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9년 경상북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1기. 원형봉토분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권29 함창현(咸昌縣)의 건치연혁조에 의하면 함창은 ‘본래 고령가야국이었는데, 신라가 빼앗아 고동람군(古冬攬郡, 일명 古陵)으로 하였다가 경덕왕 때에 고령(古寧)으로 고쳤다’고 하였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서기 41년(유리이사금 18)낙동강을 중심으로 일어난 육가야 중 이곳 함창에 고령가야국을 건국한 태조왕의 왕릉을 ‘서릉(西陵)’, 왕비릉을 ‘동릉(東陵)’이라 한다.
1592년‘古寧國太祖伽倻王陵(고령국태조가야왕릉)’이라고 음각되어 있는 묘비가 발견되어 당시 관찰사 김수(金睟)와 함창현감 이국필(李國弼) 등에 의하여 확인된 뒤 함창김씨(咸昌金氏)의 자손들이 매년 10월 1일과 3월 15일에 향사를 지내오고 있으며, 1712년(숙종 38) 왕명에 의하여 묘비(墓碑)와 석물(石物)을 다시 건립하였고, 그 뒤 수차례 비를 다시 세워 지금에 이르고 있다.
왕릉은 삼국시대의 일반적인 원형봉토분으로 약간 구릉진 지대에 있으며, 능의 크기는 직경 6.7m, 둘레 21m, 높이 3m이며, 앞에는 비석 1기, 석등 1기, 상석 1기, 석상 1쌍, 석수 2쌍이 있다. 왕릉 앞의 50m 지점에 재사(齋祠)인 만세각(萬歲閣)이 있다. 그리고 여기서 200m 정도 떨어진 동편의 구릉진 쪽에 왕비릉이 남향으로 자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