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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견

체육개념용어

 우리나라 고유의 맨손무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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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견
이칭
태껸
분야
체육
유형
개념용어
시대
근대
영역닫기영역열기 정의
우리나라 고유의 맨손무예.
영역닫기영역열기개설
여러 문헌에는 수박(手搏)·수박희(手搏戱) 등의 한자로 표기되어 있고 『국어사전』에는 “태껸”으로 표기하였다. 일반적으로 사전적 해석은 “발로 차서 쓰러뜨리는 경기로 각희(脚戱)”라고 한다.
주로 발로 차거나 걸어서 상대방을 쓰러뜨리는 것으로 승부를 내지만 상대방 얼굴을 차는 것으로도 이기게 된다. 손질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다.
민속경기놀이로 전승되어왔으며 격렬한 투기임에도 상대방에게 상해를 입히지 않는 독특한 경기방법도 있다. 한편 인명을 살상하는 무술적 기법도 함께 전해온다. 1983년 중요무형문화재 제76호로 지정되었으며 1990년대 들어 생활체육으로 널리 보급되기 시작하였으며, 2011년 11월 28일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에 등재되었다.
영역닫기영역열기택견의 역사
택견은 우리 민족 기층문화의 하나로 원시시대부터 발달해온 것으로 추측된다. 오늘의 택견형태가 어느 시기부터 형성된 것인지 확인할 수는 없으나 삼국시대 이전부터의 경기 또는 놀이형태였음을 알 수 있다.
『후한서』에 “순제 영화 원년(永和元年, AD 136) 부여왕이 내조(來朝)했을 때, 각저희(脚抵戱)를 하게 했다.”고 하였으며 『일본서기』에는 “백제 사신과 일본 무사들이 상박(相撲)을 했다.”는 기록이 있다.
이것은 당시에 맨손무예 경기가 국제간에 교류되고 있었고 외교상의 중요한 의식으로 행해졌다는 것을 말해 준다. 『고려사』에는 수박 또는 수박희가 자주 보인다.
“이의민(李義旼)은 수박을 잘하여 의종이 그를 대정(隊正)에서 별장(別將)으로 승진시켰다.”, “의종이 무신에게 명하여 오병수박희(五兵手搏戱)를 하게 했다.”, “장사들에게 수박희를 시켜서 이긴 자에게는 상으로 벼슬을 올려주었다.”, “왕이 상춘정(賞春亭)에 나가 수박희를 구경했다.”, “왕이 화비궁(和妃宮)에서 수박희를 구경했다.”라는 등의 기록들은 당시 고려사회에서 맨손무예가 왕이나 귀족들이 즐겨하였고 민간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전파되고 있었음을 확인해 준다.
그리고 수박희가 고위 무관의 승직기준이 될 만큼 제도적으로 장려되어 왔음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은 경향은 조선시대 초기까지 이어졌으나 조선시대의 사회가 차츰 문존무비의 사조로 흐르면서 맨손무예는 지배계층으로부터 소외되었다.
그러나 맨손무예는 조선 말기까지 여전히 무과의 시재(試才)로 존재하였고 기층민중들에 의하여 전승되었다.
정조(正祖) 때 간행된 『재물보(才物譜)』에는 각종 문헌에 나타나는 “卞”·“手搏”·“角力”·“武” 등의 한자 용어가 곧 “택견”이라고 밝히는 한글기록이 있다.
18세기의 유숙(劉淑)의 「대쾌도 大快圖」와 김준근(金俊根)의 「풍속도 風俗圖」에는 같은 화면에 씨름과 택견이 함께 그려져 있어서 당시 택견이 대중화되어 있었음을 보여준다.
1921년 최영년 『해동죽기(海東竹枝)』의 탁견희(托肩戱)와 『코리언 게임스(Korean Games, 1895 Stewart Culin)』의 「택견하기(HTAIK-KYEN-HA-KI)」의 기록은 택견경기 방법을 간략하지만 구체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이렇게 문헌상 기록이 뚜렷이 나타나고 있는 택견은 일본강점기를 거치면서 자취를 잃고 말았다. 이런 가운데 다행히 조선 말기의 택견꾼 송덕기(宋德基)가 유일하게 생존하여 택견의 맥을 이을 수 있었다.
