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전쟁 당시 납북된 남한 출신 인사들을 중심으로 1956년 7월 2일 평양에서 결성되었다.
북한측의 보도자료에 의하면, 이 협의회에 참가한 구성원들은 민족자주연맹(民族自主聯盟) · 한국독립당(韓國獨立黨) · 사회당(社會黨) · 민족공화당(民族共和黨) · 민주국민당(民主國民黨) 등 정당의 지도적 인사들과 남한의 국회의원 · 국무위원을 지낸 인사, 그리고 정계 · 언론계 · 교육계 · 종교계 · 여성계 인사들을 망라한다고 주장하였다.
조직으로는 총회와 총회에서 선출된 상무위원회가 있으며, 상설기구로 서기국이 있다. 이 단체는 북한의 대남선전과 통일전략에 납북인사를 활용하기 위한 의도에서 조직되었다.
따라서 가입자 대부분은 비자발적으로 동원되었다. 가입자에 대한 포섭은 홍명희(洪命熹, 당시 과학원원장) · 이극로(李克魯, 당시 최고인민회의 부위원장) · 정칠성(丁七星, 여성동맹 부위원장) 등 월북자들이 주축이 되었다.
초기 회원을 보면 최고위원에 안재홍(安在鴻) · 조소앙(趙素昻) · 오하영(吳夏英) · 엄항섭(嚴恒燮) · 송호성(宋虎聲) 등이 있었고, 상무위원에 노일환(盧鎰煥) · 원세훈(元世勳) · 김약수(金若水) · 이문원(李文源) · 윤기섭(尹琦燮) · 구덕환(丘德煥) · 배중혁(裵重赫) 등이 있었다.
또, 중앙위원으로는 김경도(金景道) · 김경배(金庚培) · 최태규(崔泰奎) · 정광호(鄭光好) 등의 제헌의원들과 백상규(白象圭, 2대 의원) · 박열(朴烈, 재일거류민단장 역임) · 박승호(朴勝好, 대한부인회 위원장) · 김억(金億, 시인) · 김동환(金東煥, 시인) 등 40여 명이 선출되었다.
이 단체는 그 결성목적에 맞추어 결성대회에서 “남북정권당국과 국회, 모든 정당 · 사회단체 대표 및 애국인사들은 평화적인 통일문제를 협의하기 위하여 상설기관을 수립할 것”과 “남북총선거에 따라서 통일민주연합정부를 수립할 것” 등을 제의하였다.
그러나 알려진 바에 따르면, 이 단체 지도층에서는 북한의 위장평화전략에 이용되는 기구가 되지 않고 남북한 중립노선을 견지하며 조국의 평화통일목적달성만을 지향하려고 노력하였다고도 한다.
결성 당시에는 회원의 수가 200여 명에 달했으나 1956년 8월 이후 연안파 · 소련파의 숙청과 관련, 많은 인사가 제거되고 구성원의 자연감소로 활동이 거의 없었다. 근래 월북한 이우갑(1988.4.)이나 정규진(1989.11.) 등을 내세워 주로 북한의 통일정책을 지지하거나 한국측을 비난하는 내용의 대남선전활동을 하고 있다.
2017년 11월 30일 현재 상무위원은 김칠성, 류숙근, 윤성식, 최태규와 위원 12명이 확인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