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풍양(豊壤). 아버지는 장사랑 조지진(趙之鎭)이다.
1501년(연산군 7) 무과에 급제하여 훈련원주부 및 판관과 도총부도사, 훈련원부정·정을 역임하고, 1506년(중종 1) 의주판관, 1512년 평안도우후(平安道虞候)를 지냈다.
1520년 부평부사를 거쳐, 1528년 온성부사로 재직하던 중 야인들에게 패한 죄로 파직당하였다. 1535년 복관되어 회령부사가 되고, 그 뒤 동지중추부사가 되었다.
1537년 성절사(聖節使)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왔는데 김안로(金安老)의 부탁으로 금·은·화피(樺皮) 등을 가지고 가서 밀무역을 하였다는 혐의로 파직당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