그러나 광복 이후 택견은 일본 무술들이 토착화하는 여세에 뒷전으로 밀려났다. 특히 6. 25전쟁 이후에 만들어진 태권도(跆拳道)가 택견의 전통을 계승했다는 명분을 주장함으로써 1970년대 이후에는 태권도와 택견이 동일한 것으로 잘못 알려졌다. 그러나 택견과 태권도는 역사적·기술적으로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별개의 것이다.
택견은 1970년대 초부터 송덕기로부터 택견을 배운 신한승(辛漢承)의 노력으로 1983년 6월 중요무형문화재 제76호로 지정되었고, 송덕기·신한승이 기능보유자로 인정되었다.
송덕기·신한승 두 기능보유자로부터 택견을 전수받은 이용복(李容福)은 1984년 한국전통택견연구회를 결성하였다. 그리고 1985년 6월 부산구덕체육관에서 오래간만에 택견경기를 재현하였으며, 1991년 1월 사단법인 대한택견협회를 창설하였다.
대한택견협회는 1997년 현재 전국에 140여 전수관을 개설하였으며 각급학교와 직장 등에 수백 개의 전수단체를 만들었다. 매년 전국규모의 경기대회와 시연 등의 행사를 수십 회 실시하고 있으며 택견의 국민체육화를 위하여 전국체육대회 경기종목으로 채택을 추진하고 있다.
또한, 1996년과 1997년 두 차례에 걸쳐 해외순회 택견시연단을 캐나다·미국·일본 등에 보내 민족무예 세계화의 문을 열었다. 한편, 신한승으로부터 이수자인 정경화(鄭景和)가 1996년 기능보유자로 인정되었다.
영역닫기영역열기택견의 어원
택견이라는 명칭이 언제부터 사용되어 왔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수박(手搏)’ 또는 ‘수박희(手搏戱)’가 『고려사』·『조선왕조실록』 등에 보이며, 『재물보』·『청구영언(靑丘永言)』에서 ‘탁견’이 등장한다.
1921년 조선총독부에서 간행한 『조선어사전』에는 ‘택견’으로 표기되어 있으나 1933년「맞춤법 통일안」발효 이후 출간된 『국어사전』에는 ‘태껸’으로 적고 있다.
이외에도 착견 『오가전집(五歌全集))』 (1935, 李善有), 택견 『조선무사영웅전』 (1919, 안자산), 덕견 『조선상고사』 (1946, 申采浩), 탁견희 『해동죽지』 등의 표기가 있다.
송덕기는 ‘탁견’이라 하고 탁견을 하는 사람을 ‘택견꾼’이라 한다고 하였다. 그러나 서울에서 오래 살아온 대부분의 사람이 ‘택견’이라고 말하고 있어서 문화재지정 당시 택견으로 정하였다. 필자는 택견이 ‘탁견’의 서울 사투리로 보고 있다.
택견 또는 탁견은 ‘차기’라는 뜻을 가진 한자 척(踢)의 중국 발음인 티크(tik)와 관련이 있어 보인다. 순수 우리말과 달리 택견이 거센소리[激音], 된소리[硬音]라는 점에서 한자어의 변음일 가능성이 많다.
『코리언 게임스』에는 택견하기를 ‘Kicking’, 프랑스어로 ‘Savate’로 번역하고 ‘물택견하기(MOUL-HTAIK-KYEN-HA-KI)’도 ‘Water Kicking’이라고 영역하고 있다. 이러한 기록과 택견의 기법이 발질 위주라는 사실과 연관시켜 볼 때 택견이라는 말은 곧 ‘차기’라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영역닫기영역열기결련택견
결련택견을 줄여서 ‘결련태’라고도 한다. 마을끼리 편을 갈라 승부를 결정하는 민속경기놀이이다. 일본강점기 초기 서울 서북 쪽의 서리(胥吏)들의 마을인 우대와 동남쪽 동대문·광희문 일대의 군총(軍摠)들이 모여 사는 마을인 아랫대의 사람들이 결련태를 하였다. 보통 단오날 초저녁에 양편 마을 사람들이 넓은 공터에 모여 판을 벌였다.
경기장은 마당에 섶을 깐 위에 가마니나 멍석을 두어 닢 펴고 그 위에서 한다. 잔디밭이나 모래 밭에서 할 수도 있다. 처음에는 여남은살 또래의 아이들이 택견을 겨루는데 이것을 ‘애기택견’이라 한다.
