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동래(東萊). 자는 대천(大遷), 호는 외암(畏庵). 김제 출생. 아버지는 정천배(鄭天培)이며, 어머니는 나주나씨(羅州羅氏)이다. 큰아버지 정천기(鄭天基)에게 입양되었으며, 송명흠(宋明欽)의 문인이다.
18세에 생부가 어떤 여인의 무고로 억울하게 죽었는데, 오랫동안 원수를 갚고자 노력하다가 16년 만에 원수를 갚았다. 그 뒤 자수하여 감옥에 들어갔는데 인근 선비들의 호소로 풀려나자, 오랜 가뭄 끝에 비가 내렸으므로 효자비라고 하였다.
‘진심성의(盡心誠意)’ 네 글자로 생활의 지표를 삼고 학문 연구에 전념하였다. 세상이 점차 어지러워지자 벼슬을 단념하고 후진 양성에 전력하였다. 뒤에 효행으로 천거되어 정려의 은전이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