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5년 을사조약이 일제의 강압으로 늑결되자 조약의 폐기를 주장하였고, 또한 조약체결에 찬동한 박제순(朴齊純)·이지용(李址鎔)·이근택(李根澤)·이완용(李完用)·권중현(權重顯) 등 5대신의 처형을 주장하는 고발장을 제출하였다가 붙잡혀 4개월간 투옥되었다.
그 뒤 석방되자 나철(羅喆)·오기호(吳基鎬) 등과 5적암살대를 조직, 활동하였다. 여러 차례 거사를 시도하였으나 5적처단에 실패하였으며 동지들이 차례로 잡히자 무고한 사람에게 화가 돌아갈까 두려워 자현장(自現狀)을 작성, 나철·오기호 등과 같이 평리원(平理院)에 자수하였다.
평리원에서 재판이 열리자 나라를 팔아먹은 5대신은 그냥 두고 이를 처단하려고 하였던 사람에게 중죄를 가하려는 것은 모순된 일임을 역설하다가 유형 10년이 선고되어 진도(珍島)로 유배당하였다.
1986년 대통령표창, 1990년 애족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