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수교육 ()

수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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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념
신체적 · 정신적 · 사회적 발달의 장애 등으로 인하여 특수한 교육적 요구를 지닌 아동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
정의
신체적 · 정신적 · 사회적 발달의 장애 등으로 인하여 특수한 교육적 요구를 지닌 아동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
개설

특수교육이란 특수아동이 가지고 있는 비장애아동과 같은 공통성과 특수아동만의 특수성이라는 측면에서 대상아동의 독특한 교육적 요구에 맞추어 가장 알맞은 교육내용과 방법으로써 필요한 교육적 지원을 하는 것이다. 여기서 특수아동이라 함은 몇 가지 준거에서 평균보다 일탈된 우수아동 혹은 열등아동을 일컫는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특수교육 대상아동을 대체로 비장애아동에 비하여 감각, 운동, 언어, 정신적 기능, 신체적 기능, 정서적인 면 등에서 하나 이상의 심한 결함을 가지고 있는 아동으로서, 비장애아동의 교육내용이나 방법으로는 교육효과를 기대하기 어려운 아동에 국한하여 보고 있다.

「장애인 등에 대한 특수교육법」에서는 시각장애, 청각장애, 지적장애, 지체장애, 정서행동장애, 자폐성장애(이와 관련된 장애를 포함), 의사소통장애, 학습장애, 건강장애, 발달지체, 그 밖의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장애 등으로 장애 유형 분류를 하고 있고, 보통 이에 준하여 따르고 있다.

따라서 특수교육의 목적은 일반교육에 대비한 공통성과 아동이 가진 장애로 인한 특수성을 고려하여 아동의 가능성을 최대한 신장시키는 데 그 목표를 두고, 궁극적으로는 독립된 생활로 유용하고 행복한 삶을 영위하도록 기초를 닦게 하는 데 있다.

특수교육의 발달사는 심신장애아동이라고 하는 특수한 영역에 대한 일종의 분류사이며, 그 발달요인으로는 민주적·인도주의적 정신, 교육의 의무 및 권리의 사상에 의한 일반교육의 발달과 보급, 과학의 발달, 사회·경제적 생활조건의 향상 등을 들 수 있다.

특수교육 발달의 시대적 구분은 일반적으로 대별하여 고대와 중세의 유기(遺棄)·학대·방임·조롱의 비인도적인 시대와 중세 말 이후의 기독교사상에 의한 자선적 보호와 치료를 실시한 시대, 그리고 19세기 말 이후의 민주주의를 바탕으로 한 인권사상이 강조되고 있는 교육의 시대로 구분한다.

교육의 시대는 태두기(1899년 이전), 1차 발전기(1900∼1940), 2차 발전기(1941∼1979), 3차 발전기(1980년 이후)로 구분하고 그 특징을 밝힐 수 있다. 세계적으로 볼 때 최초의 특수학교는 1755년 레페(L’Epee,C.M.)가 설립한 파리농학교로서 수화법(手話法)에 의한 교육을 하였다.

구화법(口話法)에 의한 농학교는 1778년 하이니케(Heinicke,S.)에 의하여 독일 라이프치히에 설립되어 농교육의 쌍벽을 이루어 왔다.

한편 맹교육은 1784년 아유이(Hauy,V.)에 의하여 설립된 파리맹학교로부터 시작되었으며, 1829년 브레이유(Braille,L.)에 의한 점자 창안으로 교육의 질적 발전을 가져왔다.

지체부자유아교육은 1832년 독일의 쿠르츠(Kuruz,N.V.)에 의하여 설립된 학교에서 시작되었으며, 공교육은 1899년 영국 런던과 미국 시카고에 설치된 지체부자유아 학급과 학교에서부터 실시되었다.

지적장애교육은 1837년 세강(Seguin,E.O.)에 의한 프랑스의 백치(idiot)교육과 연구에서부터 비롯되었고, 1842년에는 비제돌사원에서 저능아교육기관을 설치하였다. 같은 해에 세강의 『백치교육의 이론과 실제』·『생리학적 방법에 의한 백치교육』이라는 저서는 지적장애교육의 발전에 크게 공헌하였다.

특히 삼중고를 지녔던 헬렌 켈러(Helen Keller)의 교육은 중복장애아동의 교육은 물론 모든 특수아동의 교육의 가능성을 재확인하였고, 특수교육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다.

그 뒤 특수교육은 양적인 확대와 질적인 충실을 거듭하게 되었다. 부모 및 민간단체의 활약은 이를 더욱 촉진하여 학교의 증설, 학교체계의 확충, 교원의 양성, 교육연구의 추진, 개별화교육, 주류에로의 통합교육, 재활프로그램 등이 이루어졌다.

특수교육의 역사

전통적 장애인과 그 처우

우리나라에는 일찍이 인도적(人道的) 윤리사상을 강조한 유·불·선 3교의 영향으로 빈민구제와 장애인 보호사상이 태동, 전승되어왔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신라 28년(유리왕 5)에 장애인[不具廢疾人]으로서 자활능력이 없는 자에게 급식, 양호하게 하였으며, 고구려 196년(고국천왕 18)과 백제 312년(비류왕 9) 등에도 구휼한 사실이 있었다.

