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불교조계종 제4교구 본사인 월정사(月精寺)의 말사이다.
758년(경덕왕 17)에 두타삼선(頭陀三仙)이 백련(白蓮)을 가지고 이곳으로 와서 절을 창건한 뒤 백련대(白蓮臺)라고 하였다. 839년(문성왕 1)범일국사(梵日國師)가 극락보전(極樂寶殿) 등을 건립하고 규모 있는 사찰로 만들었으며, 고려 충렬왕 때 이승휴(李承休)가 중수하고 이곳에서 대장경을 열람한 뒤 간장암(看藏庵)이라고 하였다. 이승휴는 또 이 절이 있는 용계(龍溪)에서 『제왕운기(帝王韻紀)』를 저술하였고, 71세 되던 해에는 그가 머물렀던 용안당(容安堂)의 현판을 내리고 간장사로 바꾼 뒤, 이 절에 전답 등을 시주했다고 한다. 조선 선조 때는 서산대사(西山大師)가 이곳에 와서 절을 중건하고, 절의 서남쪽에 있는 봉우리가 검푸른 것을 보고 흑악사(黑岳寺)라고 하였다. 1899년에는 이성계(李成桂)의 4대조인 목조(穆祖)의 능(陵)을 수축하고 이 절을 목조의 원당으로 삼았는데, 이때부터 천은사로 고쳐 부르게 되었다.
6·25전쟁 때 불탄 뒤 명맥만 유지해 오다가 주지 문일봉(文一峰)이 부임하여 정면 3칸, 측면 2칸의 극락보전을 비롯하여 약사전 · 육화료(六和寮) · 영월루(映月樓) · 삼성각(三聖閣) 등을 신축하였고, 요사채를 중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문화유산으로는 2007년 각각 강원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된 목조아미타삼존불좌상과 금동약사여래입상이 있다. 아미타불상을 개금(改金)할 때 복장(腹藏)에서 나온 『법화경』에 ‘嘉慶三年戊午四月十六日改金(가경3년무오4월16일개금)’이라고 쓴 글이 나와서 이 불상이 1779년(정조 3)에 개금된 것임을 알게 되었다. 또한 경내는 2000년 사적 이승휴유적(李承休遺蹟)으로 지정되었고 이승휴를 기리는 사당인 동안사(動安祠)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