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시 ()

대동여지도 중 강원도 춘천 부분
대동여지도 중 강원도 춘천 부분
인문지리
지명/행정지명ˑ마을
강원특별자치도 중서부에 위치한 시.
정의
강원특별자치도 중서부에 위치한 시.
개관

동쪽은 인제군 · 양구군, 서쪽은 경기도 가평군, 남쪽은 홍천군, 북쪽은 화천군과 접하고 있다. 동경 127°31′∼127°47′, 북위 37°41′∼38°05′에 위치한다. 면적은 1,116.83㎢이고, 인구는 27만 7997명(2015년 현재)이다. 행정구역으로는 1개 읍 9개 면 15개 행정동(29개 법정동) 196개 행정리(78개 법정리)가 있다. 시청은 강원특별자치도 춘천시 교동에 있다.

자연환경

춘천지역의 지형은 흔히 소쿠리 모양의 분지로 일컬어지는데, 그 분지의 북쪽에는 오봉산 줄기가, 서쪽에는 삼악산줄기, 서남쪽에는 봉화산줄기, 동남쪽으로는 대룡산줄기가 병풍처럼 둘러처져 있다. 남북으로 길게 타원형을 이루며 형성된 분지의 중심부에는 춘천지역의 중요 한 수자원인 북한강과 소양강의 두 줄기가 합쳐 흐른다.

춘천분지 북부를 둘러싼 오봉산지(五峰山地)에는 사명산(四明山, 1,198m) · 죽엽산(竹葉山, 859m) · 부용산(芙蓉山, 882m) · 용화산(龍華山, 878m) 등이 있다. 동부의 대룡산지(大龍山地)에는 가리산(加里山, 1,051m) · 대룡산(899m) · 연엽산(蓮葉山, 850m) · 구절산(九節山, 750m) 등이 있다.

분지의 서쪽 삼악산지(三岳山地)에는 응봉(鷹峰, 1,436m) · 촛대봉(燭臺峰, 1,125m) · 가덕산(加德山, 858m) · 북배산(北培山, 867m) · 계관산(鷄冠山, 665m) · 삼악산(654m) 등이 있다. 남부 봉화산산지에는 검봉산(劍峰山, 530m) · 고깔봉(420m) 및 좌방산(座防山, 502m) 등 비교적 낮은 산지가 있다.

분지 안쪽으로는 해발고도 약 300m까지 급사면을 이루나, 그 이하에서는 구릉성 산지와 산록완사면이 넓게 발달되어 있다. 이들은 위치에 따라 수리봉 · 마적산 · 구봉산 · 대룡산 · 금병산(金屛山) 산록완사면 등으로 나뉘기도 한다.

분지 안에는 의암호 북쪽에 우두산(牛頭山, 140m), 호수 남쪽에 춘천의 진산인 봉의산(鳳儀山, 302m)과 국사봉(國史峰, 203m) · 향로봉(香爐峰, 315m) 등, 호수의 서쪽에는 장군봉(將軍峰, 187m) 등의 잔구들이 있다.

춘천지역은 북한강과 소양강유역의 저지대를 제외하고는 대개 산악지형이어서 전체적으로 토양발달이 미약한 편이다. 하지만 북한강과 소양강유역에는 상류지대의 화강암이 침식되고 부서져서 하류로 운반되어 퇴적된 충적대지가 발달되어 있는데, 이곳의 토양은 부식함유량 이 높은 모래질 양토로 이루어져 있다. 주기적인 홍수 때문에 이루어진 모래질 충적토양은 배수가 용이할 뿐만 아니라 강 제방의 수생식물에서 얻어지는 상당한 양의 비옥한 부식토를 함유하고 있다.

하천은 분지를 중심으로 북동쪽에서 소양강, 북서쪽에서 북한강이 흘러 분지 안에서 합류하여 남서류하다가 홍천군과의 경계를 따라 서류하는 홍천강과 합류한다.

이 밖에 백운산(白雲山)에서 발원한 지촌천(芝村川)이 춘천호로, 북배산에서 발원한 덕두원천(德斗院川)이 의암호(衣巖湖)로, 청평산에서 발원한 청평천(淸平川)이 소양호로 각각 흘러든다. 매봉에서 발원한 공지천(孔之川)이 근화동에서 의암호로, 갑둔치(甲屯峙)에서 발원한 후평천(後坪川)이 후평평야를 형성하여 소양강으로 흘러든다.

봉의산은 춘천시 중심가 북쪽에 위치한 해발고도 302m의 산이다. 춘천의 진산(鎭山)으로 산세가 수려하고, 산 정상부에는 봉수대와 고려시대 이전에 쌓은 것으로 보이는 석성(石城)이 있으며, 산 중턱에는 혈거지(穴居地) 및 고분이 발견되어 고대 맥국(貊國)의 도읍지였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는 장소이기도 하다. 이곳은 춘천분지 가운데에 우뚝 솟아 있어서 외부에서 침입하는 적을 막기에 알맞은 곳이다. 그래서 고려 고종 때인 1217년에 거란이 쳐들어왔을 때와 몽골이 네 번째로 우리나라를 침략했던 1253년과 임진왜란 때와 한국전쟁 당시에도 큰 싸움이 벌어진 격전지이다.

우두산은 해발고도 133m의 산이라기보다는 언덕에 가까운 우두산은 넓은 우두벌 평지에 솟아있는 일종의 고립구릉이다. 정상에는 1955년에 세운 충렬탑과 1938년에 옮겨 놓은 조양루가 있다. 과거에 우두사란 절이 있었다고 하지만 지금은 흔적만 가늠할 수 있을 뿐이다. 용화산의 줄기가 뻗어 내리다가 우두벌에 이르러 멈추었는데 그 말단에 해당되는 곳이 우두산이다. 우두산을 중심으로 서쪽에는 우두벌 동쪽에는 샘밭이 넓은 평지를 이루고 있으며, 서쪽으로 모진강(북한강)과 동쪽으로는 소양강이 흘러 그 흐름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장소이기도 하다. 우두산 이란 지명은 하늘에서 내려온 소의 머리처럼 생겼다 하여 붙여진 것으로 천하의 명당으로 전해진다. 그래서 춘천의 옛 이름도 우두라고 한 경우도 있다. 우두산 북쪽에는 또 하나의 고립구릉이 있는데 이를 달마지봉이라 한다. 옛날에 달맞이에 공을 들여야 장가도 가고 아들도 낳는다 하여 사랑받던 곳이기도 하다.

가리산은 해발고도 1,051m의 비교적 높은 산으로 춘천시, 인제군, 홍천군의 두촌면과 경계지역에 위치하며, 산 정상에서 바라보는 소양호의 풍경이 그야말로 아름다운 곳이다. 계곡에는 조그만 폭포들이 있으며, 이 계곡과 능선을 따라 등산을 할 수 있다.

금병산은 춘천시 신동면, 동내면, 동산면의 경계에 해당되는 해발고도 652.2m의 산이다. 신동면 증리에는 1908년 1월 출생 후 가난과 실의 실연과 병고 속에서 30여 년을 살면서 1930년대 우리나라 단편 문학사에 귀중한 작품들을 남긴 작가 김유정의 출생지로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여기에서 서쪽 개천길을 따라 싸리골 끝집을 지나 저수지 위에서 우측 길로 들어서면 능선으로 오르게 된다. 동북 능선 길을 따라 약 1시간을 오르면 5거리 고개에 당도하게 되고 이곳에서 주능선길로 가면 광장이 나타난다. 광장을 지나서부터 능선은 키를 넘는 억새 풀밭이 헤쳐 나가기가 어려울 정도로 무성하다. 초원을 지나면 다시 제2광장이 나타나고 이곳에서 왼쪽으로 오르면 정상이다.

검봉산은 춘천시 남산면 강촌리와 백양리 경계에 있는 해발고도 530.2m의 산으로 칼을 세워 놓은 것처럼 생겼다고 해서 칼봉 또는 검봉이라 한다. 강촌역에 내리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는 바위산이 바로 검봉산인데 산세가 매우 날카롭지만 그리 높지 않아 등산 코스로 매우 적당하다. 강촌역에서 병풍바위를 지나면 정상에 오를 수 있다. 정상에서 춘천 쪽을 바라보면 북한강과 그 양안의 도로와 철도가 보인다.

봉화산은 춘천시 남면과 남산면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해발고도는 486.8m이다. 홍천강과 북한강의 분수령 역할을 하는 곳으로 남쪽으로는 가정천이 흘러 홍천강으로 흘러들며, 북쪽으로는 구곡폭포와 연결되어 북한강 본류로 흘러든다. 부분적으로 암석 노출지가 분포되어 있으나 대체로 토양 피복이 양호하여 삼림 형성이 잘 되어 있어 여름철에는 암석과 어우러진 짙푸른 녹음이 인상적이다. 조선시대에는 봉수대가 있어 외적의 침입을 알리고 방비하는 역할을 수행하였던 곳이기도 하다.

구곡폭포는(九曲瀑布))는 아홉 굽이를 돌아 들어간다고 해 붙여진 이름이다. 이 폭포는 47m 높이에서 떨어지는 시원한 물줄기도 장관이지만 폭포를 둘러싸고 있는 바위 절벽의 경관 또한 그에 못지않게 아름답다. 폭포를 이루고 있는 암석은 원생대(5억 7천만년 전∼25억년 전)에 퇴적된 사암(砂岩)이 높은 온도와 압력을 받아 그 성질이 변형된 변성암의 일종인 규암이다. 단단한 암석으로 이루어진 지역에 계곡이 깊게 파이고 폭포가 만들어진 것은 단층과 습곡 등 지각운동으로 규암층 안에 발달한 층리와 절리가 발달해 있거나 규암과 성질이 다른 암석층이 만나기 때문이다. 따라서 구곡폭포는 물리적 풍화가 잘 되지 않는 단단한 암석인 규암과 비교적 무른 암석인 편마암의 경계면을 따라 난 계곡에 발달한 폭포이다.

구성폭포는 소양댐에서 배를 타고 청평사 입구에서 계곡을 따라 청평사를 오르다보면 우측에 있는 높이 9m의 폭포이다. 아홉 가지 소리를 낸다고 해서 구성(九聲)폭포라 한다.

10m 높의 등선폭포(登仙瀑布)는 춘천시 서면 덕두원리에 있다. 등선폭포 왼편 계곡을 오르면 비선폭포, 승학폭포, 백련폭포 등 크고 작은 5개의 폭포가 더 있다. 등선폭포를 이루고 있는 암석은 원생대(5억 7천만년 전∼25억년 전)에 퇴적된 사암(砂岩)이 높은 온도와 압력을 받아 그 성질이 변형된 변성암의 일종인 규암이다. 등선폭포를 비롯한 5개의 폭포가 자리 잡고 있는 등선계곡은 삼악산 서쪽 흥국사에서 매표소까지 남북방향으로 발달한 규암층 내의 절리에 의해 형성된 것이다.

북한강과 소양강 사이에 형성된 우두(牛頭)평야와 샘밭〔泉田〕 등은 기름진 충적지이다. 청평호 일부와 춘천호 · 의암호 · 소양호 등이 이 지역에 있는데, 이에 따라 청평호에 의한 남이섬, 의암호에 의한 위도 · 중도 · 붕어섬 등 하중도가 발달해 있다.

특히 소양댐, 춘천댐, 의암댐이 생기면서 인공호수로 인해 안개 일수가 상대적으로 많아져 농작물의 성장 발육에 다소 지장을 주게 되었고 호흡기질환, 관절환자가 급증하게 되었다. 그러나 댐으로 만들어진 인공호수는 주변의 산과 어우러져 낚시, 보트, 윈드서핑을 즐길 수 있는 휴양지 기능을 갖고 있다.

