불구하고 왕권의 확립과 국가기강을 세운다는 명분으로 여덟 차례의 고문 끝에 옥사하였다. 정조 때 관직이 복구되고 이조참판에 추증되었다. 저서로는 『서재집』이 있다. 시호는 충헌(忠憲)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