고려의 1138년(인종 16)에는 장애인에게 형법상의 특혜를 준 일이 있으며, 1260년(원종 1)과 1308년(충렬왕 34)에는 봉양인을 따르게 하고 각종 부역이나 병역에 특혜를 주었고, 보호자가 없을 때는 동서대비원(東西大悲院)이라는 복지시설에 수용, 보호하게 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조선시대에도 1393년(태조 2), 1419년(세종 1)에 구휼과 부역면제를 하였고, 1457년(세조 3)에는 동서활인원(東西活人院)을 설립, 맹인을 진휼(賑恤: 흉년에 곤궁한 백성을 구원하여 도와 줌)하게 하였으며, 1783년(정조 7)에는 「판휼전칙(販恤典則)」을 만들어 장애인를 구호하였다.

영조 때의 맹인청 설치나 명종 때의 맹인 정경부인(貞敬夫人)의 출현 및 맹인에 대한 태사·참봉·봉사·장님 등의 호칭은 맹인의 능력 인정과 인격적 대우에 의한 사회적 지위가 부여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 속담을 살펴보면 장애인과 관련된 것이 88개 정도가 있는데, 이 중 대부분은 장애인이 미움의 대상으로 표현되고 있다. 물론 그 중에는 장애인에 대한 조소적인 태도를 극히 경계하는 속담도 있다.

초기의 특수교육

① 신교육사상과 특수교육:한말에 새로운 개혁사상으로 등장한 개화사상은 그 보급과 실현을 교육에 의하여 성취시키고자 하였으며, 이에 따라 교육의 실용화·민주화·구국화를 강조하는 신교육운동이 전개되었다.

이는 특수교육 성립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준 것으로서, 이 중 몇 가지 사실(史實)을 들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우리나라에 문서상으로나마 근대적 의미의 특수교육이 최초로 소개된 것으로, 1881년(고종 18) 신사유람단이 보고한 맹아원(盲啞院)에 대한 기록을 들 수 있다.

둘째, 1895년에 간행된 유길준(兪吉濬)의 『서유견문(西遊見聞)』에서는 구미의 특수교육을 상세히 소개하였다. 즉, 치아원(痴兒院: 지적장애 교육기관)·맹인원(盲人院: 맹교육기관)·아인원(啞人院: 농교육기관) 및 유아원(幼兒院: 지체부자유아 및 병·허약아 재활기관)에 대하여 기록하였는데, 이는 우리나라 특수교육의 태동에 중요한 의미를 부여하는 귀중한 역사적 자료이다.

셋째, 기독교 선교사들의 신교육사상이 교육의 기회균등과 보편화에 중점을 두었으므로 이러한 맥락에서 특수교육기관이 성립될 수 있는 계기가 이루어졌다. 넷째, 한말 교육입국(敎育立國)의 문교정책이 법제화되어 근대적 공교육사상에 입각한 교육의 보편화가 시도되었다.

② 특수교육의 성립:우리나라 특수교육의 성립에 중요한 구실을 담당한 이들로 기독교 선교사들을 들 수 있다. 이 중 미국 북감리교 의료선교사인 홀(Hall,R.S.)은 1894년 우리나라 최초의 특수학교인 평양여맹학교(平壤女盲學校)를 설립하여 맹인소녀 오봉래를 가르치기 시작하였다.

이어서 홀은 본국 휴가를 이용하여 점자법(New York Point System)을 배워 초등독본·기도문·십계명의 일부 등을 점역하여 가르쳤다.

일반학교 내의 부분제 특수학급으로 후원자의 이름을 따서 클라크 여맹학교(The Clock Class for Blind Girls)라 불리기도 하였다. 한편 장로교 선교사인 모펫(Moffett,A.F.) 부인은 1903년 최초의 남맹학교를 평양에 설립하였다.

평양여맹학교 설립자인 홀은 농교육에도 관심을 기울여 이익민을 중국 즈푸(芝罘)에 파견하여 농교육방법을 배우게 하였으며, 그의 도움으로 1909년에 최초의 농학교인 평양농아학교를 설립하였다.

그 뒤 홀은 평양여맹학교와 평양농아학교를 합병하여 평양맹아학교로 개칭하고 초대 교장에 취임하였다. 이 학교는 1914년 우리 나라에서 개최된 최초의 특수교육관계 국제회의인 동양맹농아교육회의(東洋盲聾啞敎育會議)를 주최하였다.

중국·일본·한국의 훈맹원(訓盲院)과 농아학교의 대표자 약 20명의 참석하에 개최된 회의로, 발표된 논문은 즈푸농아학교 교장 카터(Carter,A.E.)의 「농아에 대한 담화 교수상의 신사상」 외에 8편이었다. 이렇게 선교사에 의하여 시작된 특수교육은 정부가 개입함으로써 법적 근거가 설치되어 보다 빠른 속도의 발전이 약속되었다.

