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초기(1397~1398년)에 현유(賢儒)의 위패를 봉안, 배향하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하여 창건된 것으로 추정한다. 원래 진산면 읍내리에 있었으나 임진왜란 때 불타 사라진 것을 1684년(숙종 10) 비호산(飛虎山) 아래에 중건하였으며, 1755년에 지금 위치로 옮겼다. 1887년(고종 24)과 1904년에 각각 명륜당과 대성전을 중수하였다.
그 뒤 1965년에 대성전을 중수하고, 1968년 전교실(典校室)을 신축하였다. 1982년에 노후된 대성전을 해체 복원하였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대성전 · 명륜당 · 전교실 등이 있으며, 대성전에는 5성(五聖), 송조2현(宋朝二賢), 우리 나라 18현(十八賢)의 위패를 봉안하고 있다. 건축형태는 전학후묘(前學後廟)이다.대성전은 겹처마 맞배지붕이고, 명륜당은 담장 밖에 있으며 지붕은 맞배지붕이다. 분합문을 달았고, 안뜰에 있는 쪽마루는 이후에 가설했다. 전체적으로 다른 향교에서는 볼 수 없는 높은 경사지를 이용했다.
조선시대에는 국가로부터 토지와 전적 · 노비 등을 지급받아 교관 1명이 정원 30명의 교생을 가르쳤으나, 조선 후기 이래 향교는 교육 기능이 쇠퇴하고 대신 선현에 대한 제향을 통한 교화 기능을 주로 담당하였다. 봄 · 가을에 석전(釋奠)을 봉행하며 초하루 · 보름에 분향을 하고 있다.
이 향교의 대성전은 1984년 충청남도 문화재자료(현, 문화유산자료)로 지정되었다가, 1997년 충청남도 기념물로 재지정되었다. 향교의 운영은 전교(典校) 1명과 장의(掌議) 수명이 담당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