뒤이어 ‘어른택견’에서도 먼저 하수(下手)부터 시작하여 차츰 재주가 뛰어나고 경험이 많은 택견꾼이 나서게 됨으로 판을 거듭할수록 박진감 넘치는 겨룸으로 변하여 재미를 더해가는 것이다. 겨룸에서 이긴 사람은 계속해서 상대편의 새로운 선수와 싸울 수 있다.
한번 나서면 보통 6, 7명을 이긴 뒤에야 일단 들어가서 쉴 수가 있다. 판은 어느 한 편에서 더 나설 선수가 없으면 끝난다. 결승전에서 이긴 사람을 판막음 장사라고 한다. 판막음 장사라고 해서 상이 주어지지는 않고 양편 마을의 영웅으로 대접받는 명예만 얻는다.
결련태는 하루 저녁만에 끝을 내지 못하고 며칠씩 계속하는 수가 많았다고 한다. 승부를 내는 방법은 상대방을 쓰러뜨리면 이기게 된다.
또한 상대방의 얼굴을 정확하게 발로 차게 되면 맞은 사람이 스스로 바닥에 손을 짚어 항복을 표시하고 물러난다. 가끔 승부가 과열되어 마을끼리 편싸움으로 변하여 돌팔매가 가세하는 대규모 석전이 되기도 한다.
1920년 이후 일본 경찰이 금지하여 결련택견의 풍속이 없어졌다. 1982년 택견의 문화재지정을 위한 보고서에는 ‘결연(決然)택견’이라 하여 싸움수로 잘못 해석하는 바람에 결련택견에 대한 조사가 누락되었다.
지금의 기능보유자가 결련태를 ‘결연택견=싸움수’라고 해석하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으나 문화재 당국에서는 최근들어 결연택견이 오류였음을 인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결련택견을 추가로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영역닫기영역열기구성
① 규준의 윤리성:공평한 조건에서 경기를 하기 위해서는 형식적, 비형식적 합의된 규칙이 필요하다. 택견은 우리 나라 사람의 보편적이고 전통적인 가치관과 사회윤리에 부합되는 관습화된 규준적 틀을 가지고 있다.
② 품밟기의 합목적성:품(品)자 형태, 즉 삼각형의 보법(step)을 품밟기라 한다. 극히 제한된 중심 이동의 공간과 상대방을 다치게 해서는 안 된다는 규칙의 통제 아래 가장 효과적인 공방을 할 수 있는 합목적성을 가진 기법의 하나이다.
③ 대접의 규칙성:택견은 씨름처럼 서로 붙잡고 겨룸을 하는 대신 상대방이 공격하기 쉬운 거리내에 한쪽 발을 내준다는 약속이 전제되어 있다. 이것을 대접(待接)이라 한다. 구기종목의 serve와 같은 의미이다.
④ 는질거리는 기법의 호혜성:택견경기가 아무런 장비를 사용하지 않은 상태에서 인체를 직접 가격하면서도 안전성을 획득할 수 있는 것은 는질거리는 기법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이 기법은 타격력을 줄이는 대신 밀치는 힘을 최대로 발휘하게 하여 상대방에게 상해를 입히지 않고 쓰러뜨릴 수 있도록 고안된 절묘한 기술이다. 화합과 결속을 중요시하는 농경사회에서 형성된 우리의 호혜의식의 산물이다.
⑤ 옛법의 양면성:택견은 방어기가 없고 거의 공격기로 형성되어 있어서 매우 격렬하다. 경기에서는 는질거리는 기법만 사용하게 하고 있으나 경기에서의 사용을 금한다는 엄격한 전제 아래 인명을 살상할 수 있는 기법이 함께 전해져 온다.
옛법이라고 부르는 이 타격법에는 손질이 많이 포함되어 있고 는질러차기를 곧은 발질로 변용하고 있다. 택견은 경기적 기술과 전투적 기술의 양면성을 함께 지니고 있다.
영역닫기영역열기수련 과정
1973년 문화재 당국에 의하여 조사된 택견의 기술은 송덕기로부터 채집한 불과 11가지 수였다. 그러나 1982년 제2차 조사보고서에는 기본수 30여 종에 응용수 100여 가지로 대폭 늘어났다.
