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주메뉴 바로가기
조선민주당목차버튼
바로가기
내 검색어

    조선민주당(朝鮮民主黨)

    정치단체

     1945년에 창당되었던 정당.   

    확대하기축소하기프린트URL의견제시

    트위터페이스북

    의견제시
    항목명조선민주당
    이메일올바른 형식의 이메일을 입력해 주세요.
    의견
    10자 이상 상세히 작성해 주세요.
    첨부파일
    의견제시 팝업 닫기
    영역닫기영역열기 정의
    1945년에 창당되었던 정당.
    영역닫기영역열기연원 및 변천
    조선민주당은 광복 후 평안남도건국준비위원회와 평안남도인민정치위원회의 위원장을 맡아 신망이 높던 조만식(曺晩植)이 북한지역의 대표들과 함께 1945년 11월 3일 평양에서 결성하여, 창당과 동시에 당기관지인 『조선민주보 朝鮮民主報』를 주간으로 발행하였다. 조선민주당은 만장일치로 조만식을 당수로 선출하였으며, 부당수에 이윤영(李允榮)·최용건(崔鏞健), 정치부장에 김책(金策)을 뽑았다.
    이 밖에도 33명의 상무집행위원과 105명의 중앙집행위원, 그리고 8명의 감찰위원 등 중앙간부를 선출하였는데, 간부 중 최용건·김책 등은 김일성(金日成)이 정치적인 복선을 가지고 잠입시킨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1945년 12월 말 모스크바3상회의 결정에 따라 신탁통치문제가 제기되자 조선민주당은 회의를 열어, 반탁결의를 하고 당수 조만식은 소련군 당국자의 신탁통치 찬성 요청을 끝까지 거부하여 연금상태에 놓이게 됨으로써 조선민주당은 본래의 의도와는 다르게 변질되었다. 즉, 부당수의 한 사람인 최용건이 열성자대회를 열어 조만식 당수를 파면하고 자신이 당수직에 취임하여 제반 부서를 개편, 공산당과 보조를 맞추기 시작한 것이다.
    이로써 북한지역에서 조선민주당의 독자적인 활동은 중지되고 말았다. 한편, 소련군정 당국의 박해를 받던 부당수인 이윤영을 비롯하여 우익측 간부들이 월남하여 1946년 4월 25일서울에 집결, 당재건에 나섬으로써 남한지역에서 조선민주당의 활동이 시작되었다. 이들은 당의 정신적 지주인 조만식을 계속 당수로 추대하였으며, 산하에 평안청년회를 조직, 월남한 청년들을 규합하였다.
    그 뒤 1946년 8월에는 중앙당 내에 선전정보위원회를 신설하여 북한에 대한 선전사업을 적극 벌였으며, 그 해 10월에는 중앙확대위원회를 개최하여 지방조직에도 착수하였다. 한편으로는 북한에 남아 있던 조만식 당수를 월남시키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으나 실현시키지는 못하였다.
    1948년 5월 10일의 제헌의원선거에 조선민주당측에서 부당수인 이윤영을 비롯하여 5명이 출마하였으나 이윤영만이 서울 종로갑구에서 당선되었다. 선거 실시 전 조선민주당은 450만 월남동포의 특수한 입장을 대변하기 위하여 이북특별선거구 설정운동을 전개하였으나 관철시키지 못하고 말았다. 정부 수립 후 조각과정에서 월남동포의 참여의식을 높이기 위한 의도로 이승만은 의장 이윤영을 총리로 지명했으나, 한국민주당측의 비협조로 국회의 인준을 얻지 못하여 무임소장관(뒤에 사회부장관)으로 참여하였다.
    제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2명의 당선자 배출을 끝으로 원내 진출에 실패하여 정당으로서의 활동도 부진하게 되었고, 몇 차례의 기구개편을 통하여 침체상태에 빠진 당무를 재확립하려고 시도하였으나, 북한지역에서 창당된 정당으로서 당간부들이 월남하여 활동을 계속한 것이었기에 지지기반이 상대적으로 미약할 수밖에 없었으며, 「국회의원선거법」에 월남동포를 위한 특별선거구제도가 따로 마련되지 않아 국회 진출이 어려웠기 때문이다.
    이로써, 월남동포의 생활안정과 이익표출을 위한 정당적인 차원의 움직임도 한국정당사에서 종식되었지만, 월남동포라는 특수집단의 이익을 집약, 표출하려고 하였다는 데 의의가 있었다.
    영역닫기영역열기 참고문헌
    영역닫기영역열기 집필자
    집필 (1995년)
    심지연
    페이지 상단으로 이동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