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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국체육대회(全國體育大會)

    체육의식행사

     대한체육회에서 매년 가을에 전국적인 규모 로 개최하는 경기대회.   종합경기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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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체육회에서 매년 가을에 전국적인 규모 로 개최하는 경기대회.종합경기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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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역닫기영역열기내용
    전국체육대회는 경기를 통해 겨레의 단결심과 인내력을 기르고, 준법정신을 생활화하고 올바른 승부의 가치관을 깨우치며, 나아가 강인한 체력과 슬기로운 민족의 저력을 배양해 세계에 국위를 선양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개최 시기는 매년 10월 3일부터 1주일 이내로 되어 있고, 스케이트와 스키경기가 개최되는 동계대회는 1∼2월에 실시한다.
    경기종목은 대한체육회에 가맹한 각 종목으로 경기단체의 경기를 개최하며, 전국체육대회가 열리고 있는 기간에는 산하 경기단체의 개별적인 경기행사를 개최할 수 없도록 되어 있다.
    대회참가요령은 개최 3개월 전 발표된 개최요강에 의해 각 지방 지부에서 예선을 거친 우수한 선수가 개인 또는 단체로 참가할 수 있는데, 경기방법은 도대항으로 진행된다.
    대회운영방식은 고등부·대학부·일반부로 나누어 경기를 진행하고, 경기종목은 육상·사이클·역도·사격·승마·체조·수영(경영·다이빙)·빙상·스키·조정·축구·야구·농구·배구·연식야구·테니스·연식정구·탁구·핸드볼·럭비·축구·복싱·레슬링·씨름·유도·검도·궁도·하키·수구·아이스하키·펜싱·배드민턴·태권도 등 33개 종목이다.
    대회 첫날 거행하는 개회식에는 강화도 마니산의 참성단(塹城壇)에서 성화를 채화, 성화봉송 과정을 거쳐 성화대에 점화하는 의식을 가진다. 시상은 종합성적 시상, 중등부·고등부·일반부의 부별 종합성적 시상, 경기종목별 시상, 입장상, 모범선수단 시상 등이 있다.
    전국체육대회는 1920년 11월 조선체육회(朝鮮體育會)가 배재고등보통학교(培材高等普通學校) 운동장에서 개최한 제1회 전 조선야구대회를 기원으로 삼고 있으며, 이 대회부터 횟수를 기산(起算)해 왔다.
    이듬해에는 제1회 축구대회를 개최하는 등 조선체육회는 야구·축구·육상·정구 등을 단일 종목별로 차례차례 개최하면서 점차 체육활동의 폭을 넓혀왔다. 그 뒤 1929년에 조선체육회 창립10주년을 기념해 최초의 종합대회인 전 조선경기대회를 개최했다.
    1930년부터는 다시 종목별 개별대회로 경기를 실시했으며, 1934년 11월에는 창립15주년을 기념해 전조선종합경기대회라는 이름으로 경기를 개최, 야구·축구·정구·육상·농구 등 5개 경기를 경성운동장과 여러 보조경기장을 사용해 개최했다. 이듬해에는 궁도·씨름·역도가 추가되었고, 1936년에는 빙상경기·복싱·탁구, 1937년에는 배구가 추가되는 등 대회 규모가 점점 커져갔다.
    이처럼 대회가 발전함에 따라 경기수준도 향상되어 많은 종목에서 일본을 압도, 손기정(孫基禎)이 마라톤에서 금메달을 차지한 1936년 베를린올림픽을 전후해 그 수준이 절정에 이르게 되었다.
    그러나 이후 일제의 체육통제가 가해지기 시작해, 1938년 조선체육회가 일본인 체육단체인 조선체육협회에 강제통합되면서 전조선종합경기대회는 1937년에 개최된 18회 대회를 마지막으로 중단되고 말았다.
    이후 1945년 해방과 함께 부활되어 같은 해 10월부터 자유해방경축전국종합경기대회라는 명칭으로 경기가 개최되었는데, 이것이 제26회 전국체육대회이다. 이 때의 경기종목은 육상·축구·농구·배구·야구·정구·럭비·자전거경주·탁구·마술(馬術) 등 10개 종목이며, 이듬해 1월 빙상경기인 스피드스케이팅과 아이스하키 경기가 실시되었다. 1946년에는 대회명칭을 조선올림픽으로 하고 경기종목을 16개로 늘렸으며, 총 5,000여 명의 선수가 참가했다.