이것은 송덕기의 기술을 신한승이 정리하면서 기술을 세분화하고 응용수를 추가하였기 때문이다. 1910년대의 수련체계는 품밟기 등의 기본수를 개별적으로 익힌 다음 두 사람이 겨끔내기로 공방을 하는 ‘메기고 받기’가 중심이었다.
메기고 받기는 한 걸음 가량 거리를 두고 하는 ‘얼러메기기’와 상호간에 무릎을 맞대고 하는 ‘맞대걸이’가 있다(이러한 명칭은 신한승 이후에 만든 것이며 송덕기는 그냥 ‘연습’이라고 함). 그리고 짚으로 허수아비를 만들어 나무에 매달아 놓고 발길을 익히고, 나뭇둥치를 차기도 하고, 난간이나 나뭇가지에 손가락을 걸어 매달리는 신체단련을 하였다.
연습의 맨 마지막에 가서 실전과 같은 ‘겨루기’를 연습한다. 연습은 아침 저녁으로 하는데 주로 개울바닥이나 공터, 동산의 풀밭에서 하였다.
1980년대에 들어서는 생활환경이 바뀌어 주로 실내에 하는 운동으로 변하였다. 이에 따라 수련과정과 연습방법도 달라졌다.
신한승이 재구성한 수련체계는 혼자익히기를 서서익히기와 나아가며 익히기로 구분하였고, 메기고 받기를 얼러메기기·마주걸이·마주차기·막음질 등으로 가지 수를 대폭 늘렸다.
그리고 예전과는 달리 메기고 받기의 기본수를 순서를 정하여 정형화하였다. 겨루기는 대걸이, 맞서기로 단계를 두고, 따로 겨눔수를 연습하도록 하였다.
그리고 신한승 자신이 창안한 본때뵈기(앞엣거리 8마당, 뒤엣거리 4마당)가 수련상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본때뵈기는 기본수를 연결조합하여 정형화시킨 것이다. 종전의 겨루기 중심 구조의 경기적 택견이 형식위주의 가라데·태권도·우슈 등과 같은 근대 동양무술적 구조로 전환되었다.
따라서 택견은 현대에 와서 외형상의 변형과 함께 질적 변화가 불가피하게 되었다. 대한택견협회는 이런 점을 고려하여 1910년대의 경기형태의 재현과 당시 학습체계의 발굴에 힘쓰는 한편 1980년대 신한승이 재구성한 형태도 함께 전수하고 있다.
영역닫기영역열기택견의 기술
택견의 기본기술은 그 가지 수가 적고 비교적 간단하다. 그러나 실제 경기에서는 기본기술이 변용되고 결합된 응용기술이 무궁무진하게 있다. 여기서는 가장 대표적인 기본기술을 소개한다.
① 원품: 두발을 어깨넓이로 나란히 벌려 선 자세를 송덕기는 ‘인성(人成)’이라고 하였다.
② 품밟기: 원품에서 한쪽 발을 뒤로 물려 딛거나 앞으로 내딛어 삼각형을 이루며 품을 바꾸는 것이다. ‘품(品)’자와 같이 세 지점을 밟는다는 의미도 있다. 신한승에 의해 품내밟기·품길게밟기·품째밟기 등으로 정리되었으나 송덕기의 품밟기 형태는 훨씬 다양하고 변화가 많다.
③ 발질: 발질은 차기와 걸이로 대별된다. 차기로는 제겨차기(발등으로 정면 위로 찬다), 곁치기(발등으로 곁을 휘어찬다), 후려차기(방망이를 후려치듯이 찬다), 복장지르기(발바닥으로 복장을 는질러찬다), 발따귀(발바닥으로 고를 그려 빰을 후려찬다), 두발낭성(뛰어올라 제겨찬다), 날치기(두손을 바닥에 짚고 몸을 휘전시켜 두발로 찬다), 내차기(발등으로 상대방 허벅지를 밖으로 차낸다) 등이 있다. 차기는 원칙적으로 모두 느진발질(무르고 연하게)로써 상대를 다치지 않게끔 배려한다.