금강산에서 발원하여 내려오는 북한강 본류와 설악산에서부터 내려오는 소양강은 춘천분지의 중심부에서 만나 하류로 흘러가는데, 북한강유역에는 지촌천, 지암천, 월송천, 금산천 등 의 소지류가 유입되고, 소양강유역에는 추곡천, 부귀천, 지내천, 만천천, 공지천 등의 소지류 가 유입되어 하계망을 구성한다. 두 강 유역에는 홍수기에 상류로부터 부유물을 많이 포함한 퇴적물을 신속히 운반시켜 이루어진 넓은 충적평야가 발달되어 있다.

공지천은 춘천시 동내면과 동산면의 경계지인 응봉(일명, 매봉 759m)에서 발원하여 북서쪽으로 흘러 신촌리에서 동쪽에서 오는 곰실내를 합류하면서 춘천시 남부를 흘러 의암호로 흘러드는 하천이다.

삼포천은 춘천시 신동면 증4리에 있다. 춘천시 신동면과 동산면의 경계가 되는 금병산 능선이 이어져 있는 곳에서 발원한 조그만한 계곡 하천이다.

서천은 춘천시 남산면 서천리에 있다. 남산면과 남면의 경계가 되는 봉화산(486.8m)에서 발원하여 북한강으로 흘러든다.

의암댐은 1962년 3월에 착공해 1967년 12월에 준공된 의암댐은 길이 273m, 높이 30m, 담수량 8천만 톤의 수력발전용 댐이다. 1967년 7월 28일부터 담수를 시작하면서 의암호가 탄생하였다. 의암댐은 북한강과 소양강이 합류하는 지점에서 약간 남쪽으로 떨어진 신연강 협곡을 막아 건설한 것이다. 춘천을 호반의 도시로 만든 의암호는 춘천 시가지의 서쪽을 감싸고 있으며, 북쪽으로는 춘천호와 동북쪽으로는 소양호와 이어져 있다. 공지천과 만나는 의암호는 호수면이 폭 5㎞, 길이 8㎞의 타원형으로 옷 바위, 즉 의암(衣岩)의 이름을 따서 의암호라 했다. 춘천 분지를 흘러내리는 소양강과 북한강이 합쳐져 신연강이 되어 흐르던 강을 호수로 바꾸어 놓았을 뿐 아니라 위도, 중도, 하도 등 섬도 만들어 춘천을 호반의 도시로 만들었다.

춘천댐은 신북읍 용산리와 서면 오월리 사이 북한강 본류 협곡에 댐을 축조하여 그 저수의 낙차를 이용하는 수력발전소이다. 한국전력이 시공 감독한 이 발전소는 공사비 26억 7천여 만 원, 공사 연인원수 209만여 명, 담수량 1억 5천만 톤, 발전량 5만 7600㎾, 댐의 높이 40m, 길이 453m의 콘크리트 중력식 댐으로 1965년 2월 10일에 준공되었다. 칼프링식 일제 발전기 2대로 5만 7,600㎾의 발전량을 갖추고 주로 서울 지역에 송전하고 있다. 춘천댐 축조로 260여 만 평, 건물 1,400여 동이 수몰되었다. 춘천호는 춘천댐을 축조한 후 이루어진 인공호수이다. 상류는 파로호 밑까지 이어진다. 춘천호 호수면의 수위는 해발 130m로 의암호의 수위보다는 31m 높다. 따라서 이 호수에 유입되는 수계유역(水系流域) 103m 이하의 농경지는 모두 수몰되었다. 수려한 협곡에 이루어진 호수로서 계곡모양에 따라 S자 모양으로 이루어졌으며 마치 협곡을 흐르는 긴 강처럼 보인다. 호수의 면적은 약 17㎢이다.

기후는 남북한의 중간적 현상을 보이며 바다에서 멀리 떨어진 내륙에 위치함으로써 내륙성 기후의 특성을 나타낸다. 또한 온도의 차가 심해 연평균 기온은 섭씨 10도 이나 겨울에는 영하 20도 이하의 혹한을 기록할 때도 있다. 평균 강우량은 약 1,250㎜이며 여름에 집중되어 있다.

역사

춘천지역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때는 구석기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1990년대 후반 서면 월송리와 남면 한덕리에서 구석기시대 뗀석기들이 발굴되면서 그 증거를 확보할 수 있게 되었다.

신석기 유적으로는 1962년 교동 동굴유적이 학계에 보고되었고 1971년 내평리에서 집자리가 발굴 조사되었다. 이 외에 춘천 중도와 서면 신매리, 신북읍 천전리를 비롯한 석사동, 학곡리 등지에서도 빗살무늬토기편 등이 찾아지고 있어 신석기시대 유적이 비교적 넓은 지역에 걸쳐 분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춘천 내평, 중도, 신매리 등지에서 출토되는 토기들은 몸통의 무늬가 생략되거나, 생선뼈무늬만을 시문한 것으로 주로 후기신석기문화 요소들을 보이고 있다. 반면 교동동굴 유적에서는 한강유역의 일반적인 신석기문화요소와는 다른 우리나라 동북지방에서 주로 보이는 납작밑토기가 출토되고 동해안의 오산리 유적에서 보이는 이음낚시 등이 함께 나와 주목된다.

청동기 유적으로는 고인돌, 집자리, 민무늬토기산포지 등이 있는데 이전 시기에 비해 훨씬 넓은 지역에 확산되어 분포한다. 대표적 유적은 춘천시 중도와 서면 신매리에서 찾아진 취락유적과 북한강 줄기를 따라 형성되어 있는 고인돌 유적이다. 중도와 신매리 일원의 지층은 빗살무늬토기문화층 위에 구멍무늬토기를 주류로 하는 민무늬토기문화층이 퇴적되어 있고 그 위에는 이른바 중도식민무늬토기로 알려져 있는 초기철기시대 문화층이 누적되어 있음이 확인되었다. 고인돌은 탁자식과 개석식이 혼재하여 나타나는데 석곽형이나 석관형의 개석식 고인돌이 보이는 영동지역과 구분된다. 온의동, 삼천동, 천전리, 석사동 등에서도 민무늬토기편 외 돌화살촉, 돌도끼 등 돌 로 만든 유물들이 발견된다.

초기철기 유적으로는 경질민무늬토기와 회청색경질토기가 함께 출토되는 유적지로는 중도와 신매리 지역이 대표적이다. 또 돌무지무덤도 조사되었다.

여러 역사 · 지리서에 본맥지(本貊地) · 본맥국(本貊國) 혹은 고맥국(古貊國)이라는 기록이 있으나, 이는 전승에 의한 후대의 추정을 근거로 하고 있다. 맥국이 언제 형성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삼국사기』에 “맥국의 거수가 날짐승 들짐승을 사냥하여 왕에게 바쳤다.”라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이 시기에 이미 소국을 이루고 있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또 맥국이 언제까지 잔존했는지 알 수 없으나, 고구려가 성장하는 과정에서 춘천지역은 고구려에 흡수되어갔던 것으로 보인다. 춘천의 고지명 중에 오근내(烏斤乃)라고 하는 것이 있었던 것은 그러한 사실을 반영한 것이다. 오근내의 ‘내(乃)’는 고구려 지명 가운데 ‘나(那)’또는 ‘노(奴)’와 통하는 것으로 본래 소국을 뜻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춘천지방은 신라가 삼국을 통합하기 전까지는 대체로 고구려 영역에 속해 있었다고 볼 수 있겠으나, 삼국시대 말기에 삼국이 영토 각축을 벌이면서 춘천지역에도 변화가 일어난 것으로 보인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637년(선덕왕 6)에 우수주(牛首州)를 설치하고 군주(軍主)를 두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 이후는 삼국이 가장 치열한 영토전쟁을 벌이는 시기이기 때문에 계속해서 춘천이 신라의 영역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삼국통일 후인 673년(문무왕 13) 신라는 춘천지역에 수약주(首若州)를 설치하고 북방의 방비를 위해 주양성(走壤城)을 쌓았다.

그 뒤 신문왕대에 9주의 설치와 함께 그 영역이 정비되어 춘천지방은 1소경(小京)과 12군 26현을 관할하는 치소(治所)로서 역할을 하게 되었다. 그 후 경덕왕대에 삭주(朔州)로 개칭했다가 뒤에 광해주(光海州)로 다시 개칭되었다.

940년(태조 23) 춘천지역은 광해주에서 춘주(春州)로 고쳐졌다. 983년(성종 2)에는 전국에 12목(牧)을 설치하고 지방관을 파견하여 점차 중앙집권체제로 개편해갔다. 이 당시 춘천지역은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

그러나 995년에 이르러 지방제도를 절도사제(節度使制)로 개혁하면서 전국을 10개도로 나누고 그 하부구조로 주와 현을 설치했는데, 12목이 설치되었던 곳에 12절도사를 두고, 그보다 하위의 주에는 도단련사(都團練使: 7개소) · 단련사(11개소) · 방어사(21개소) · 자사(刺使: 15개소)를 두었다. 또 외적의 침입에 대비, 5개의 도호부(都護府)를 두었다.

고려 중기 이후 춘천은 외적에 의해 많은 어려움을 겪는다. 거란족, 몽골, 왜구의 침입 등 고려 사회가 겪었던 시련을 춘천지역도 예외없이 겪었다. 먼저 1211년 몽고가 여진족의 금(金)에 대한 정벌 을 개시하자 금의 통치에 불만을 가지고 있던 만주지방의 거란족이 봉기하였다. 그들은 1216년경 몽고군에게 쫓기자 고려 영내로 도망쳐오게 되었다. 고려의 김취려(金就礪) 등이 청천강 이북에서 격퇴하였으나, 개경까지 침입하기에 이르렀다. 이후 철원, 원주, 횡성 등 강원도 지역에까지 공격하였으며, 춘천도 전란에 휘말리게 되었다. 춘천의 주민들은 봉의산성에서 항전하였으나 마침내 성이 함락되어 안찰사 노주한(盧周翰) 이하 많은 관속들이 살해되었다.

그 후 고종 18년(1231년) 몽고가 고려를 침략하게 되는데, 제5차 침입시 춘천의 피해는 매우 심했다. 고종 40년(1253년) 7월에 고려를 침입한 몽고군은 서경(평양)과 토산(평남 상원), 양산성(황해 안악)을 거쳐 8월에는 철원의 동주산성을 공격하여 함락시키고, 9월 20일에 안찰사 박천기(朴天器)가 지키던 춘주성을 이른다. 안찰사 박천기는 대책이 궁하고 힘이 다하여, 먼저 성 안의 전곡(錢穀)을 불태우고 결사대를 거느리고 목책을 파괴하고 포위를 돌파하려 하였다. 그러나 참호를 만나 나가지 못하여 한 사람도 살아난 자가 없었다고 한다. 그리고 다시 왜구가 침입하여 약탈행위를 함으로서 고려는 또 한번의 시련을 겪지 않을 수 없었다. 침략지역도 전국적이었으며, 특히 우왕 9년 왜구는 강원도 내륙을 침략하였는데, 영월 · 평창 · 정선 · 강릉 · 횡성 등 강원도 거의 모든 지역이 피해를 입었다.

조선 건국 초기 태종이 즉위하면서 점차 통치체제를 정비, 1413년(태종 13)에는 8도제도가 실시되었다. 이 때 이 지역이 춘천군으로 개칭되었다. 군현 명칭에 개정에 있어서 춘천은 고려 후기 이래 무질서하게 승격되었던 읍(邑)의 격(格)을 호구와 전결(田結)수에 따라 재조정하는 문제와 부사(府使) 이하의 군현에 ‘주(州)’자가 붙은 읍명을 다른 글자로 대체하여 읍격을 명실상부하게 하고 발음상 비슷한 것은 서로 혼동되지 않게 필요에 따라 부윤(府尹) · 대도호부(大都護府) · 목사(牧使) 외에 ‘주’자를 띤 도호부 이하의 군현명은 모두 산(山) · 천(川) · 양(陽) · 성(城)의 글자로 개정하였는데 이로 인해 춘주는 ‘주’대신 ‘천’자를 쓰게 되었다.

