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독립동맹(朝鮮獨立同盟) 계열을 주축으로 1946년 2월 16일에 창당되어 같은 해 8월 29일 북조선공산당과 합당하기까지 6개월간 존속하였다.
조선독립동맹은 중국의 옌안(延安)에서 활동하던 공산주의자들의 정치집단으로서, 당초 이 집단은 중국에서의 항일투쟁경력을 내세워 남북한을 통괄하는 정당을 독자적으로 결성하려고 하였다.
이에 따라 독립동맹은 중앙본부를 평양에 두는 한편, 1946년 1월 간부 여러 명을 서울에 보내서 경성특별위원회(京城特別委員會)를 만드는 등, 정치활동을 본격화하고 그 해 2월 공식적인 정당으로 출범하였다.
같은 해 6월 30일 제1차 대표자대회를 열면서 경성특별위원회를 남조선신민당중앙위원회(南朝鮮新民黨中央委員會)로 개칭하였다. 이로써 조선신민당은 사실상 이원화된 조직으로 분리되고 말았다.
북한지역 신민당은 주석 김두봉(金枓奉), 부주석 최창익(崔昌益) · 한빈(韓斌), 조직부장 이유민(李維民), 선전부장 김민산(金民山)이었고, 남한지역 신민당은 위원장 백남운(白南雲), 부위원장 정노식(鄭魯湜), 조직부장 심운(沈雲), 선전부장 고찬보(高贊輔)였다.
당 강령 및 정책의 기조에서는 친일파 · 반민주주의자를 제외하고 민족통일전선을 구축, 조선민주공화국을 수립하여 일제와 친일파로부터 몰수한 대기업을 국영화하고 소작제를 폐지하는 등 민족경제를 재편성하려고 하였다. 그리고 대외적으로는 독립 · 평등 · 상호이익존중 · 우의에 기초하여 세계평화를 실현할 것을 밝혔다.
이는 모택동(毛澤東)의 ‘신민주주의(新民主主義)’를 당시의 북한 현실에 원용한 것이다. 따라서, 조선신민당은 공산당보다 덜 급진적이었으며, 노동자 · 농민보다는 소시민 · 지식층 · 중산층에 당의 기반을 두었다.
그러나 조선신민당은 독자적 활동을 제대로 해보지도 못한 채 북조선공산당의 대중정당화 방침에 호응하여 1946년 8월 합동대회를 통해 북조선노동당으로 새 출발하게 되었다.
한편 남한에서도 1946년 8월부터 3당(공산당 · 인민당 · 신민당)합당사업이 본격화되어 1946년 11월 23일 합당대회를 통해 남조선노동당을 창당하게 되었다. 이처럼 조선신민당은 남과 북에서 공산당 중심으로 전개된 대중정당화 전략에 흡수되어 신민주주의 정치노선을 실현해 보지 못한 채 해체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