경우에 따라 이를 변용하면 모든 차기는 곧은 발질(강하고 날카롭게)이 되어 인명 살상의 파괴력을 나타낼 수 있다. 걸이 수는 깎음다리(발장심으로 정강다리를 훑어 내린뒤 발등을 밟는다), 안짱걸이(발등으로 상대방 발뒤축을 안쪽으로 걸어 당긴다), 안우걸이(발바닥으로 상대방 안쪽 복사뼈를 치는데, 딴죽치기라고도 한다), 낚시걸이(발등으로 상대방 발뒤축 바깥쪽을 걸어 당긴다), 오금걸이(발뒤축으로 상대방 오금을 걸어 당긴다), 무릎걸이(발장심으로 상대방 무릎을 밀어 찬다) 등이 있다.
④ 손질: 손질은 손을 펴서하는 것과 주먹을 쥐고 하는 방법이 있다. 칼잽이(웃아귀로 상대방 목을 민다), 항정치기(상대방 뒷덜미를 손모서리로 내려친다), 도끼질(손모서리로 상대방 목 동맥을 위에서 아래로 내려친다), 느진배지르기(주먹을 뒤집어 아랫배를 쥐어박는다), 명치기(주먹으로 명치를 내지른다), 재갈넣기(주먹으로 겨드랑이, 또는 옆구리를 친다), 안경씌우기(손가락으로 눈찌르기) 등이 있다.
이 중에서 칼잽이 잡아대기, 이마재기 이외에는 경기에서 사용할 수 없는 위험한 기술이다. 경기에서는 움켜 잡는 대신 덜미걸이, 덜미잽이 등을 사용할 수 있고 손목으로 목이나 가슴을 밀쳐내는 가로밀기가 주로 쓰인다.
⑤ 활개젓기: 팔을 흔들어 상대방의 시야를 혼란하게 하거나 상대방의 공격을 사전에 차단하게 하는 수이다. 흔들기·긁기·젖히기·돌리기·가새붙이기·엇흔들기·치들기 등이 있다.
⑥ 기합: 익크, 에익크 하는 기합소리는 깜짝놀랄 때 절로 내는 소리를 더 강하게 발성하는 것이다. ‘익’ 또는 ‘에익’은 온몸의 기(氣)가 모여서 숨이 멈추어져 긴장이 상승하는 것이며 ‘크’는 긴장이 해제되어 숨을 토하는 소리이다. 아랫배(下丹田)에 축기(蓄氣)가 이루어지는 자연적인 단전호흡법이다.
영역닫기영역열기경기방법
현행 경기규칙은 옛날부터 지금까지 경기방법을 현대 스포츠 규정의 틀에 맞추어 이용복이 작성하고 송덕기·신한승의 감수를 받은 것이다. 1985년부터 이 규칙을 적용하였으며 1991년에 개정하였다. 경기규칙은 다음과 같다.
① 경기장: 사방 8m의 매트(Mat) 중앙에 2.5m 지름의 원을 표시한다.
② 심판원의 구성: 주심 1명, 부심 2명, 배심 1명, 계시원 1명으로 한다.
③ 복장: 선수는 백색 고의적삼에 솜을 넣은 버선을 착용하고 각각 청색과 백색의 행전과 상의(上衣)를 입는다.
④ 경기구분: 개인전과 단체전, 일반부, 학생부, 애기택견으로 나누고 남·여 별로 구분한다. 체급별로 할 수도 있다.
⑤ 경기시간: 3분 3회전, 중간휴식 1분 단체전일 경우 3분 1회전, 천하명인전과 같은 경기에서는 시간제한을 두지 않는 경우도 있다.
⑥ 경기방식: 토너멘트전과 리그전, 또는 이 둘의 복합형태, 연승전(連勝戰) 등으로 할 수 있다.
⑦ 경기방법: 첫째, 양 선수는 경기장 중앙에 마주 보고 서서 예를 한다.
둘째, “서거라”하는 주심의 지시에 따라 양 선수는 왼 발을 한 걸음 내 디뎠다가 한 걸음 거리로 재어 서며 넉장다리 원품 자세를 취한다.
셋째, “섰다”하는 주심의 명령이 떨어지면 청색복장의 선수가 먼저 상대선수의 무릎을 가볍게 차주는 것으로 경기를 시작한다.
넷째, 양 선수는 상대가 공격이 가능한 거리 이내에 한 쪽발을 내밀어 주는 대접의 상태를 계속 유지하여야 한다(양발을 마음대로 바꾸어 놓을 수 있음).