그러나 군현의 병합은 해당 지역 주민의 반대가 심하여, 태종 15년(1415년)병합된 군현을 부설시키면서 새로운 조치를 취하였다. 즉 1천호를 단위로 인구와 전결을 기준으로 군현을 승강(昇降)시켜 행정구역의 개편이 합리적인 방향으로 접근되었다. 이에 따라 춘천은 1천호가 넘는 지역으로서 도호부(都護府)로 승격되어 종3품의 수령이 다스리는 고을로 되어 1894년 갑오개혁으로 행정구역이 개편될 때까지 큰 변화가 없었다.

1755년(영조 31) 역모사건 수습을 축하하기 위한 춘당대시(春塘臺試)를 보는 중 과지(科紙)에 임금을 비방하는 심정연(沈鼎衍)의 글이 발견된 사건이 있었다. 이 때 가담한 것으로 드러난 강몽협(姜夢協) 등이 춘천 출신이라 하여 현으로 강등되었다가 10년 후인 1765년에 복구되었다.

1888년(고종 25)에 그 격을 높여 유수부로 개편되었다. 2년 뒤에는 춘천유수였던 민두호(閔斗鎬)가 왕명에 따라 현재 강원도청 자리에 2년에 걸쳐 조정이 위급할 때 피난하기 위한 이궁을 지었다.

1895년(고종 32) 5월에 갑오개혁의 추진으로 지방제도가 8도 체제에서 23부 336군 체제로 개편되었는데, 이 때 강원도는 강릉부와 춘천부로 개편되고, 원주 · 영월 · 평창 · 정선 등 4개 지역은 충주부로 이속되었으며, 원주 감영을 폐지하고 춘천과 강릉에는 관찰부(觀察府)를 설치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춘천부는 춘천군 · 양구군 · 홍천군 · 인제군 · 횡성군 · 철원군 · 평강군 · 김화군 · 낭천군 · 회양군 · 금성군 · 양근군 · 전평군 등 13군을 관할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 개편이 500여 년 계속되던 행정제도를 개편하는 것이었으므로 인위적이라는 비판에 따라 다시 1년 2개월 만에 13군 1목 7부 331군 체제를 갖추게 되었다. 춘천은 춘천군 · 원주군 · 강릉군 · 회양군 · 양양군 · 철원군 · 이천군 · 삼척군 · 영월군 · 평해군 · 통천군 · 정선군 · 고성군 · 간성군 · 평창군 · 금성군 · 울진군 · 흡곡군 · 평강군 · 김화군 · 낭천군 · 홍천군 · 양구군 · 인제군 · 횡성군 · 안협군 등 26개 군을 관할하는 치소(治所)를 두고 이들을 관할하게 되었다. 약 500년 동안 원주에 있던 감영(監營)이 춘천으로 옮겨지게 되었다.

1906년 전국의 지방구획을 정리하게 되었는데, 이에 따라 당시까지 춘천의 속현이었던 기린면이 인제군으로 이속되었다. 1912년에 간행된 「구한국지방행정구역명칭일람」에 따르면, 춘천군은 당시 18개 면 191개 리로 편제되었다가, 곧 12개 면 103개 리로 다시 조정되었다.

이후 1917년춘천군 부내면이 춘천면으로 개칭되었으며, 1920년 지정면이 되었다. 1931년 4월 1일 춘천면이 읍으로 승격되었고, 1934년 서상면과 서하면을 병합하여 서면으로 개칭하였다. 1935년에는 경기도 포천군 이동면 도평리 일부가 춘천군 사내면 맹대리로 편입되었다.

또 1938년에는 읍 전역과 신남면 칠전리 일부를 포함하는 시가지 계획이 실시되었다. 1939년에는 당시 신북면의 우두리 · 마산리, 동내면의 석사리 · 후평리, 신남면의 퇴계리와 칠전리의 일부를 춘천읍으로 편입하면서 구역이 확장되었다. 그리고 신동면과 동내면을 통합하여 신동면으로 개편하게 되어 1읍 9면이 되었다.

1946년 6월 1일 춘천읍이 춘천부로 승격되어 24개 동을 관할하였다. 그리고 춘천군은 춘성군으로 개칭되어 행정구역이 갈라지게 되었으며, 1949년 지방자치법이 시행됨에 따라 종전의 모든 부가 시로 개칭되어 춘천부는 춘천시가 되었다.

한편, 구 춘천군에서는 1945년 광복과 동시에 38선으로 나뉘면서 사내면과 북내면 1개 이, 사북면 4개 이가 행정구역에서 제외되어 1읍 8면이 되었다. 1946년 6월 1일에는 춘천읍이 춘천시로 승격되면서 분리, 춘천군을 춘성군으로 개칭하고 8개 면을 소속시켰다.

한국 전쟁이 시작된 후 1951년 4월 15일 1 · 4 후퇴 때 부산으로 피난을 갔던 강원도청은 전세호전으로 원주읍 일산동에 강원도청 임시사무소를 개설했다. 이 임시사무소는 1953년 7월 30일 강원도청이 춘천으로 정식 수복할 때까지 도청의 모든 기능을 수행했다.

1954년에는 수복지역임시행정조치법의 시행으로 사내면의 4개 리와 북산면의 1개 리가 화천군으로 편입되었다. 1960년대 군사정부는 공약으로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추진해나갔는데, 이 과정에서 우선적으로 추진한 것이 춘천수력발전소 건설공사였다. 이 공사는 순수한 우리 기술에 의해 처음으로 추진되었다는 점에서 당시 전국적으로 관심을 끌었다. 현재 춘천시 신북읍 용산리와 서면 오월리를 가로지르는 이 공사는 1961년 9월 21일 착공, 3년 5개월만인 1965년 2월 10일에 준공되었다. 이후 춘천 · 서울간 경춘국도의 국도포장공사와 춘천 · 원주의 춘원국도 포장 공사, 의암댐 완공 등으로 춘천이 면모를 일신하게 되었다. 춘천으로서 또 하나의 획기적인 것은 1973년에 동양 최대의 사력댐인 소양강 다목적댐이 준공된 것이다. 이렇게 북한강의 수계를 이용한 수력발전소 건설로 춘천 주변에는 화천댐, 춘천댐, 의암댐, 소양댐 등이 들어서 수도 서울의 수자원 공급 및 홍수 조절기능을 담당하게 되었다.

1973년동산면 북방리가 홍천군 북방면으로, 풍천리가 홍천군 화촌면으로 편입되었다. 그리고 신동면 칠전리 · 삼천리 · 송암리와 서면의 금산리 · 현암리 일부 및 신북면 신동리가 춘천시로 편입되었으며, 북산면 수산리가 인제군 남면으로 편입되었다.

1989년 4월 1일 신동면 신촌출장소 지역이 동내면으로 승격했고, 남면 발산출장소 지역이 남면으로 승격하면서 종전의 남면을 남산면으로 개칭하였다. 1995년 1월 1일 춘천시와 춘천군이 통합되어 새로운 춘천시가 되었다.

1998년 3월 1일 시 조례 제295호로 동면 상걸출장소가 폐지되었으며, 1998년 10월 12일 시 조례 제310호로 5천 미만의 동사무소가 통폐합되었는데, 중앙동, 소낙동, 소양동이 소양동, 근화동으로, 호반동이 근화동, 약사동으로, 죽림동이 약사명동, 온의동, 삼천동으로, 칠송동이 강남동, 사우동, 우두동, 사농동으로, 신동이 신사우동으로 통합되었으며, 동 조례에 의거 서면 덕두원출장소, 사북면 용산출장소, 북산면 조교출장소가 폐지되었다.

유물 · 유적

춘천시 문화유적은 총 37건으로 국가지정문화재인 국보 1건, 보물 4건, 중요민속자료 5건이고, 강원도 지정문화재로는 유형문화재 5건, 기념물 12건, 문화재자료 10건 등이다.

국립춘천박물관에는 1967년 국보로 지정된 한송사석조보살좌상(寒松寺石造菩薩坐像)이 있으며, 보물은 근화동 793 · 1번지 소재 당간지주(보물, 1963년 지정), 소양로2가 162 · 2번지 소재 칠층석탑 (보물, 1963년 지정), 북산면 청평1리 소재 청평사 회전문(보물, 1963년 지정) 등이 있다. 춘천시 석사동 산27 · 1에 있는 허목 초상은 2007년에 보물로 지정되었다.

국가민속문화재로는 석사동 춘천국립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청풍부원군 김우명 상여가 1982년 지정되었다.

시도유형문화재로는 위봉문(강원도 유형문화재, 1971년 지정), 조양루(강원도 유형문화재, 1971년 지정), 서상리3층석탑(강원도 유형문화재, 1971년 지정), 춘천향교(강원도 유형문화재, 1985년 지정) 등이 있다.

시도기념물로는 혈거유지(강원도 기념물, 1971년 지정), 천전리 지석묘군(강원도 기념물, 1971년 지정), 삼악산(강원도 기념물, 1973년 지정), 적석총(강원도 기념물, 1976년 지정), 김청풍부원군 묘역(강원도 기념물, 1976년 지정), 신장절공 묘역(강원도 기념물, 1976년 지정), 봉의산성(강원도 기념물, 1979년 지정), 만천리 백로 · 왜가리 번식지(강원도 기념물, 1982년 지정), 증리 고분군(강원도 기념물, 1982년 지정), 신매리 석실고분(강원도 기념물, 1982년 지정), 청평사지(강원도 기념물, 1984년 지정), 의암 유인석묘역(강원도 기념물, 2000년 지정) 등이 있다.

문화재자료로는 소양정(강원도 문화재자료, 1984년 지정), 청평사 삼층석탑(강원도 문화재자료, 1984년 지정), 월송리 삼층석탑(강원도 문화재자료, 1984년 지정), 삼악산성지(강원도 문화재자료, 1984년 지정), 춘천최재근가옥(강원도 문화재자료, 1985년 지정), 춘천민성기가옥(강원도 문화재자료, 1985년 지정), 춘천김정은가옥(강원도 문화재자료, 1985년 지정), 방동리 고구려고분(강원도 문화재자료, 1985년 지정), 김정묘역 문인석(강원도 문화재자료, 1998년 지정), 춘천 한백록 묘역 및 정문(강원도 문화재자료, 2000년 지정) 등이 있다.

춘천시 관내에는 지정문화 외에도 선사유적, 사찰유척, 관방유적들이 다양하게 있다. 구석기시대의 유적은 1990년대 후반 서면 한덕리 · 월송리에서 뗀선기 유물이 발견되어 보고되었다. 신석기시대 유적은 후평동 봉의산 기슭의 혈거유지(강원도 기념물, 1971년 지정)에서 신석기시대의 토기와 간석기가 발견되었다. 또, 중도동의 서쪽 강변일대에서도 빗살무늬토기가 많이 출토되었으며, 사북면 지촌리, 서면 신매리, 북산면 내평리에서도 빗살무늬토기와 간석기가 출토된 바 있다.

청동기시대의 고인돌은 석사동 · 중도동, 신북읍의 천전리지석묘군(강원도 기념물, 1971년 지정)을 비롯하여 율문리 · 산천리 · 발산리 · 지내리, 동면 지내리, 동내면 학곡리, 서면 금산리 · 신매리 · 현암리, 북산면 내평리 · 추전리 · 대곡리 등에 널리 분포해 있다.

초기철기시대의 유적은 중도동에 있는 춘천중도적석총(강원도 기념물, 1976년 지정)이 있어 삼국시대 이전에 이미 춘천지방을 중심으로 맥국이 있었음을 입증하고 있다.

현재 중도에는 신석기시대 · 초기철기시대의 주거지가 복원되어 당시의 생활상을 보여주고 있다. 그 밖에 초기철기시대의 유적으로 서면 신매리, 신북읍 발산리 집자리와 지내리 · 산천리의 적석총이 있다.