    1948년 제29회 대회 때부터 전국체육대회로 이름을 개칭하고, 종전의 자유참가제를 시·도대항제로 정착화했다. 이에 따른 당시의 종합전적은 1위가 서울, 2위가 경기, 3위가 전라남도였다. 또한, 같은 해에 조선체육회의 명칭이 대한체육회로 개칭되었다. 이후의 전국체육대회 중 중요한 사항이 있었던 대회를 중심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제30회 전국체육대회(1949년)
    해방 이후 다섯번째 대회로, 서울에서 열렸다. 과거 서울을 중심으로 보급된 스포츠가 전국적으로 확대 보급되었고, 경기수준도 향상을 보인 대회였다. 명실공히 전국 각 시·도가 참가했으며, 특히 윤석중(尹石重) 작사, 김순애(金順愛) 작곡으로 전국체육대회가(全國體育大會歌)가 제정되었다.
    2. 제32회 전국체육대회(1951년)
    한국전쟁으로 어려운 사정에도 불구하고 피난지인 광주에서 15개 종목에 걸쳐 대회를 개최해 세계 스포츠인들의 격려를 받았다. 경기내용을 보면, 최윤칠(崔崙七)이 마라톤에서 세계신기록을 세운 것을 비롯해 역도 밴텀급 인상(引上)에서 이규혁(李圭赫)과 역도 미들급 추상(推上)에서 김성집(金晟集)이 각각 세계신기록을 수립했다.
    3. 제36회 전국체육대회(1955년)
    이 대회에서는 최초로 강화도 마니산에서 성화릴레이를 시작했다. 경기내용을 보면, 역도 밴텀급 인상에서 김해남(金海南)이 세계타이기록을 세웠으며, 농구의 남자대학부에서 연희대학교와 송구의 여자중등부에서 창덕여자중학교가 3연패의 영광을 차지했다.
    4. 제38회 전국체육대회(1957년)
    지방의 체육발전과 체육보급을 위해 부산에서 24개 종목에 걸쳐 개최되었다. 경기내용을 보면, 심상옥(沈相玉)이 800m달리기에서 한국신기록을 수립했고, 남자고등부 농구에서 대동상업고등학교와 여자고등부 송구에서 창덕여자고등학교가 3연패를 이룩했다.
    5. 제40회 전국체육대회(1959년)
    이 대회부터 대회행사기간을 체육주간으로 정하고, 체육사상을 고취시키기 위해 체육전시회를 마련하는 등 전국적인 계몽운동을 전개했다. 경기내용을 보면, 정기선(鄭奇善)과 구삼순(具三順)이 여자 200m달리기에서 대회신기록을 수립하는 등 지방선수들의 활약이 두드러졌으며, 배구경기에서 처음으로 6인제가 도입되었다.
    6. 제41회 전국체육대회(1960년)
    대전에서 실시되었는데, 지방에서 전국체육대회를 앞두고 대규모의 공설운동장이 건설되는 효시가 되었다. 또한, 이 대회부터 경기채점규정이 제정, 실시되어 채점의 체계를 세우게 되었다. 경기내용을 보면, 김봉조(金鳳朝)가 수영의 자유형 1,500m에서 한국신기록을 수립했으며, 군산여자고등학교가 연식정구에서 3연패를 이룩했다.
    7. 제42회 전국체육대회(1961년)
    24개 종목에 걸쳐 서울에서 실시되었다. 펜싱경기가 처음으로 채택되었으며, 정신여자중학교가 여자농구 중등부에서 3연패를 이룩했다.
    8. 제43회 전국체육대회(1962년)
    대구에서 개최되었으며, 대회규정과 채점규정이 개정, 실시되었다. 채점규정은 참가팀 중 최하위를 1점으로 하고 순차적으로 1점씩 가해 배점하는 방식이었다. 이 대회에서 배드민턴 종목이 추가되었으며, 김연범(金連範)이 마라톤에서 한국신기록을 수립했고, 필드하키 일반부에서 재일교포팀이 4연패를 거두었다.
    9. 제44회 전국체육대회(1963년)
    전주에서 열렸는데 처음으로 선수 70%에 대한 대규모의 민박제도가 실시되어 향토간의 유대를 강화시켰다. 여자 800m달리기에서 한명희(韓明熙), 역도에서 허창범(許昌範)·황호동(黃鎬東)·이진영(李鎭榮)이 7개의 한국신기록을 수립했고, 축구에서 강문중학교, 농구에서 연세대학교, 탁구에서 중앙대학교가 3연패를 거두었다.
    10. 제46회 전국체육대회(1965년)
    광주에서 개최되었는데 체전과 아울러 산업박람회도 개최되었다. 28개 종목에 걸친 경기에서 원신희(元信喜)가 역도 라이트급 추상 주니어세계신기록 2개, 라이트급 인상 주니어세계타이기록을 수립했고, 허창범(許昌範)이 역도 미들급 추상에서 올림픽타이기록을 세웠다. 그 밖에 역도에서 한국신기록 6개, 한국주니어신기록 3개, 육상에서 한국신기록 2개, 기타 한국타이기록 4개, 대회신기록 45개, 대회타이기록 8개 등 푸짐한 기록을 남겼으며, 하계대회에서는 한국신기록 5개, 대회신기록 58개를 수립했다.
