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21년(세종 3) 현유(賢儒)의 위패를 봉안, 배향하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하여 태인면 서쪽 3리 지점에 창건되었다. 1510년(중종 5) 현재의 위치로 이전하였으며,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가 그 뒤 복원하였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정면 3칸, 측면 3칸의 대성전, 정면 5칸, 측면 3칸의 명륜당, 정면 4칸, 측면 2칸의 만화루(萬化樓) · 장수재(莊修齋) · 양사재(養士齋) · 사마재(司馬齋) · 고직사 등이 있다. 대성전에는 5성(五聖), 송조4현(宋朝四賢), 우리 나라 18현(十八賢)의 위패를 봉안하고 있다. 건축형태는 전학후묘(前學後廟)이다.
조선시대에는 국가로부터 토지와 전적 · 노비 등을 지급받아 교관 1명이 정원 30명의 교생을 가르쳤으나, 조선 후기 이래 향교는 교육 기능이 쇠퇴하고 대신 선현에 대한 제향을 통한 교화 기능을 주로 담당하였다. 봄 · 가을에 석전(釋奠)을 봉행하며 초하루 · 보름에 분향을 하고 있다.
건물 중 만화루는 1986년에 전라북도 유형문화재(현, 전북특별자치도 유형문화유산)로, 대성전은 1984년에 문화재자료(현, 문화유산자료)로 지정되었다. 향교의 운영은 전교(典敎) 1인과 장의(掌議) 수명이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