삼국시대의 고분으로 서면 방동리의 고구려고분(강원도 문화재자료, 1985년 지정), 춘천 신매리석실고분(강원도 기념물, 1982년 지정)과 신동면의 춘성증리고분군(강원도 기념물, 1982년 지정) 등이 있다. 통일신라시대 고분이 봉의산 남쪽 기슭과 삼천동 · 사우동에서 발견되기도 하였다.

성지로는 소양로 1가에 춘천봉의산성(강원도 기념물, 1979년 지정), 서면 덕두원리의 삼악산(강원도 기념물, 1973년 지정), 사북면 고성리성지(古城里城址), 신북읍의 산천리성지(山泉里城址) · 가동성지(街洞城址)와 적리 용화산성지(龍華山城址) 등이 있다.

불교문화재로는 봉의사 · 천은사(天恩寺) · 영천사(靈泉寺) · 명불사(銘佛寺) · 소양사를 비롯하여 서면 덕두원리의 신흥사(神興寺) · 상원사(上院寺) · 흥국사 · 삼악사지(三嶽寺址), 서상리의 양화사지(楊花寺址), 현암리의 심곡사지(深谷寺址), 월송리의 조면사지(造麵寺址), 오월리사지, 신북읍 용산리의 약왕사(藥王寺), 신동면 정족리의 보광사(普光寺), 남산면의 광판리사지 · 창촌리사지, 사북면의 원평리사지 등이 있다.

그 밖에 소양로 2가의 춘천칠층석탑(보물, 1963년 지정), 춘천근화동당간지주(보물, 1963년 지정), 우두동의 우두산사지, 북산면 청평리의 청평사지(강원도 기념물, 1984년 지정) · 청평사회전문(보물, 1963년 지정) · 청평사삼층석탑(강원도 문화재자료, 1984년 지정) · 진락공부도(眞樂公浮屠) · 공주탑 · 환적당부도(幻寂堂浮屠) · 문수원중수비(文殊院重修碑), 남산면 창촌리의 삼층석탑, 서면 덕두원리의 흥국사(興國寺)삼층석탑, 월송리삼층석탑(강원도 문화재자료, 1984년 지정), 서상리삼층석탑(강원도 유형문화재, 1971년 지정) 등이 있다.

건축물로는 중앙로 1가의 위봉문(강원도 유형문화재, 1971년 지정), 우두동의 조양루(강원도 유형문화재, 1971년 지정), 교동의 춘천향교(강원도 유형문화재, 1985년 지정), 소양로 1가의 소양정(강원도 문화재자료, 1984년 지정)이 있다.

고가옥은 신동면 정족리에 춘천최재근가옥(강원도 문화재자료, 1985년 지정) · 춘천김정은가옥(강원도 문화재자료, 1985년 지정), 동면 장학리에 춘천민성기가옥(강원도 문화재자료, 1985년 지정)이 있다.

묘비로는 서면 안보리에 조선 현종의 장인 김우명(金佑明)의 묘인 김청풍부원군 묘역(강원도 기념물, 1976년 지정)과 신도비, 방동리에 고려의 개국공신 신숭겸(申崇謙)의 묘인 신장절공 묘역(강원도 기념물, 1976년 지정) 과 신도비, 신북읍 지내리에 조선 익종의 장인 풍은부원군(豊恩府院君) 조만영(趙萬永)의 묘와 신도비, 발산리에 고려 고종 때의 문신 박항(朴恒)의 묘, 남면 가정리에 흥성부원군 유몽표(柳夢彪)와 의병장 유인석(柳麟錫)의 묘 등이 있다.

비석으로는 소양로1가 봉의산 북쪽 기슭에 27기의 선정비군(善政碑群)이 있는데 원래 춘천시내의 여러 곳에 산재했던 것을 1940년에 이곳으로 옮겨 모아 놓은 것이다. 춘천향교 경내의 지계사호성비(池繼泗護聖碑)는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 때 지계사가 대성전에 봉안되어 있던 위패를 대룡산으로 피난시켰다가 전란 후 문묘에 다시 모신 사실을 기록한 것이다.

이 밖에 향교 경내의 장헌근모성지비(張憲根慕聖之碑)와 소양로1가의 춘천기계심순절비(春川妓桂心殉節碑) 등 비석이 있다. 또한, 신북읍 발산리에는 연맹왕국시대 맥국의 궁터가 있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사적지로서 근화동의 이소응창의소(李昭應倡義所)와 요선동 요선시장내의 3 · 1운동시위지는 1919년 3월 28일 춘천장날에 천도교인들이 중심이 되어 독립만세를 외치던 곳이다. 소양로 3가 춘천고등학교의 상록탑(常綠塔)은 1936년 학생들이 항일 독립운동을 하다가 36명이 검거된 것을 기념하여 세운 것이다.

동면의 춘천만천리백로 및 왜가리번식지(강원도 기념물, 1982년 지정)가 있다.

서면 안보리의 청풍부원군상여(국가민속문화재, 1982년 지정) 등이 지정문화재로 보호되고 있다.

교육 · 문화

조선시대 교육기관으로는 교동에 춘천향교가 있었다. 이 향교의 창건 연대는 알려지지 않고 있으며, 1520년(중종 15)에 부사 이만손과 교수 문경희가 중건했다는 것이 이 향교에 관한 최초의 기록이다.

서원으로는 문암서원(文巖書院) · 도포서원(道浦書院) · 구봉서원(九峰書院) 등이 있다. 문암서원은 1610년(광해군 2)에 신북읍 용산리에 설립되어 김주(金澍) · 이황(李滉) · 조경(趙絅) · 이정형(李廷馨)을 배향했으며, 1648년(인조 26)에 사액서원이 되었다. 도포서원은 1650년(효종 1)에 서면 신매리에 건립되었으며, 신숭겸(申崇謙) · 신흠(申欽) · 김경직(金敬直)을 배향했다. 구봉서원은 1830년(순조 30)에 동면 감정리에 설립되었다.

근대 교육기관으로는 1906년 춘천공립보통학교가 설립되어 오늘날의 춘천초등학교로 이어오고 있다. 사립학교로는 1911년에 설립된 한영지서원(韓英支書院), 1912년에 설립된 정명여학교(貞明女學校) 등이 있었다. 1910년에는 최초의 실업학교인 춘천공립농업학교가 춘천향교에서 개교하였다.

1924년에는 춘천공립고등보통학교, 1934년에는 춘천여자공립보통학교가 설립되었다. 1922년에 설립된 임시교원양성소는 1923년에 춘천도립사범학교로 개편되었으나, 1931년에 폐지되었다. 그리고 1939년에 설립된 춘천사범학교는 현재의 춘천교육대학교로, 1947년에 설립된 도립춘천농업대학은 현재의 강원대학교로 발전하였다.

교육기관으로는 2015년 현재 초등학교 42개교, 중학교 18개교, 고등학교 14개교, 특수학교 3개교가 있다. 대학은 전문대학 3, 교육대학 1개 교, 대학교 2개, 한국방송통신대학교가 있다.

1964년에 개원한 춘천문화원은 소양제(昭陽祭)를 비롯한 각종 문화행사를 주관하고, 향토문화를 연구 · 발전시키는 데 공헌하고 있다.

문화시설로는 문화예술회관, 강원국악예술회관 ,춘천예술마당, 인형극장, 어린이회관, 강원대 백령회관, 한림대 일송아트홀, 춘천시립도서관, 평생교육정보관, 춘성도서관, 국립춘천박물관, 애니메이션박물관, 강원경찰박물관, 강원대학교 중앙박물관, 현암민속박물관, 한림대학교 박물관 등이 있다.

기타 교육 및 문화시설로는 시립 도서관과 각 대학 및 기관에서 운용하는 다수의 도서관들이 있으며, 종합공연장, 일반공연장, 시군민회관, 복지회관, 청소년회관, 영화관 등이 있다.

체육시설로는 실내체육관, 종합운동장, 수영장, 사격장 등이 있다. 청소년수련시설로는 수련관, 문화의 집, 야영장과 유스호스텔이 있다.

민속

이 고장의 민속놀이로는 농사놀이 · 농악놀이 · 소놀이 · 횃불싸움 · 석전 · 씨름 · 그네뛰기 등이 있었으나 지금은 거의 자취를 찾아보기 어렵다. 이 중 횃불싸움과 석전은 상무정신이 강하게 반영된 놀이로, 정월대보름날 달맞이가 끝난 뒤 청년들이 모여 이웃마을과 모의전투를 벌이는 것이다.

여기서 승리한 마을에는 풍년이 든다 하여 서로 양보 없는 일전이 벌어졌는데, 위험성을 많이 내포한 놀이여서 일찍이 전승이 중단되었다. 이 밖에도 골패 · 투전 등과 아이들의 놀이로 비석치기 · 사방치기 · 땅뺏기 · 자치기 · 말타기 · 풀각시놀이 등이 있다.

동산면 조양리 · 봉명리 등지의 거리제와 신북읍 천전리(윗샘밭)의 기우제가 유명하다. 일명 장승제라고도 부르는 동산면의 거리제는 매년 음력 삼월 삼짇날이나 9월 9일 중양절을 택해 마을 어귀에 장승을 세우는 것인데, 장승은 잡귀를 쫓는 마을의 수호신으로 모셨다.

장승에는 ‘천하대장군’ · ‘지하여장군’이라 쓰는 외에도 그 밑에 ‘한성팔백리’ · ‘천팔십리’ 등의 이정(里程)도 써넣었다. 장승 세우기가 끝나면 마을사람들은 가래로 길을 정리하면서 「가래메기」라는 노래를 부르며 즐긴다.

천전리에서는 가뭄이 계속되면 마을사람들이 모여 회의를 하고 날짜와 참여 순서를 정한 뒤, 기우제를 지낸다. 제일이 되면 사람들은 차례로 소양강의 가운데로 들어가 3일에서 7일 동안 키를 거꾸로 들고 강물을 담아 키질을 하는데, 키에서 떨어지는 물 이상으로 비가 내리기를 기원하는 의미가 담겨 있다.

제를 지내는 동안 개 · 돼지 · 닭고기 등을 금하고 목욕재계를 하는 등 엄격한 금기가 지켜진다. 이 밖에도 관 단위로 국가의 안녕을 비는 제와 민단위로 가내의 안녕을 비는 기은제(祈恩祭), 마을의 태평안과를 비는 서낭제가 있었으나, 지금은 거의 전하지 않는다.

설화 · 민요

이 고장에는 「부래산이야기」 · 「공지천의 공지어(孔之魚)」 · 「봉의산혈전」 등의 설화가 전승되고 있다. 부래산은 원래 강원도 금성(金城)에 있는 금강산의 한 경(景)이었는데 큰 장마로 춘천까지 떠내려와 현재의 위치에 자리를 잡게 되었다 한다.

이 소식을 들은 김성의 한 관리가 해마다 춘천을 찾아와 산세(山稅)를 받아가는 통에 이 곳 원님은 고민하다가 병석에 눕고 말았다. 이를 안 일곱 살 난 원님의 아들이 김성의 관리를 보고 “부래산은 본래 김성의 산이지만 이 산이 깔고 앉은 땅은 춘천땅이니 깔고 앉은 땅값을 내라.”고 하자 그 관리는 당황하여 돌아간 뒤 다시는 오지 않았다 한다.

언젠가 이항복(李恒福)이 탐승차 춘천에 왔다가 이 이야기를 듣고는 웃으면서 지었다는 시 한 수가 지금껏 전해온다. “소양하에서 어린이가 이를 해결하기 위해 늦도록 헤아리니/ 벼슬 맡은 분들은 한 낚시에 늙었구나/ 근심하지 말지어다 세상의 일은 얇은 것들이니/ 저 부래산은 원래부터 이 자리에 있었던 것이 아닌가(晩計昭陽下 司君老一竿 勿憂生事薄 自有浮來山).”