⑧ 승패의 판정: 첫째, 상대방 공격에 의하여 한쪽 선수의 무릎 이상의 신체부위가 바닥에 닿으면 승부가 난다. 둘째, 발길질로 상대방의 얼굴을 강하게 차면 이긴다. 셋째, 두발이 무릎 이상의 높이에 떠 있는 상태로 상대방을 공격하여 상대가 현저히 균형을 잃었거나 뒤로 세 걸음 이상 물러났을 때 이긴다.
⑨ 반칙: 첫째, 대접을 않을 때. 둘째, 타격 목적의 수를 쓰거나 급소에 대한 공격. 셋째, 옷을 붙잡을 때. 넷째, 기타 바람직하지 않은 행위.
⑩ 벌칙: 반칙을 행한 선수에게 대접을 하게 하고 상대방에게 자유공격의 기회를 부여한다. 벌칙을 받은 선수는 상대선수의 자유공격에 대하여 방어와 역공격을 할 수 있으나 상대의 공격이 이루어지기 전에는 움직일 수 없다.
영역닫기영역열기품계제도
수련정도는 단(段), 급(級)으로 구별한다. 이 단, 급의 품계를 사정하는 것을 심사(審査)라고 한다. 원래 품계제도가 없었으나 학습의 체계적 전수와 대중화 방안의 일환으로 1970년대 중반에 신한승이 일본 무술의 제도를 도입해 적용시켰다.
대한택견협회는 8급∼1급, 초단∼9단의 18품계를 인정하고 있다. 초보자가 9단으로 승단하려면 40년의 수련기한이 경과되어야 한다. 단, 경기대회의 우승 등 택견보급과 발전을 위한 공로에 대한 고과를 적용하여 그 기한을 단축할 수 있다.
영역닫기영역열기사상과 철학
택견은 우리 민족의 기층문화의 하나이다. 따라서 택견에는 우리 민족이 오랜 역사 속에서 체득한 인식체계가 형성되어 있다. 이를 간명하게 설명하기란 쉽지 않으나 우리의 공리(公理)로 이해될 수 있는 민족적 사상과 철학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기술구조는 공격적이며 적극적이고 격렬성이 강하지만 상대에게 상해를 입히지 않도록 하는 기법과 의복에 손상을 주지 않게 하는 등 다른 사람과의 공존공생을 존중하는 정서가 함께 있다.
이것은 북방 기마족의 문화와 남방 농경족의 문화가 서로 결합되어 새로운 문화의 창조를 상징하는 단군신화의 의미 구조와 동일하다. 겨룸은 서로가 함께 번영할 수 있는 상호경쟁력을 고양시킨다. 또한, 집단 경기를 통하여 공동체의 결속을 다지고 이웃과의 우호를 강화한다.
모든 기법이 순리를 쫓아 인간 본연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게 하여 자연과 조화하는 섭리를 익힌다. 택견은 존재에 대한 사유와 생성변화의 철학이 공존하는 우리의 고상한 지혜이다.
영역닫기영역열기전승 가치
택견은 귀중한 문화유산으로서 문화재적·체육적·무술적 가치가 탁월하다. 다른 종목의 체육·무술·레포츠 등의 활동을 통하여 얻을 수 있는 여러 가지 효과를 가장 한국적인 방법으로 얻을 수 있다.
특히 택견은 특권의식에 뿌리를 둔 다른 동양무술과는 달리 오랜 세월 동안 민중 속에서 발전하여 보편성과 일반성을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민주주의 이념과 부합된다.
또한, 현대 동양무술 종목들이 경쟁적으로 국제 스포츠화를 지향하고 있는 추세에 비추어 볼 때 경기로서의 오랜 역사는 큰 이점이 될 수 있다.
더구나 다른 투기 종목과 차별되는 독특한 경기방식과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면은 국제 스포츠로서의 발전 가능성이 매우 높다. 국제 스포츠화 한 대부분의 동양무술들은 기존의 수행적 가치관의 붕괴, 또는 정체성의 혼란을 불러 일으켰다.
이에 비하여 이미 오래 전부터 경기와 무술의 중층구조로 발달해 온 택견은 동양과 서양의 이질적 가치관과 경기와 무술의 배치된 개념을 상호조화하고 통합하는 대안을 제시해 주고 있다. 따라서 택견은 향후 국제 스포츠로서도 중요한 구실을 할 수 있을 것이며 인류의 보다 나은 삶을 위하여 기여하게 될 것이다.
영역닫기영역열기 집필자
집필 (1998년)
이용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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