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동래(東萊). 자는 의백(毅伯), 호는 풍천(楓川). 예의판서 정가종(鄭可宗)의 아들이다.
생원시를 거쳐 1390년(공양왕 2) 예부시(禮部試)에 합격, 권근(權近)·하륜(河崙)·성석린(成石璘) 등과 교유하였다.
1408년(태종 8) 사헌부집의 재직중에 민무질(閔無疾)의 당여로 지목된 하륜을 탄핵하고 무단히 하륜의 집에 사헌부관리를 보내어 수직(守直)한 사건으로 나주에 유배되고, 1409년 외방종편(外方從便), 이듬해 복직되었다.
1418년(세종 즉위년) 사간원우사간·좌사간, 이듬해 8월 예조참의, 같은 해 12월 판나주목사로 부임하여 임기를 마친 뒤 퇴직하였다. 덕행과 문장으로 명망이 있었다. 전주의 학천사(鶴川祠)에 제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