「공지천의 공지어」는 이황(李滉)에 얽힌 이야기인데, 춘천박씨의 외손인 이황이 이곳에 머물고 있을 때 짚[藁]을 썰어서 곰짓내[공지천]에 내던졌더니 전부 진어(珍魚)인 공지어로 되었다고 한다. 「봉의산혈전」은 고려 고종 때인 1253년(고종 40)의 몽골 4차 침공 때 항몽구국(抗蒙救國)을 위해 싸운 이야기이다.

이 밖에도 청평사의 연기설화인 「공주와 상사뱀」, 삼악산에 얽힌 여러 지명 전설 등이 전하고 있다. 옛날 당나라에 어여쁜 공주가 살았는데 궁궐을 짓던 도목수가 그녀를 보고는 그만 상사병에 걸려 죽고 만다. 그 뒤에 도목수는 상사뱀으로 환생하여 공주의 몸에 붙더니 떨어지질 않는다. 왕은 뱀을 죽이려고 온갖 수단을 다 써보았지만 공주를 다치지 않고 뱀을 죽일 도리가 없었다.

이에 어쩔 수 없이 공주를 추방했고 공주는 정처없이 헤매다가 어느덧 이 곳 춘천까지 이르게 되었다. 당시 이곳에는 조그만 암자가 있었는데, 공주는 상사뱀에게 식량을 구해와야 하는데 뱀을 보면 다들 도망칠 터이니 잠시 기다리라고 이르고는 암자로 들어갔다.

공주가 자초지종을 말하고 암자의 스님에게 식량을 구해서 나오려 할 때 갑자기 벼락이 치더니 밖에서 기다리던 뱀을 내리쳤다. 그 뒤 공주는 자유로운 몸이 되어 고국으로 돌아가게 되었고, 왕은 감사의 뜻으로 이곳에 청평사를 크게 지어주었다. 또한 뱀이 죽은 자리는 아름다운 폭포로 변했다 한다.

삼악산에는 맥국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삼악산전투」를 비롯하여 칼봉〔劍峰〕 · 옷바위〔衣巖〕 · 망국대(亡國臺) · 할미봉 등의 지명전설이 전해온다. 이 밖에도 어머니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 순장의 길도 서슴없이 택한 우례의 효선미담(孝善美談)인 「죽림동 효녀 우례」, 신령의 계시로 산삼을 얻게 되었다는 「효자동과 거두리(擧頭里)」, 명당설화인 「우두산 솟을묘」, 기녀의 정절이 담긴 「춘천의 절기 계심」, 처녀가 아이를 낳고 죽인 패륜에 얽힌 「안방지 구렁」 등의 이야기가 전한다.

지령명당설화(地靈明堂說話)로 신숭겸의 묘, 박항의 묘, 김우명의 묘 이야기와 구국항전설화로 「되놈이 발광하는 고개」 · 「무작개이야기」 · 「종옥 종례 자매영웅」 · 「사오랑재이야기」 · 「명태산싸움」이 전해온다. 그리고, 효선미담(孝善美談)으로 은아릿골 · 잣방산과 덕쇠 등의 설화와 「비련의 쌍바위」 · 「등선폭포」 · 「노루목이야기」 · 「괴산과 쥐산」 · 「왜가리동산이야기」 등이 전해온다.

이 고장에 구전되고 있는 민요는 기능요인 농업노동요와 장례의식요가 중심이 되며, 「아리랑」 등 비기능요도 풍부하다. 농업노동요로는 모심기노래보다 논매기노래가 우세하다.

「초벌논매기노래」로는 “(앞)농자는 천하지대본/ (뒤)얼∼너널 상사되야/ (앞)농사 밖에 또있느냐/ (뒤)얼∼너널 상사되야/ (앞)상사뒤소리 한마디에/ (뒤)얼∼너널 상사되야/ (앞)논배미가 줄어드네……”와 같이 「뎅이소리」라고도 하는 「상사소리」를 중모리나 타령장단으로 씩씩하게 부르며, 「방아노래」도 부른다.

「두벌논매기노래」는 “에 에 멀리가고 온다네/모세 포장 둘러쳤나……”라고 앞소리를 메기면 여러 사람이 같은 사설과 가락으로 반복하는데, 매우 느리며 길게 빼는 구슬픈 느낌을 주는 것으로, 곳에 따라 「미나리」라 하기도 하며 밭 맬 때 부르기도 한다.

「밭매는노래」는 「미나리」라고도 하며 “행경만리 가는밤에/ 무슨포장 둘렀더나/ 민두래미 월궁풍악/ 국화포장 둘러쳤대.”등 어떤 사설이든지 한 곡조의 교환창으로 부르며, 남부지역의 모심기노래와 비슷하다.

밭을 갈면서 부르는 「소모는노래」는 “이려어∼ 어서가자/ 이려어∼ 아냐아∼/ 몰아라∼ 에∼ 어서 빨리 가자앙∼/ 아냐 에끼놈 아냐∼ 아냐아냐아냐/ 호호호호∼……”와 같이 일정한 사설이 있는 것이 아니라 소가 가는 데에 따라 알맞게 부르는 것으로 기능과 완전히 밀착되어 풍부하게 불리며, 가락은 구성지다.

장례의식요는 교통이 불편한 산간이라 장례습속이 쉽게 변하지 않아 잘 보존되고, 어느 곳에서나 풍부하게 불린다. 「상엿소리」는 느진 굿거리나 느진 중중모리 장단으로 타지방과 비슷한 사설로 부르며, “어화 넘차 오∼호”나 “오호”라는 여음이 경우에 따라 사용된다.

노래하기 전에 ‘고수레’를 외치는 것이 특이하다. “(앞)에헤∼ 호리이 다알고오/ 잡∼담은 그만두고/ (뒷)에헤∼호리이 다알고오/ (앞)회심곡으루 드리릴까/ (앞)답산가루 드리릴까/ (앞)답산가루 드리리다/ (앞)천지현황 생긴후에……”와 같이 선후창으로 부르는 「달구노래」는 작업지시 사설뿐 아니라 「회심곡」이나 「답산가」를 앞소리로 전창하기도 한다.

여성노동요로는 「베틀가」가 있으나 타지방과 같은 서사민요류는 아니다. 다른 여성노동요로도 서사민요류는 거의 없다. 비기능요로 가장 널리 불리는 것이 아리랑인데, 「강원도아리랑」과 「정선아리랑」 계통의 「춘천아리랑」이 있다.

「강원도아리랑」은 “아주까리 동백아 여지마라/ 누구를 괴자고 머리에 기름/ (후렴)아리아리 쓰리쓰리 아라리요/ 아리아리 얼씨구 노다가세/ 감꽃을 주으며 헤어진 사랑/ 그감 익을 때 오시만 사랑……”과 같이 남녀간의 애정을 주제로 한, 일찍부터 알려진 보편적인 가사와 가락으로 널리 불린다.

“춘천아 봉의산아 너 잘있거라/ 신연강 배터가 하직일세/ (후렴)아리랑 아리랑 아라리로구나/ 아리랑 고개넘어로 날 넘겨주게/ 우리나 부모가 날길으실제/ 성대장 주려고 날길으셨나/ 귀약통 납날개 양총을매고/ 벌업산 대전에 승전을 했네……”라고 하는 「춘천아리랑」은 이 고장의 의병활동을 가사에 담아 부른 것으로 성대장은 이 고장출신 의병대장 성찬환(成贊煥)을 가리킨다.

다른 타령류 노래로는 “무름댐이 처녀는 문배장사로 나간다/ 우두의 처녀는 참배장사로 나간다/ 동내구동 처녀는 산채장사로 나간다/ 명월리 처녀는 머루장사로 나간다.”와 같이 춘천의 옛 마을 이름과 특산물을 노래한 「큰애기노래」류의 「장사타령」이 있다.

그리고 “춘천장이라 샘밭장/ 신발이 젖어 못보고/ 홍천이라 구만리장/ 길이 질(길)어 못보고/ 이귀저귀 양구장/ 당귀 많아 못보고/ 한자두자 삼척장/ 배가 많아 못보고……”라고 하여 강원도 전지역을 노래하는 「장타령」이 있다. 이 밖에 「노랫가락」 · 「창부 타령」 등 경기민요도 불린다.

산업 · 교통

2015년 현재 춘천시의 산업별 업체 수는 농업 및 임업 13, 광업 10, 제조업 895, 전기, 가스 및 수도업 17, 건설업 616, 도 · 소매업 4,434, 숙박 및 음식점업 4,890, 운수업 1,609, 통신업 123, 금융 및 보험업 231, 부동산업 및 임대업 578, 사업서비스업 148, 공공행정 및 사회보장행정 99, 교육서비스업 980, 보건 및 사회복지사업 447, 오락문화 및 운동관련서비스업 654, 공공수리 및 개인서비스업 2,383 이다. 3차 산업인 서비스업종이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춘천은 산지가 넓게 차지하고 있는 총면적의 90% 이상을 산지가 차지하여 농경지가 적다. 총 경지면적 7,776㏊ 중 논이 3,044㏊, 밭이 4,732㏊로 밭이 많다. 주요 농산물로는 쌀은 신동면 · 남면 · 신북읍, 무와 배추는 신북읍 · 서면 · 신동면, 고추는 남면 · 신동면, 배와 복숭아는 신동면에서 많이 난다.

특히 춘천분지 주변에 발달한 산록완사면은 과수 생장에 유리하여 일대에서 과수재배가 성하다. 뿐만 아니라, 소비지에 인접해 있기 때문에 비닐하우스를 이용하여 4계절 채소를 공급하는 촉성, 만성재배가 성하여 고도의 집약적 원예농업이 발달되어 있다.

산록완사면은 초지가 많아 목축에 유리하여 젖소 · 돼지 · 한우 · 닭 · 벌꿀 등의 사육이 증가 추세에 있다. 한우 사육은 신북읍 · 서면 · 신동면, 젖소 사육은 동면 · 동내면 · 사북면 · 신동면과 퇴계동, 양돈은 동산면 · 동내면 · 신북읍 · 우두동, 양계는 남산면 · 동면 · 사북면 · 남면과 석사동, 사슴은 서면 · 신북읍, 양봉은 사북면 · 동면에서 활발하다.

임야 면적은 8만 2137㏊ 중 국유림 3만 1541㏊, 공유림 1만 7895㏊, 사유림 3만 2701㏊이다. 임상별로는 임목지 8만 1533㏊, 무임목지 604㏊이다. 주요 임산물은 목재 외에 버섯류 · 약초 · 산채 등이 많이 나며, 종실류로는 밤 · 대추 · 잣 등이 있다.

어업 활동은 소양호를 비롯하여 춘천호 · 의암호 등지에서 펼쳐지고 있다. 전업 어가 56호, 겸업어가 126호 어가인구는 652명이며, 어업종사자는 293명이다. 어선은 동력 140척, 무동력 5척이다. 주 어종은 향어 · 송어 · 잉어 · 붕어 · 쏘가리 등을 중심으로 한 내수면어종이다. 또 향어와 송어 등 내수면 양식업도 동면 지역을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다.

관내에서는 규석 · 장석 · 연옥(軟玉) 등이 생산되고 있다. 춘천 · 의암 · 소양강의 3개 수력발전소가 있고, 풍부한 공업용수 등으로 1968년부터 후평동에 춘천공업단지가 조성되었다. 특히 1973년에 지방공업 장려지구로 지정되었다. 1986년 남산면에 창촌(倉村), 1989년 퇴계동과 서면의 당림(塘林)에 조성된 농공단지에 섬유 · 식음료 · 조립금속기계장비 · 기계 등의 제조업체가 있다.

상업 활동을 보면, 1940년대까지만 해도 북한강 물길을 이용하여 뗏목으로 땔나무 · 자기 · 약초 · 산나물 · 농산물 등이 서울로 운송되었고, 서울의 물품이 춘천지역으로 수입되었다. 또한 상품매매의 거간(居間)과 어음거간도 상당수 있었고, 각지에서 보부상이 몰려들어 성시를 이루었다.

