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영 ()

가족
의식행사
중국의 혼인의례인 육례 중 하나로 신랑이 신부집에서 신부를 맞아와 자신의 집에서 혼인을 진행하는 혼례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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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요약

친영은 중국의 혼인의례인 육례 중 하나로 신랑이 신부집에서 신부를 맞아와 자신의 집에서 혼인을 진행하는 혼례의식이다. 성리학을 이념으로 조선을 건국한 사대부들은 유교식 혼인의례를 조선에서도 시행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신랑이 신부집에서 혼인생활을 하는 남귀여가의 전통적인 혼인 습속으로 인해 조선후기까지도 친영은 뿌리내리지 못하였다. 왕실을 비롯한 사대부층이 친영 도입을 위해 끈질기게 노력한 끝에 혼인 후 신부집에서 생활하는 기간을 단축시키는 데는 영향을 주었다. 그리하여 18세기에는 1, 2년 내에 시집에 들어가는 것이 보편화되기 시작하였다.

정의
중국의 혼인의례인 육례 중 하나로 신랑이 신부집에서 신부를 맞아와 자신의 집에서 혼인을 진행하는 혼례의식.
연원 및 변천

친영(親迎)은 납채(納采) · 문명(問名) · 납길(納吉) · 납징(納徵) · 청기(請期) · 친영으로 이루어진 6례의 마지막 절차로 중국의 전형적 혼인예법의 하나이다. 『의례』 · 『예기』 등에 수록되어 있는 6례는 춘추시대에 마련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흔히 ‘고례(古禮)’로 통칭된다. 송대에는 고례의 예문이 번쇄하다 하여 『주자가례』에서 의혼(議婚) · 납채 · 납폐(納幣) · 친영이라는 4례로 간소화시켰다.

중국의 혼인의례는 한국 · 일본 · 베트남 등의 동아시아 지역에서 유학자들에 의해 이상적인 의례로 받아들여졌다. 조선을 건국한 사대부들은 성리학의 이념을 사회 각 부면에 적용하면서 혼인의 경우에도 『주자가례』에 따라 친영례를 시행하고자 하였다. 신랑을 신부보다 앞세우는 ‘남선어녀(男先於女)’의 관념을 내포한 친영의 의리를 천지 · 군신의 의리와 동등한 의리로 간주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고려시대 이래의 남귀여가(男歸女家) 혼속을 인위적으로 바꾸는 데 대한 거부감 때문에 친영례의 시행은 큰 저항에 부딪쳤다. 이에 전통적 혼속인 속례(俗禮)에 따르되 친영혼의 일부 절차를 받아들이려는 타협책이 모색되었다. 명종대에 마련된 ‘ 반친영(半親迎)’과 인조대에 시도된 ‘ 가관친영(假館親迎)’이라는 혼인절차가 그것이다. 그러나 2가지 방안 모두 제대로 시행되지 못하였다.

18세기에 들어오면 ‘반친영’이나 ‘가관친영’이라는 변형된 형태로라도 친영례를 시행하려던 사대부들의 노력조차 중단되고, 남귀여가의 혼례방식을 약간 변형한 ‘신속례(新俗禮)’를 수용하는 방향으로 낙착되었다.

행사내용

『주자가례』의 친영 절차는 다음과 같다. 신랑의 아버지가 사당에 고한 후 아들에게 술을 따라주며( 초례(醮禮)) 신부를 맞아올 것(친영)을 명한다. 신부의 집에서도 신부의 아버지가 사당에 고하고 신부에게 술을 따라주며 시부모를 공경할 것을 명한다. 신랑이 아버지의 명을 받아 신부집에 가서 기러기를 전하는 전안례(奠雁禮)를 행한 후 먼저 말을 타고 떠나면 신부의 수레가 뒤따른다. 신랑집에 도착하면 서로 맞절하고(교배(交拜)) · 함께 음식을 먹고(동뢰(同牢)) · 표주박 잔으로 술을 마시는 합근(合巹) 의식을 행하는데, 이 절차가 신랑과 신부가 처음으로 대면하여 인사하는 상견례(相見禮)로 성혼의 마지막 절차이다.

친영은 한국의 전통혼례인 남귀여가혼과 혼인절차상 충돌되는 요소를 가지고 있었다. 친영혼에서는 혼인 당일 신랑집에서 상견례를 한 후 동침하고, 혼례 다음날 시부모를 뵙고(현구고례(見舅姑禮)) 신랑집에서 신혼생활을 시작하였다.

이에 반해 남귀여가혼에서는 성혼 첫날 신부집에서 동침한 후 3일째 되는 날에야 정식 상견례를 하고 신부집에서 신혼생활을 시작하였다. 따라서 시부모를 뵙는 현구고례는 별도의 날을 잡았던 것이다.

