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해주(海州). 자는 기수(耆叟), 호는 우재(愚齋). 전라남도 광주 출생. 아버지는 형조참판 정종(鄭悰)이며, 어머니는 문종의 딸 경혜공주(敬惠公主)이다. 아버지가 사사(賜死)되자 어머니와 함께 서울로 소환, 세조가 길렀다.
잠저 때의 성종을 시중하다가 1473년(성종 4) 돈녕부직장·형조정랑을 지냈다. 죄인의 자손으로 임관되었다 하여 여러 차례 탄핵을 받았으나 성종의 무마로 무사하였다. 1476년 중부참봉(中部參奉)을 거쳐 이듬해 선전관을 지내고, 1489년 사헌부장령·사섬시첨정·한성부서윤·인천부사 등을 지냈다.
연산군이 즉위하자 당상관으로 올라 장례원판결사에 임명되고, 1496년(연산군 2) 충청도관찰사가 되었다. 1498년 동부승지·우승지·좌승지·도승지를 거쳐, 1502년 공조참판·지돈녕부사·한성부판윤을 지내고, 1504년 의정부참찬으로 판의금부사를 겸하였다.
1506년(중종 1) 우찬성이 되어 중종반정 때 공으로 정국공신(靖國功臣) 3등이 되고 보국숭록대부(輔國崇祿大夫)에 올랐으며, 해평부원군(海平府院君)에 봉하여졌다. 이듬해 박경(朴耕)의 옥사에 연루되어 경상도 울진으로 유배되었다가 곧 풀려났다. 시호는 소평(昭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