정기시장은 1770년대에 읍내장이 2 · 7일에, 율대리장(栗垈里場: 현재 율문리)이 1 · 6일에 개설되었고, 이것이 1830년대까지 계속되었다. 1912년대에는 읍내장 외에 옥산포장(玉山浦場)과 남면 광판리의 광판장(光板場), 사북면 지촌리의 서오지리장(鋤吾芝里場) 등이 1 · 6일, 신북읍 율문리의 천전장(泉田場)이 3 · 8일, 남산면 촌리의 창촌장(倉村場)이 5 · 10일에 개설되는 등 6개로 증가되었다.

1923년대에는 읍내장 · 천전장 · 광판장 및 사내면 사창리의 사창장(史倉場)이 2 · 7일에 개설되는 등 4개로 감소되었다. 1926년대는 읍내장은 전과 같으나 천전장 · 창촌장 · 서오지리장이 3 · 8일에, 광판장이 1 · 6일에 개설되는 등 5개로 증설되었다.

1938년대는 읍내장은 전과 같으나 천전장 · 광판장 · 서오지리장이 1 · 6일, 북산면 내평리의 내평장(內坪場)이 5 · 10일에 개설되어 5개장이 유지되었다. 1963년대는 읍내장이 종전과 같이 동산면의 동산장 5 · 10일에 개설되는 등 2개로 감소되었다. 1976년대는 읍내장과 광판장이 2 · 7일, 천전장이 1 · 6일, 동산면의 동산장이 5 · 10일에 개설되는 등 4개로 감소되었다. 현재는 모두 폐쇄되었으나, 춘천 퇴계동 우시장은 계속 개설되고 있다. 2015년 현재 정기시장 1개소, 일반시장 5개소, 백화점 1개소, 대형할인점 2개소가 있다.

교통은 서울에서 춘천을 오가는 경춘선(京春線) 철도가 1937년 사설(私設)의 경춘철도회사에 의해 운행되기 시작하였다. 시내에는 춘천 · 남춘천 · 김유정 · 강촌 · 백양리 · 굴봉산 등 6개의 역이 있다.

도로 교통은 춘천∼대구를 연결하는 중앙고속국도가 개통되었으며, 2009년 7월에는 서울춘천고속도로가 개통되어 수도권과도 곧바로 연결된다. 2017년 6월 양양군까지 개통되어 서울양양고속도로 전 구간이 개통되었다.

춘천시 내를 중심으로 서울 · 춘천 · 양구의 46번 국도를 비롯하여 철원 · 춘천 · 원주의 5번 국도 등이 방사상으로 연결되고, 용산∼화천을 잇는 407번 지방도가 개설되어 있어 교통의 요충을 이루고 있다.

한편, 시 · 군도가 15개 노선이 있어 도심은 물론 각 읍면지역과의 교통이 이루어지고 있는데, 이들 노선을 보면 다음과 같다. 1번 거두∼만천, 2번 장학∼천전, 3번 한덕∼정족, 4번 강촌∼조양, 5번 가정∼서천, 6번 품걸∼야시대, 7번 고성∼용화, 8번 산천∼추곡, 9번 신연∼고성, 10번 상걸∼조교, 11번 광판∼증리, 12번 추곡∼서천, 13번 만천∼산천, 14번 지암∼신매, 15번 감정팔미등이 있다.

관광

삼면이 의암호 · 춘천호 · 소양호의 인공호수로 둘러싸인 호반의 도시 춘천은 부근의 고산 준령과 협곡들이 서로 조화를 잘 이루고 있는 보기 드문 관광지이다.

춘천시는 1969년 1월 21일 중도, 위도, 삼악산을 배경으로 6,358㎡를 춘천호반 관광지로, 1981년 2월 13일 2,413㎡를 구곡폭포 관광지로, 1987년 6월 15일 문화재 및 소양호를 특색으로 청평사 일대를 관광지로 지정하여 관리하고 있다.

이밖에도 널리 알려진 명승지는 춘천8경(春川八景), 즉 소양정(昭陽亭) · 우두정(牛頭亭) · 고산(孤山) · 청평산(淸平山) · 구곡폭포(九曲瀑布) · 등선폭포(登仙瀑布) · 삼악산(三岳山) · 곡운구곡(谷雲九曲) 등이다.

소양정은 삼한시대에 건립되었다고 전해지는데, 춘천의 진산인 봉의산 밑 소양강가에 있다. 우두정은 하늘의 소가 강을 건너는 형상을 한 우두산에 있다. 고산은 중도 서북쪽에 우뚝 솟은 돌산인데, 주위 경치와 어우러져 춘천금강이라 불린다. 청평산에는 청평사 · 구성폭포(九聲瀑布) 등이 있다.

구곡폭포는 춘천권에서 제일 높고 큰 폭포이다. 등선폭포에는 ‘나무꾼과 선녀’의 설화가 전해오고, 이 폭포가 있는 삼악산은 의암호를 끼고 있어 절경을 이루는 데다가 산중에는 상원사와 흥국사가 있다. 곡운구곡은 사북면 지촌리에 있는데, 방화계(傍花溪) · 청옥협(靑玉峽) · 백운담(白雲潭) · 융의연(隆義淵) 등의 아홉 구비로 되어 있는 절승지이다.

김유정의 고향 실레마을은 1930년대 우리나라 농촌의 실상과 그 삶을 탁월한 언어감각과 투박하면서도 정확한 문장, 그리고 독특한 해학의 능청으로 묘사하고 있는 한국 단편문학의 대표적 작가인 소설가 김유정(1908~1937)의 출생지이다. 실레마을에 생가를 복원하고, 전시관을 건립하는 등 마을전체를 '김유정문학촌'이라는 문학공간으로 조성하고 매년 문학행사를 개최하면서 관광지로 각광을 받고 있다.

도립화목원은 춘천 강북에 위치하고 있다. 이곳은 자연을 아름답고 소중한 자원으로 가꾸고 보존하자는 취지에서 설립되었다. 종 다양성 확보로 유전자 은행 및 시험연구 기능을 강화하고, 향토자생물에 대한 대국민 자연 학습 장소를 제공하며, 주변 청소년 수련원 등과 연계한 도시민의 쾌적한 휴식공간을 제공한다. 주요시설 향토꽃나무전시관은 자생식물의 전시보존과 연구를 위한 자동시스템 유리온실(1,879㎡)로 향토관, 자생화관, 상록관, 증식보급관으로 나누어져 있으며 화목원을 한눈에 볼 수 있는 15m높이의 전망대가 있다. 산림박물관은 도립화목원과 연계하여 전국 제1의 산림도 위상에 걸맞는 도심속의 산림휴양과 자연학습공간 제공으로 새로운 산림문화 공간조성을 위하여 건립되었다. 산림박물관은 4개의 전시실과 기획전시실, 다목적실, 수장고 등에 산림사료를 보전 · 전시하고 연구자료를 제공하는 기능을 동시에 수행하고 있다.

시의 관광 코스는 서울방면에서 등선폭포 · 삼악산 · 춘천댐 · 중도유원지 · 위도유원지 · 골프장 및 우두산공원∼소양댐과 소양강유원지 · 삼천리유원지 · 춘천시내 관광의 순서가 있다. 또 다른 코스로는 등선폭포 · 의암댐 · 삼천리유원지 · 춘천시내관광 · 소양댐 · 우두산공원 · 춘천댐 · 중도유원지의 순서이다. 일정별 관광코스로 당일 코스는 소양댐, 청평사, 소양예술농원 일정, 강촌과 문배마을 일정, 공지천, 중도 일정, 남이섬 일정 등이 있고, 1박2일 코스로는 남이섬, 김유정문학촌 일정, 화목원, 박물관, 인형극장 일정, 소양댐, 청평사, 춘천옥광산 일정, 강촌, 삼악산, 공지천 일정 등이 있다. 2박3일 코스로는 남이섬, 소양댐, 청평사 일정, 소양댐, 청평사, 강촌 일정 등이 있다.

위락시설 지구인 유림공원과 호수 내 관광지인 중도와 위도유원지는 아직도 개발의 여지가 많다. 특히 위도는 국민광광지로 지정되어 있다. 누에고치 모양으로 물에 떠 있는 아름다운 환상의 섬으로 10만 여 평의 초원과 수림으로 조성된 관광지로, 휴양은 물론 단체와 가족 단위의 야유회에 적합한 곳이다.

이 시는 경춘국도의 확장으로 수도권 1일 관광 · 휴양지로 각광받고 있다. 또 서울 ~ 양양간 고속도로 개설공사와 춘천, 양구, 인제, 속초를 잇는 국도 확포장 공사로 더 많은 물류 유통과 관광객 유입이 이루어지고 있다. 소양댐에서 양구까지 관광 쾌속선이 운행되어 설악산 관광지와 연결되므로, 앞으로 관광객의 수는 날로 증가할 것이다.

춘천에서는 매년 소양강문화제, 춘천 애니매이션포럼, 춘천 마임축제, 춘천 닭갈비 막국수축제 등이 펼쳐진다. 이밖에도 김유정 문학제, 춘천 국제 태권도 대회, 조선일보국제마라톤대회 등 다양한 문화예술 체육행사가 진행된다.

소양강문화제는 향토의 전통 민속문화를 발굴해 계승, 보존하고 시민의 화합을 다지는 향토축제로서 전통민속행사와 현대예술이 조화된 종합축제이다. 소양강문화제는 민속, 체육, 문예, 시범행사 등이 다채롭게 펼쳐져 명실상부한 '춘천시민의 대축제'이다.

춘천마임축제는 예술 공연과 축제를 잘 조화시킨 행사로 세계적인 프랑스 미모스마임축제, 영국 런던마임축제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아시아의 대표적인 마임축제이다. 문화관광부 지정 '우수관광문화축제'에 3년 연속 선정됐으며, 문화개혁을 위한 시민연대가 지정한 '관객이 선정한 좋은 축제 BEST 5', 2000년에는 '강원도 축제평가 1위'에 오르기도 했다. 이 축제는 매년 5월 마지막 주 수요일부터 5일간 펼쳐진다.

매년 8월에 열리는 춘천인형극제는 인형극과 다채로운 부대행사를 통해 새로운 예술적 체험의 기회를 제공하는 공연예술축제이다. 2001년 개관한 춘천인형극장과 2004년 오픈한 춘천인형극박물관의 개관으로 인형극의 메카로 자리매김하였다.

읍 · 면
  1. 신북읍(新北邑)

시의 북부에 위치한 읍. 면적 57.23㎢, 세대 2,985세대, 인구 남자 3,942명, 여자 3,891명으로 총 7,833명이다(2015년 현재). 읍 소재지는 율문리이다.

본래 춘천부 북쪽 중간에 위치하므로 북중면(北中面)이라 하여 11개 리를 관할하였다. 그러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북내일작면(北內一作面)의 14개 리를 병합, 신북면으로 개칭되면서 10개 리를 관할하게 되었다.

춘천읍의 확장에 따라 1939년 우두(牛頭) · 마산(馬山)의 2개 리가 춘천읍에, 1973년 신동리가 춘천시에 편입되었고, 1995년 신북읍으로 승격되었다. 행정구역은 28개 행정리, 7개 법정리에 126개 반으로 편제되어 있다. 북 · 동부는 500∼600m의 산지로 둘러싸였다. 그리고 북한강과 소양강이 면의 서쪽과 남쪽을 흐르며, 하천연안에는 비교적 넓고 기름진 충적평야가 발달되어 있다.

경지면적률은 23%로 비교적 높고, 그 중 50%가 밭이다. 근교농업이 발달하여 주요 농산물로 무 · 배추 · 오이 · 토마토 등의 채소와 사과 · 포도 · 복숭아 등의 과일이 많이 생산된다. 돼지 · 한우 · 닭 · 사슴 · 산양 등을 찾는 관광객이 많아 매운탕집을 비롯하여 음식점이 많다.

