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공민왕 때 현유(賢儒)의 위패를 봉안, 배향하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하여 창건되었다. 1562년(명종 17) 부윤 이정(李楨)이 중건하였으나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으며, 1615년(광해군 7)도천산(到天山) 아래에 이전하였다가 1728년(영조 4) 현재의 위치로 이전하였다.
1900년과 1922년에 각각 대성전을 중수하였고, 1924년에 명륜당, 1926년에 대성전을 중수하였다. 현존건물로는 6칸의 대성전, 8칸의 명륜당, 5칸의 모성루(慕聖樓), 4칸의 동재(東齋), 평삼문(平三門), 4칸의 하당(下堂),2칸의 제기고(祭器庫) 등이 있다. 건축형태는 명륜당이 있고 그 뒤쪽에 대성전이 있는 전학후묘(前學後廟)의 형태이다. 남향한 경사면에 3단으로 층을 이루어 아래부터 외삼문, 명륜당, 대성전으로 배치되었고, 대성전 왼쪽에는 서무, 뒤쪽에는 화계가 있다.
대성전에는 5성(五聖), 송조4현(宋朝四賢), 우리 나라 18현(十八賢)의 위패를 봉안하고 있다. 조선시대에는 국가로부터 토지와 전적 · 노비 등을 지급받아 교관 1명이 정원 30명의 교생을 가르쳤으나, 조선 후기 이래 향교는 교육 기능이 쇠퇴하고 대신 선현에 대한 제향을 통한 교화 기능을 주로 담당하였다. 봄 · 가을에 석전(釋奠)을 봉행(奉行)하며 초하루 · 보름에 분향하고 있다.
1985년에 경상북도 문화재자료(현, 문화유산자료)로 지정되어 있으며, 운영은 전교(典校) 1명과 장의(掌議) 수명이 담당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