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창녕(昌寧). 자는 용회(用晦), 호는 회산(檜山). 풍저창부승(豊儲倉副丞) 정한우(丁旱雨)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전생서주부 정휘(丁暉)이고, 아버지는 사산감역관(四山監役官) 정세명(丁世明)이며, 어머니는 사의(司議) 김수형(金壽亨)의 딸이다. 조광조(趙光祖)의 문인이다.
1516년(중종 11) 사마시에 합격하고 1528년 별시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다. 성균관전적 · 호조좌랑을 거쳐 1538년 성절사(聖節使)의 서장관(書狀官)이 되어 명나라에 다녀왔고, 1540년 경상도도사를 지냈다.
그 뒤 벼슬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가 학문연구에 힘쓰면서 후학의 교육에 일생을 바쳤다. 효성이 지극하고 우애가 독실하며 학문이 높아 사림의 영수로 추앙되었다. 뒤에 동생 정황(丁熿)과 함께 남원의 영천서원(寧川書院)에 제향되었다. 저서로는 『회산문집』 3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