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철호 ()

근대사
인물
일제강점기 때, 대한통의부 소대장, 정의부 중대장, 조선혁명군 유격대 대장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이칭
이칭
치욱(致旭), 수만(守萬), 철호(哲浩)
인물/근현대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892년(고종 29)
사망 연도
1945년
출생지
평안북도 의주|평안북도 창성
정의
일제강점기 때, 대한통의부 소대장, 정의부 중대장, 조선혁명군 유격대 대장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생애 및 활동사항

본명은 장치욱(張致旭), 이명은 수만(守萬)·철호(哲浩). 평안북도 의주 출생(1886년 평안북도 창성에서 출생하였다는 이설도 있음). 1920년대 초부터 남만주에 망명하여 항일무장투쟁에 투신, 일제 및 친일주구배와 싸웠다.

특히 1921년과 1922년에는 임시정부와 연계된 광복군총영(光復軍總營)의 주요대원으로 활동하며 평안북도 삭주의 일본경찰 주재소와 금융조합 등을 습격하여 용맹을 떨쳤다. 1924년경 남만주에서 성립한 독립운동단체 대한통의부(大韓統義府)의 제3소대장으로 활약하였고, 정의부(正義府)가 창건되자 제5중대장을 맡았다.

1929년 남만주의 독립운동단체들을 통합한 국민부(國民府)가 성립하고, 조선혁명당 산하 무장조직인 조선혁명군(朝鮮革命軍)이 창건되자 유격대 8소대장·제2대장을 담당하였다. 이때 장철호의 부대는 통화현(通化縣) 일대의 교민보호와 밀정 등 주구배 숙청, 항일무장투쟁에 앞장섰다.

장철호의 주거지 및 활동지가 중국 길림성(吉林省) 이통현(伊通縣) 고유수(孤楡樹) 또는 길돈(吉敦)철도 연변 교하(蛟河)라는 기록이 있다. 장철호의 최후에 대해서는 잘 알 수 없는데, 1940년대 중반 부상의 후유증으로 병사하였다는 주장이 있다.

상훈과 추모

1990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대한민국독립유공인물록』(국가보훈처, 1997)
『독립운동사자료집』10(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6)
「조선혁명군연구」(장세윤, 『한국독립운동사연구』4, 1990)
「양세봉: 조선혁명군 총사령의 연구」(정원옥, 『국사관논총』8, 1989)
「국민부의 결성과 활동」(조범래, 『한국독립운동사연구』2, 1988)
『國外に於ける容疑朝鮮人名簿』(朝鮮總督府, 1934)
집필자
장세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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