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7년 경상북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1기. 화달리 둔진산(屯鎭山) 남쪽 기슭에 있다. 원형봉토분이며 주위에 석물(石物)이 있다.
본래 사벌국은 점해이사금 때 신라에 병합되어 사벌주(沙伐州)로 되었다. 그 뒤 524년(법흥왕 11)상주(上州)로 고치고 군주(軍主)를 두었고, 557년(진흥왕 18) 상락군(上洛郡)으로 고치고, 687년(신문왕 7) 다시 주로 만들었다. 757년(경덕왕 16) 지금의 상주(尙州)로 이름을 고쳤으나, 776년(혜공왕 12) 사벌주로 환원하였다.
『신증동국여지승람』 상주목(尙州牧)의 고적(古蹟)조에 의하면 “사벌국의 고성(古城)은 병풍산(屛風山) 아래에 있고, 성 옆에 높고 둥근 구릉이 있다. 세상에서 전하기를 사벌국의 왕릉이라 한다. 그리고 신라 말에 후백제국의 건국자인 견훤(甄萱)의 아버지 아자개(阿慈介)가 이 성을 차지하고 지켰다.”고 하였다.
한편, 사벌왕릉은 신라 제54대 경명왕의 왕자 8명 중 다섯째 아들인 언창(彦昌)의 무덤이라고 전한다. 경명왕은 언창을 917년(경명왕 1) 사벌주의 사벌대군(沙伐大君)으로 책봉하고 사벌방어장(沙伐防禦將)으로 삼아 사벌주의 수호를 위해 견훤을 격퇴하도록 하였다.
그러나 언창은 견훤의 합천ㆍ고령ㆍ영천ㆍ선산 등의 점거로 본국인 왕경(王京 : 지금의 경상북도 경주)이 고립상태에 빠지자, 918년 사벌동(沙伐洞)과 흔국촌(欣國村)을 본영으로 해 사벌국이라 칭하고 자립하여 왕이 되어 11년간 통치하다가 견훤의 침공을 받아 929년(경순왕 3) 패망했다고 한다.
신도비는 1945년 건립되었으며, 전체 높이 3.04m, 귀부 높이 45㎝, 너비 1.56m, 비신 높이 2.04m, 폭 60.25㎝, 두께 20.67㎝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