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창녕(昌寧). 경기도 양평 출신. 1907년 충청도에서 농민을 규합하여 의병부대를 편성한 뒤 경기도 임진강 유역을 중심으로 항일의병전쟁을 전개하였다.
이 지역에는 권준(權俊)·왕회종(王會鍾)·연기우(延起羽) 등 수많은 의병부대가 자리잡고 있었는데, 이들 부대들은 경기·강원·황해도를 넘나들며 일본군과 전투를 전개하고 있었다.
조인환부대가 거둔 전과로서 대표적인 전투는 같은 해 8월 4일 양근읍(楊根邑: 지금의 양평군 양평읍) 습격작전이었다. 의병부대는 군청·세무서·우편물취급소 등 관청을 습격, 파괴하고, 그곳 일본인 가옥을 소각시켰다.
그리고 출동한 일본군과 치열한 접전을 벌여 많은 전과를 올리고 용맹을 떨쳤다. 그뒤 허위(許蔿)의 13도연합의병의 서울 진공작전이 실패한 뒤 이 의병부대가 임진강 유역으로 이동하여 오자 조인환부대를 비롯한 임진강 유역 의병들이 서로 연락하며 연합항전체계를 수립하니 이때부터 이들 의병부대를 임진강연합의병이라 하였다.
이 의병부대는 군표(軍票)를 발행하면서 군정을 베푸는 한편, 계속 항일전을 추진하였다. 그러나 1908년 허위가 영평(永平)에서 붙잡힌 것을 전후하여 임진강연합의병은 와해되고 이후에는 각 부대단위로 독자적인 항전을 전개하였다.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