교통은 5번 국도가 서부의 용산리를 통해 춘천시내∼화천, 46번 국도가 남부의 율문리와 천전리를 지나 양구와 연결되고, 407지방도가 용산∼화천을 이어준다. 한편, 2번 시도가 천전∼장학, 9번이 지내리와 고탄을 지나고, 13번이 산천리와 만천리를 연결하는 등 매우 편리하다.

문화유적은 천전리에 지석묘군, 지내리에 고분 · 고인돌 · 사지 및 풍은부원군 조만영의 묘, 율문리에 고인돌 · 선사유적, 산천리에 고인돌군 · 성지, 발산리에 고인돌군 · 궁전지 · 박항의 묘 등이 있다. 천전리에는 경주이씨의 동족마을이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3개 교, 중학교 1개 교, 고등학교 1개 교가 있다. 춘성도서관, 강원경찰박물관이 있다.

율문(栗文) · 천전(泉田) · 유포(柳浦) · 산천(山泉) · 발산(鉢山) · 용산(龍山) · 지내(池內) 등 7개의 법정리가 있다.

  1. 남면(南面)

시의 남서부에 위치한 면. 면적 73.20㎢, 541세대에 인구는 남자 613명, 여자 546명으로 총 1,159명이다(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발산리이다.

본래 춘천의 남쪽 산 바깥 지역이라 하여 남산외면(南山外面)이라 하다가 1895년 남산외일작면(南山外一作面)과 남산외이작면의 2개 면으로 분리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남산외일작면의 군자곡(君子谷) · 종자리(宗子里)의 2개 리를 동산외이작면으로 이관하고, 남산외이작면의 관천) · 박암의 2개 리, 남내이작면(南內二作面)의 의암(衣巖) · 마곡(馬谷) · 갈동(葛洞)의 3개 리를 남산외일작면에 편입하였다. 1917년에 남산외일작면은 남산면, 남산외이작면은 남면으로 개칭되었다.

1934년 2개 면을 다시 병합하여 남면으로 하면서 의암리를 신동면으로 이관하였다. 1989년 행정구역 조정 때 남면의 발산출장소 지역을 남면으로 승격시키고, 종전의 남면을 남산면으로 개칭하였다. 행정구역은 11개 행정리, 7개 법정리 그리고 30개 반으로 편제되어 있다.

산지가 많아 경지면적이 좁으며, 논보다 밭이 많다. 주요 농산물은 쌀 · 옥수수 · 콩 · 보리 · 잎담배 등이고, 한우 · 젖소사육과 양봉도 성하다. 최근에는 표고버섯 · 고추 등의 생산량이 증가하고 있다.

교통은 국도, 지방도가 없어 불편한 편이나, 최근 시도가 개설되어 점차 개선되고 있다. 즉 3번인 한덕∼정족노선이 창촌과 연결되고, 4번인 강촌∼조양노선이 동북부를 지나며, 5번이 가정∼서천, 12번이 추곡∼서천까지 연결된다.

가정리에 고흥유씨, 추곡리에 청산정씨, 후동리에 안동김씨의 동족마을이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1개 교가 있다. 기타 기관으로는 강원도학생교육원이 있다. 발산(鉢山) · 한덕(漢德) · 박암(博巖) · 관천(冠川) · 추곡(楸谷) · 후동(後洞) · 가정(柯亭) 등 7개 법정리가 있다.

  1. 남산면(南山面)

시의 남서부에 위치한 면. 면적 124.11㎢, 1,759세대에 인구는 남자 2,186명, 여자 1,962명으로 총 4,148명이다(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창촌리이다.

본래 춘천의 남쪽 산 바깥 지역이라 하여 남산외면(南山外面)이라 하다가 1895년 남산외일작면(南山外一作面)과 남산외이작면으로 분리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남산외일작면의 군자곡(君子谷) · 종자리(宗子里)의 2개 리를 동산외이작면으로 이관하고, 남산외이작면의 관천(冠川) · 박암(博巖)의 2개 리 및 남내이작면의 의암 · 마곡 · 갈동의 3개 리를 남산외일작면에 편입하였다. 그리고 1917년 남산외일작면은 남산면, 남산외이작면은 남면으로 개칭되었다.

1934년 2개 면을 다시 병합, 남면으로 하면서 의암리를 신동면으로 이관하였다. 1989년 행정구역 조정 때 남면의 발산출장소 지역이 남면으로 승격하고, 종전의 남면을 남산면으로 개칭하였다. 행정구역은 20개 행정리, 10개 법정리에 67개 반으로 편제되어 있다.

면의 대부분이 산지 지형으로서 경지면적율이 약 12%이고, 그 중 밭이 60% 이상을 차지한다. 북한강이 면의 북쪽과 서쪽을 둘러싸고 흐른다. 주요 농산물은 옥수수 · 감자 등이 많이 생산되고, 강촌천 주변에서는 약간의 벼농사가 행해진다. 산간지대에서는 약초와 산나물이 생산되어 계절에 따라 대도시 지역으로 반출된다. 창촌리에는 1986년 농공단지가 지정 · 조성되어 있다.

교통은 경춘선철도가 북한강을 따라 부설되어 있고 굴봉산역 · 백양리역 · 강촌역이 있다. 국도와 지방도는 없으나 시도가 개설되어 점차 개선되고 있다. 즉, 3번이 한덕∼정족, 4번이 강촌∼조양, 5번이 서현∼가정, 12번이 서천∼추곡 등이 있다.

관광지로는 구곡폭포, 방하리에 남이(南怡)섬 등이 있고, 강촌에서는 전국MTB챌린저대회가 열린다.

광판리에 이천서씨(利川徐氏), 방곡리에 개성왕씨(開城王氏)의 동족마을이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남산초등학교, 광판초등학교, 서천초등학교, 창촌중학교, 광판중학교, 송곡대학 등이 있다. 기타 기관으로는 남산도서관이 있다.

창촌(倉村) · 강촌(江村) · 광판(光坂) · 통곡(通谷) · 방곡(芳谷) · 수동(壽洞) · 서천(西川) · 백양(白楊) · 방하(芳荷) · 행촌(杏村) 등 10개 법정리가 있다.

  1. 동내면(東內面)

시의 중동부에 위치한 면. 면적 36.62㎢, 3,820세대에 인구는 남자 5,295명, 여자 5,160명으로 총 1만 455명이다(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신촌리이다.

본래 춘천부의 남쪽에 있다 하여 남부내면(南府內面)이라 불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남내일작면(南內一作面)의 9개 리, 남내이작면의 3개 리, 부내면(府內面)의 약사원리(藥司院里)를 합쳐 신남면이라 하다가 1939년 행정구역 개편 때 신동면과 동내면을 통합, 신동면으로 개칭하였다.

1973년신동면 삼천(三川) · 칠전(漆田) · 송암(松巖) 등 3개 리가 춘천시로 이관되었다. 그리고 1989년 신동면의 신촌출장소가 동내면으로 승격되면서 신동면에서 분리되었다. 행정구역은 21개 행정리, 5개 통, 21개 법정리, 110개 반으로 구성되어 있다.

대룡산지(大龍山地)의 서사면에 위치하여 대부분의 지역이 산지나 산록완사면에 해당된다. 때문에 경지면적율은 11.1%에 불과하며, 그 중 밭이 66%를 차지한다.

주요 농산물은 쌀 · 옥수수 등이며, 최근에는 사과 · 딸기 · 포도 · 배 · 복숭아 등의 과일과 채소, 원예작물 등의 생산이 증가하고 있다. 교통은 중앙고속국도가 시작되고, 5번국도가 면의 서쪽을 남북으로 달리며, 1번 시도가 거두∼만천, 감정∼팔미를 연결하는 15번 시도가 면의 북서부를 지나 비교적 편리하다.

문화유적은 거두리에 박주국(朴住國)의 효자각이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동내초등학교, 신촌정보통신학교가 있다. 기타 기관으로는 춘천교도소, 춘천국악원 등이 있다.

신촌(新村) · 거두(擧頭) · 고은(古隱) · 학곡(鶴谷) · 사암(沙巖) 등 5개 리가 있다.

  1. 동면(東面)

시의 동부에 위치한 면. 면적 134.26㎢, 세대 2,047세대, 인구는 남자 2,962명, 여자 2,695명으로 총 5,657명이다(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지내리이다.

본래 춘천읍 동쪽 산 밖에 있다고 하여 동산외면(東山外面)이라 하였다. 그러다가 1895년 동산외일작면(東山外一作面)과 동산외이작면으로 나뉘어, 동산외일작면은 하천곡(下泉谷) 등 15개 리를 관할하고, 동산외이작면은 신리 등 9개 리를 각각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동산외이작면의 신리 · 평촌 · 상걸의 3개 리를 편입, 다시 동산외일작면이라 하여 만천 등 10개 리로 개편하고, 1917년에 면 이름을 동면으로 고쳤다. 행정구역은 18개 행정리와 10개 법정리, 57개 반으로 편제되어 있다.

동쪽과 남쪽에 홍천군과 북산면, 그리고 동내면과의 경계에 가리산과 대룡산 등이 있다. 북쪽으로는 북산면과 신북읍과의 경계에 소양호가 있다.

춘천분지의 동쪽 사면과 소양호의 남쪽 사면의 산지지형으로 이루어져 있어 경지면적율은 7.9%에 불과하고, 그 중 밭이 70.6%로 밭이 많다. 주요 농산물은 쌀 · 옥수수 · 콩 등이다. 이 밖에 수박 · 배 · 자두 · 사과 · 복숭아의 재배도 많으며, 젖소 · 돼지의 사육과 양봉도 성하다. 소양댐이 건설된 이후 소양호의 내수면어업이 발달하여 송어 · 잉어 · 붕어 등의 양식이 성하다.

교통은 56번 국도가 장학리∼감정리를 지나 홍천군 구성포로 연결되고, 6번 시도가 품걸∼야시대, 10번이 상걸∼조교, 15번이 감정∼팔미로 연결된다. 문화재유적은 만천리에 백로 및 왜가리번식지, 장학리에 민성기가옥 등이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3개 교, 중학교, 고등학교, 전문대학 각 1개 교가 있다.

지내(枝內) · 만천(萬泉) · 장학(獐鶴) · 감정(甘井) · 월곡(月谷) · 품걸(品傑) · 품안(品安) · 상걸(上傑) · 신리(辛梨) · 평촌(坪村) 등 10개의 법정리가 있다.

  1. 동산면(東山面)

시의 남부에 위치한 면. 면적 80.81㎢, 681세대에 인구는 남자 898명, 여자 804명으로 총 1,702명이다(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조양리이다.

본래 춘천군 동쪽 산 밖에 있다 하여 동산외면(東山外面)이라 하였다. 그러다가 1895년 지방관제 개편 때 동산외일작면(東山外一作面)과 동산외이작면으로 분리되면서 동산외이작면의 지역이 되어 9개 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신리 · 상걸리가 동산외일작면(동면)으로 이관되고, 신리와 상걸리, 남외일작면의 군자곡 · 종자의 2개 리와 남내이작면의 휴암(鵂巖) · 갈동(葛洞)의 2개 리를 병합, 6개 리로 개편되었다. 1917년 동산면으로 개칭되었고, 1973년 북방리(北方里) · 풍천리(楓川里)가 홍천군으로 이관되었다. 행정구역은 14개 행정리, 35개 법정리 35개 반으로 구성되어 있다.

동쪽으로는 연엽산(850m)과 구절산이 산맥을 이루고, 서쪽은 구릉성 산지이다. 대부분의 지역이 산지로 경지면적율은 11.1%이며, 그 중 66.3%가 밭이다. 주요 농산물은 콩 · 옥수수 등이 많이 생산된다.