    11. 제47회 전국체육대회(1966년)
    향토적 특색을 살리고 입장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입장상을 마련했다. 기록에서는 3개의 한국신기록, 4개의 한국타이기록과 하계대회에서 한국신기록 10개 등을 수립했다.
    12. 제49회 전국체육대회(1968년)
    이 대회에서는 경상북도가 처음으로 서울을 누르고 우승했다. 기록에서는 남상완이 공기총 사격에서 세계신기록, 박명년이 역도에서 세계타이기록 등을 수립했고, 이 밖에 한국신기록 6개 등이 기록되었다.
    13. 제50회 전국체육대회(1969년)
    이 대회에서는 이북5도의 표지판과 대표가 입장해 통일의 염원을 나타냈다. 이와 함께 국제무대에서 한국 스포츠의 활약상에 대한 전시회를 서울운동장에서 가졌으며, 기념우표와 기념담배도 판매했다. 기록으로는 역도에서 최문재가 세계주니어신기록을 수립한 외에 한국신기록 14개, 한국타이기록 1개 등을 수립했다.
    14. 제51회 전국체육대회(1970년)
    이 대회에서부터 태릉국제수영장의 개장으로 하계대회(수영·조정)를 추계대회에 통합, 실시했다.
    15. 제53회 전국체육대회(1972년)
    이 대회 때부터 초·중등학교가 전국스포츠소년대회로 분리, 운영되기 시작했다. 이로 말미암아 전국 주요 도시의 체육시설이 현대화되기 시작했고, 체육의 대중화에 한발 더 접근하게 되었다. 재미교포가 처음 참가했으며, 기록으로는 한국신기록 15개, 한국타이기록 1개 등이 수립되었다.
    16. 제59회 전국체육대회(1978년)
    이 대회에서는 박영숙이 양궁 여자 50m싱글에서 세계신기록을 수립했으며, 일본·미국·독일·캐나다·사우디아라비아 등 5개 국의 해외동포가 참가했다.
    17. 제61회 전국체육대회(1980년)
    이 대회는 전주·군산·이리에서 분산되어 개최되었으며, 양궁 등에서 3개의 세계신기록을 수립했다.
    18. 제65회 전국체육대회(1984년)
    이 대회는 1986년의 서울아시아경기대회와 1988년의 서울올림픽대회를 앞두고, 이들 대회에 대한 준비와 경험의 축적을 위해 경기운영의 전산화 및 국제경기방식을 채택하고 관중의 카드섹션 등을 실시했다. 기록에서는 양궁에서 세계신기록 2개를 수립했으며, 그 밖에 한국신기록 18개, 한국주니어신기록 2개, 한국주니어타이기록 1개 등 풍성한 수확을 거두었다.
    19. 제75회 전국체육대회(1994년)
    체전참가 규모가 비대화되어 심각한 문제가 제기되었기 때문에 제76회 대회 때부터는 구기종목은 사전에 예선을 치르도록 했다.
    20. 제77회 전국체육대회(1996년)
    체전 사상 처음으로 ‘달곰이’라는 마스코트가 선을 보였고, 국제, 문화, 예술행사를 병행 실시해 21세기 체전을 전국민의 체전으로 승화시킨다는 이정표를 제시했다.
    21. 제78회 전국체육대회(1997년)
    울산광역시가 새로운 시도지부로 참가해 16개 시도가 열전을 벌였고, 처음으로 야간개회식을 실시했으며 마스코트로 ‘해오리’를 사용, 전국체전에 마스코트 채택이 정착되어 가는 양상을 보였다.
    22. 제79회 전국체육대회(1998년)
    제주도에서 개최하게 되어 새로이 참가한 울산광역시를 제외하고 체전사상 전국을 일순하는 전환점을 마련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 대회는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서울올림픽 개최 10주년을 기념하는 대회로 정식종목 36개, 시범종목 3종목에 20,000여 명의 국내 및 해외동포부가 참가해 자웅을 겨루었다.
    23. 제80회 전국체육대회(1999년)
    1983년 제64회 대회 개최 이후 16년만에 인천에서 다시 개최되었다. 대회 마스코트로 ‘미래로’를 사용했다. 그리고 대회 경기결과 등이 인터넷을 통해 정보 제공되었으며, 수영(다이빙)·사이클(벨로드롬)·하키·승마·조정·카누 등 특수시설종목은 분산 개최되었다.
    이처럼 전국체육대회는 아시아와 세계 스포츠의 정상으로 떠오른 한국 스포츠의 산실로서 역할을 하고 있다.
    영역닫기영역열기 참고문헌
    영역닫기영역열기 집필자
    집필 (1995년)
    정찬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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