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영일(迎日). 자는 자방(子方), 호는 상화(常華)·명계(明溪). 세거지는 영천(永川). 아버지는 내금위장(內禁衛將) 정수번(鄭守藩)이고, 어머니는 창녕조씨(昌寧曺氏) 생원 조희익(曺希益)의 딸이며, 전삼성(全三省)의 문인이다.
약관에 벌써 경사(經史)·백가(百家)를 두루 섭렵하고 이어 저술에도 많은 힘을 기울여 문장 솜씨가 매우 뛰어났다. 초년에는 과거에도 여러 차례 응시해 보았으나, 중년 이후로는 출세와 인연을 끊고 마을 앞 시냇가에 ‘정정정(亭亭亭)’이라는 정자를 지어 꽃 가꾸기와 책 읽기, 그리고 시주(詩酒)·조어(釣漁)로써 낙천적인 생활을 하였다.
‘명계’라는 호도 이 때 지은 자호이다. 1636(인조 14) 병자호란 때는 형 정호인(鄭好仁)과 함께 의병을 모아 조령(鳥嶺)을 넘었다가 강화의 소식을 듣고 돌아왔으며, 한 때는 임고서원(臨皐書院)의 원장(院長)에 추대되어 매월 삭강(朔講: 초하루에 실시하는 강의)으로써 한 지역의 문풍을 진작하고 풍속을 순화시켰다. 저서로는 『상화집(常華集)』 2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