이러한 남귀여가혼의 거주제와 혼인절차는 당시 식자층에게 문제로 지적되어 친영례를 시행하여야할 명분이 되었다. 처방거주(妻方居住)와 신혼부부가 상견례 이전에 동침하는 것이 예의에 벗어나는 것으로 받아들여졌던 것이다.

그러나 고려시대 이래의 남녀균분상속제나 음서제 등과 결부된 오랜 습속을 인위적으로 바꾸는 데 대한 거부감 때문에 친영례의 시행은 큰 저항에 부딪쳤다. 전통적 남귀여가혼이 완강히 고수되자 전통적 혼속을 따르되 그 절차의 일부만이라도 친영 절차에 가깝게 바꾸려는 타협책이 모색되었다.

그 방안의 하나가 남귀여가혼의 절차 중 외설스럽다고 지적받는 삼일째의 상견례를 성혼 당일로 바꾸는 ‘당일 상견례’의 시행이었다. 이러한 움직임을 주도하였던 것은 서경덕과 조식이었다. 이후 사대부의 혼례는 대부분 ‘당일 상견례’에 의한 남귀여가혼이 주류를 이루게 되어 이러한 방식이 새로운 속례(이하 ‘신속례’)가 되었다.

당일 상견례가 어느 정도 사족들에게 수용되기 시작하자 다시 ‘반친영’이라는 새로운 방안이 등장했다. 반친영은 혼례를 신부집에서 행하되 ‘당일 상견례’를 시행한다는 점과 혼인 다음날 시부모를 뵙는 의식인 ‘명일현구고례(明日見舅姑禮)’를 치른다는 점을 그 특징으로 한다.

그러나 ‘반친영’은 서울의 일부 사대부가를 중심으로 받아들여졌을 뿐 널리 시행되지 못하였다. ‘명일현구고례’의 시행을 위해 신랑집과 신부집의 거리가 당일 왕복할 만큼 가까운 거리라야 한다는 물리적 제약 때문이었다.

17세기 예학의 심화와 함께 고례의 시행이 다시 화두로 등장하면서 ‘반친영’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친영혼의 요소를 좀 더 보강하려는 새로운 시도가 인조대 무렵 나타났다. ‘가관친영례’가 그것이다. 가관친영은 신랑집과 신부집 사이에 한 장소를 빌어(가관(假館)) 혼례를 치르는 방식이다. 원거리 혼인에 대비해 주자가 마련한 것으로 그 구체적 절차가 『주자가례』에 소개되어 있다.

그러나 지나치게 형식적이고 가식적이라는 점 때문에, 인조 대부터 50여 년간 호서사림을 중심으로 시도되다 중단되고 말았다.

친영은 조선후기 이래 점차 ‘신랑이 신부를 신랑집으로 맞아와 혼례를 치르는 것’이라는 본래의 의미가 약화되다가, 일제시대에 이르면 신부집에서 혼례를 진행하는 신속례의 혼인을 지칭하는 용어로 변질되기에 이르렀다.

의의와 평가

신랑집에서 혼례를 치르고 혼인생활을 시작하게 되는 친영은 동아시아 삼국 중에서는 주로 중국에서 발달한 혼례방식이다. ‘남자가 여자에 앞선다’라는 가부장적 관념을 내세운 친영은 상고시대부터 발달한 중국의 ‘종법제’적 질서와 관련이 깊은 것으로 보인다. 한국에서는 친영이 전통적 혼인습속의 저항으로 조선후기까지도 좀처럼 뿌리내리지 못하였다.

그러나 성리학의 이념에 따라 친영을 실시하려는 사대부층의 끈질긴 노력은 혼인 후 신부집에서 생활하는 기간을 단축시키는 데 영향을 주게 되었다. 18세기에 이르면 1∼2년 내에 시집에 들어가는 것이 보편화되기 시작하였던 것이다. 여기에는 남녀균분상속 관행의 약화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참고문헌

『한국의 전통혼례 연구』(박혜인,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 1988)
「조선중기 사대부의 혼례형태: 가관친영례(假館親迎禮)의 시행을 중심으로」(장병인, 『조선시대사학보』 45, 조선시대사학회, 2008)
「조선중기 혼인제의 실상: 반친영(半親迎)의 실체와 그 수용여부를 중심으로」(장병인, 『역사와 현실』 58, 한국역사연구회, 2005)
「조선전기 혼인의례와 혼인에 대한 규제」(장병인, 『조선전기의 혼인제와 성차별』, 일지사, 1997)
「조선 중·후기 사대부의 혼례방식: 신속례(新俗禮)·반친영(半親迎)·가관친영(假館親迎)의 시행을 중심으로」(장병인, 『한국사연구』 169, 한국사연구회, 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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