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적성(지금의 파주시 적성면) 출신. 의병 정인태(鄭寅泰)의 맏손자로, 정두환(鄭斗煥)의 아들이다.
한국군대 강제해산에 대한 의분으로 1908년 2월 향리에서 수백명의 의병을 모집, 그 장이 되어 적성·풍덕·김포·통진 등지에서 병력을 지휘하였다.
같은 해 2월 27일∼3월 2일에 일본헌병대 및 경찰대와 교전을 하였고, 계속 김포와 적성 등지에서 군량미와 금품을 징발하면서 전투준비를 하다가 1909년 10월 28일 붙잡혔다. 경성지방재판소에서 내란죄로 사형이 선고되어 1910년 순국하였다.
1977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