교통은 중앙고속국도가 원창 · 봉명 · 조양리를 지나고, 5번 국도가 면의 중앙을 남북으로 관통하면서 춘천∼홍천지역과, 4번 시도가 조양∼강촌을 연결하여 비교적 편리하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1개 교, 중학교 1개 교, 한국폴리텍Ⅲ 대학이 있다. 의료시설로 국립춘천정신병원과 춘천서인정신병원이 있다.

조양(朝陽) · 봉명(鳳鳴) · 원창(原昌) · 군자(君子) 등 4개 법정리가 있다.

  1. 북산면(北山面)

시의 북동부에 위치한 면. 면적 214.95㎢, 474세대에 인구는 남자 478명, 여자 394명으로 총 872명이다(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오항리이다.

본래 춘천의 북쪽 산 밖에 있다 하여 북산외면(北山外面)이라 하였고, 17개 리를 관할하였다. 그러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양구군 남면 상수내리(上水內里)를 병합했고, 1917년 북산면으로 개칭되었다. 8 · 15광복 후 추곡리 · 대곡리 · 추전리의 일부가 북한에 들어갔다가 1954년 수복되었다. 1973년 조교출장소가 개설되었으며, 수인리는 인제군 남면으로 편입되었다. 1992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춘성군이 춘천군으로 변경되었으며, 1995년 통합 춘천시 출범으로 15개 행정리와 10개 법정리 15개 통, 36개 반을 관할하는 북산면이 되었다.

동쪽에 바위산, 남쪽에 가리산, 북서쪽에 청평산이 있다. 면 중앙에 소양호가 있어 면이 남북으로 양분된다. 소양호에 의한 수몰지구가 늘어나 경지면적율은 3.7%에 불과하고, 그 중 밭이 80.7%나 차지한다.

주요 농산물은 콩 · 옥수수 등이 많이 생산된다. 소양호에서는 내수면 어업이 발달되어 있다. 소양댐에 의한 수몰로 도로교통은 불편하나 1994년 46번 국도가 소양호반을 따라 양구읍까지 포장되었다.

그리고 8번 시도가 산천∼추곡을 연결하며, 소양호 남쪽에는 10번 시도가 지나고 있다. 소양댐 선착장에서는 청평사 · 양구 · 신남 등지로 선박교통이 이용되고 있다.

문화유적은 청평리에 청평사회전문 · 청평사지 · 청평사삼층석탑 · 청평사문주원중수비 등이 있다. 그리고 내평리에 지석묘 · 선사주거지, 추전리에 지석묘 · 선사유적, 대곡리에 선사유적 등이 있다. 1973년 완공된 소양댐은 동양 최대의 사력(砂礫)댐으로서 관광명소로 널리 알려져 있고, 주위의 청평사 · 구성폭포(九聲瀑布) · 추곡약수(楸谷藥水) 등지에는 많은 관광객이 찾는다.

교육기관으로는 추곡초등학교가 있다.

오항(吾項) · 내평(內坪) · 청평(淸平) · 부귀(富貴) · 추곡(楸谷) · 대곡(垈谷) · 추전(楸田) · 대동(大同) · 조교(照橋) · 물로(勿老) 등 10개 리가 있다.

  1. 사북면(史北面)

시의 북서부에 위치한 면. 면적 152.56㎢, 1,143세대에 인구는 남자 1,272명, 여자 1,341명으로 총 2,613명이다(2015년 현재). 면소재지는 신포리이다.

본래 사탄향(史呑鄕)의 바깥쪽에 위치하여 사탄외면(史呑外面)이라 하였다. 1895년 사외면(史外面)으로 개칭되었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북내이작면(北內二作面)의 6개 리를 병합, 사외면과 북내이작면의 이름을 따서 사북면이라 하였다.

고성 · 고탄 · 인람 등 8개 리를 관할하다가 1934년 서상면(西上面)의 원평 · 지암의 2개 리를 편입하였다. 1945년 8 · 15광복 후 북쪽의 신포 · 지촌 · 가일 · 오탄 등 4개 리가 북한에 속해 있다가, 1954년 수복되었다. 행정구역은 16개 행정리, 10개 법정리에 62개 반으로 편제되어 있다.

남동쪽 신북읍과의 경계에 수리봉, 서쪽 가평군과의 경계의 응봉 · 촛대봉이 솟아 있는 등 면 전체가 험한 산지를 이룬다. 북한강이 중앙을 남북으로 흘러 동서로 양분한다. 평지가 극히 적어 경지면적율은 8.1%에 불과하고, 그 중 밭이 69.4%를 차지한다. 주요 농산물은 옥수수 · 콩이고, 특히 양봉은 군내 1위이다. 신포리에 있는 신포광산에서는 형석이 채굴되며, 주로 일본으로 수출된다. 춘천호에서는 내수면어업이 행해지고 있다.

교통은 5번 국도가 면의 중앙을 남북으로 달려 화천∼춘천으로 연결된다. 그리고 56번 국도가 오탄을 지나 화천군 사내면으로 이어지며, 407번 지방도가 면의 동쪽을 남북으로 지나 춘천댐∼화천을 잇는다. 또한 7번 시도가 고성∼용화, 9번이 신연∼고성, 14번이 지암∼신매를 연결하는 등 점차 개선되고 있다.

문화유적은 원평리와 고성리에 사지가 있다. 송암리에 전주이씨, 가일리에 청송심씨의 동족마을이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2개 교(분교 1개 교), 중학교 1개 교가 있다.

신포(新浦) · 지촌(芝村) · 가일(佳日) · 오탄(梧灘) · 원평(圓坪) · 고탄(古呑) · 고성(古城) · 송암(松巖) · 지암(芝巖) · 인람(仁嵐) 등 10개 법정리가 있다.

  1. 서면(西面)

시의 중서부에 위치한 면. 면적 141.61㎢, 1,740세대에 인구는 남자 2,055명, 여자 2,127명으로 총 4,182명이다(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금산리이다.

본래 춘천의 서쪽에 위치하여 서상면(西上面)과 서하면(西下面)으로 나뉘어 있었다. 1934년 서상면의 지암리와 원평리는 사북면으로 이관되고, 서상면과 서하면이 병합되어 서면으로 되었다. 1973년 현암리와 금산리의 일부가 춘천시로 이관되었다. 행정구역은 23개 행정리, 10개 법정리에 88개반으로 편제되어 있다.

면의 서쪽에 몽덕산(蒙德山, 660m) · 가덕산(加德山, 858m) · 북배산(867m) 등이 솟아 있다. 중앙부의 신매리 · 금산리 등 평야지형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산지이다. 산지지형이 탁월하여 경지면적율은 9.6%이고, 그 가운데 밭이 55.8%를 차지한다.

주요 농산물은 쌀 · 옥수수 · 보리이며, 그 외에 마늘 · 양배추를 비롯한 채소류와 수박 · 복숭아 · 배 · 포도 등 원예작물 및 잎담배 생산이 많으며, 양계 · 양잠 · 사슴 사육도 이루어진다. 당림리에는 1989년 농공단지가 지정 · 조성되어 있다.

46번 국도가 북한강변을 지나 화천 · 춘천시내와 연결되고, 의암교를 지나 가평과 서울로 연결된다. 한편 9번 시도가 의암호반을 따라 신연∼고성(사북면), 14번이 신매∼지암을 연결하여 비교적 편리하다. 문화유적은 안보리에 청풍부원군상여 · 청풍부원군묘역, 서상리에 삼층석탑 · 김봉희가옥 · 고분군, 방동리에 신장절공묘역 · 고분, 신매리에 석일고분, 월송리에 삼층석탑 · 사지, 금산리에 고인돌군, 현암리에 적석총 · 태봉 · 사지 · 고인돌군, 덕두원리에 태봉 · 흥국사삼층석탑, 오월리에 사지 등이 있다.

서상리에 평산신씨와 선산김씨, 금산리에 파평윤씨, 금산리와 방동리에 청주한씨, 월송리에 평해황씨, 신매리에 남양홍씨의 동족마을이 있다. 주요 관광지로는 덕두원리에 등선폭포와 삼악산이 있고, 신매리에 위도가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금산초등학교, 당림초등학교, 서상초등학교, 강서중학교가 있다. 기타 기관으로는 에니메이션박물관과 현암박물관이 있다.

금산(錦山) · 서상(西上) · 신매(新梅) · 월송(月松) · 현암(玄巖) · 방동(芳洞) · 덕두원(德斗院) · 안보(安保) · 당림(唐林) · 오월(梧月) 등 10개 법정리가 있다.

  1. 신동면(新東面)

시의 중남부에 위치한 면. 면적 48.19㎢, 913세대에 인구는 남자 1,289명, 여자 1,343명으로 총 2,632명이다(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증리이다.

본래 춘천부의 남쪽에 있어 남부내면(南部內面)이라 하여 강창(江倉) · 농암(籠巖) · 송현(松峴) 등 9개 리를 관할하였다. 그러다가 1914년 행정구역개편 때 남내일작면(南內一作面)의 9개 리, 남내이작면의 3개 리, 부내면(府內面)의 약사원리(藥司院里)를 합쳐 신남면(新南面)이라 하였다.

1939년 행정구역 변경 때 동내면의 5개 리, 남산외이작면의 의암리를 편입하여 신동면이라 하였다. 1973년 행정구역 조정으로 칠정 · 송암 · 삼천 등 3개 리가 춘천시로 이속되었다. 그리고 1989년 행정구역 조정 때 관내의 신촌출장소 지역을 동내면으로 승격되면서 분리되어, 그 나머지 지역이 신동면으로 되었다. 행정구역은 12개 행정리와 5개 법정리 그리고 43개 반으로 구성되어 있다.

춘천분지 남쪽 산지의 북사면에 해당되어 동쪽에 금병산(金屛山, 655m), 북쪽에 국사봉(203m) · 안마산(鞍馬山, 304m)이 있다. 면의 중앙을 팔미천(八味川)이 서쪽으로 흘러 신연강(북한강)으로 흘러들면서 약간의 평지를 형성하고 있다. 산지가 많아 경지율이 14.1%로 낮고, 그 중 밭이 55.9%를 차지한다.

주요 농산물은 쌀 · 보리 · 옥수수 등이 생산되며, 채소 및 포도 · 복숭아 · 자두 · 사과 등 과일생산과 젖소 · 닭 · 칠면조 · 한우 · 돼지 등 가축의 사육도 성하다. 교통은 경춘선철도가 면의 중부와 서부를 지나며 김유정역이 있다. 도로는 46번 국도가 중서부를 지나 서울과 연결되고, 3번 시도가 정족∼한덕, 11번이 증리∼광판, 15번이 팔미∼감정을 연결하여 매우 편리하다.

문화유적은 증리에 고분군, 정족리에 최재근가옥 · 김정은가옥 등이 있다. 그리고 실레마을은 문학인 김유정의 고향으로 생가를 복원하고, 전시관을 건립하는 등 마을 전체를 ‘김유정문학촌’이라는 문학공간으로 조성하였다. 주요시설로는 생가, 외양간, 디딜방앗간, 휴게정, 전시관, 문학촌을 중심으로 김유정 소설 속 실제지명을 순례할 수 있는 문학산책로와 금병산 등산로가 조성되어 있다.

정족리에 성주이씨, 증리에 청풍김씨의 동족마을이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1개 교가 있다.

증(甑) · 정족(鼎足) · 의암(衣巖) · 혈동(穴洞) · 팔미(八味) 등 5개의 법정리가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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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사(高麗史)』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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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의 설화Ⅰ』(강원도, 2006)
『지방행정구역요람』(행정자치부, 2000)
『춘천백년사』(춘천시, 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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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관광자원총람』(한국관광공사, 1984)
『춘주지』(춘천시·춘성군, 1984)
『한국지명요람』(건설부국립지리원, 1983)
『태백의 읍면』(강원일보사, 1975)
『강원총람』(강원도, 1975)
『한국지명총람』(한글학회, 1967)
『강원도지』(강원도지편찬위원회, 1959)
춘천시청(www.chuncheon.go.kr)
춘천문화원(www.ccmunhwa.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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