정부는 1912년 3월 「제생원 관제」를 제정, 공포하고, 1913년 4월에는 그 시행규칙이 제정됨으로써 최초의 관립특수학교인 제생원 맹아부(濟生院盲啞部)가 서울에 설립되었다.

설립목적은 맹·농아자에게 초등보통교육과 직업교육을 실시하는 데 있었고, 수업연한은 맹부(盲部) 3년, 아부(啞部) 5년, 맹 속성과 1년으로 되어 있었다.

설립 당시의 학생은 모두 27명으로 이 중 자비생 4명을 제외한 나머지 23명은 모두 급비생으로 기숙사에 입사시켰다. 1914년에 맹 속성과 제1회 졸업생 9명이 배출되었고, 같은 해 10월에 공포된 안마·침술 등에 관한 영업취제규칙에 의거, 졸업생 전원이 무시험으로 면허를 취득하였다.

맹 속성과는 이듬해 제2회 졸업생 6명을 배출하고 폐과되었다. 1916년 3월에는 맹 본과 졸업생 8명을 최초로 배출하였고 1924년부터 1933년까지의 학생수를 보면 모두 928명이 재적하였다.

오늘날 맹인들이 사용하고 있는 점자가 창안되기 이전에는 결승문자(結繩文字: 새끼에 매듭을 지어 기호로 삼은 문자)·선형문자(線形文字)·침형문자(針形文字) 등이 사용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홀이 뉴욕맹학교에서 배워온 4점으로 된 뉴욕점자가 최초로 쓰여졌으나, 점자수가 부족하고 읽고 쓰기에 비능률적이어서 개선하여야 할 점이 많았다.

이에 초대 제생원 맹아부 교사였던 박두성(朴斗星)이 1923년에 조선어점자위원회를 비밀리에 조직하여 연구한 결과, 1926년 11월 4일에 한글점자인 훈맹정음(訓盲正音)을 창안하여 배포하였다.

6점으로 된 훈맹정음의 체제는 한글과 같이 초성·중성·종성으로 되어 있고, 약자·약어·기호·숫자 등의 표시가 가능하였다. 여기서 숫자와 기호는 세계적으로 통일된 것이다.

박두성은 그 뒤 『점자조선어독본』을 비롯, 76종의 점자교재를 출판하였고 1941년에는 성경을 점역하였다. 그리하여 1938년 5월 21일에 실시된 선거에서는 한국 최초의 점자투표도 가능하였다.

1935년 이창호(李昌浩) 목사가 평양에 설립한 평양광명(光明)맹아학교는 한국인에 의하여 설립된 최초의 특수학교라는 점에서 그 의의를 찾을 수 있다.

교육연한은 6년으로, 일반교과목 외에 목공·양재·안마·마사지 등의 직업과목을 가르쳤다. 이어 1938년에는 제생원 맹부 제12회 졸업생인 손용주(孫龍珠)가 원산맹학교를 설립하였다. 1937년 4월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특수학급으로 서울 동대문공립국민학교에 병·허약아를 위한 양호학급을 병설하였다.

같은 해 7월에는 헬렌 켈러의 내한강연이 개최되어 장애인에 대한 바른 이해와 특수교육의 필요성 및 가능성을 사회일반에 깨닫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변혁기의 특수교육(1945∼1960)

이 시기의 특수교육은 우리 사회의 변동만큼이나 큰 변혁을 보여 광복 직후의 혼란과 6·25전쟁 등을 경험하고 민족과 함께 발전의 부침을 겪으면서도 양적·질적 확대를 꾀하였다. 즉, 관계법의 강화, 공립·사립 특수학교의 잇따른 개교 등이 그것으로 대략 다음과 같다.

광복과 더불어 제생원 맹아부는 국립맹아학교로 교명을 개칭하여 미군정청 보건후생부 관할로 6년제 초등교육기관이 되었다가, 1947년 2월에는 문교부 관할로 옮겨졌다.

초대 교장 윤백원(尹栢元)은 한글 지문자(指文字)를 제정, 사용하도록 하여 농아교육의 발전에 공헌하였다. 또한 같은 해 9월에는 우리 나라 최초로 중등과를 설치하여 중등 특수교육이 이루어졌다.

1952년 6월에 서울맹아학교로 개칭하였으며, 1954년 4월 사범과(3년제)와 보통사범과(1년제)를 설치하여 특수학교 교사양성을 위한 사범교육이 시작되었다.

6·25전쟁은 특수교육의 기회 확대라는 묘한 계기로 작용하였다. 서울의 국립맹아학교는 전란을 피하여 제주도로 임시 옮겼다가 1951년 9월에 다시 부산으로 옮기게 되었는데, 이 때 필연적으로 제주도에 잔류한 피난 학생과 제주도 거주 맹·농아자 교육문제가 대두되었던 것이다.

이에 제주시 교육청은 제주북국민학교 맹아분교를 인가하여 공립특수학교의 효시가 되었으며, 1972년에 제주맹아학교로 승격되었다.

피난지 부산에서 다시 개교한 국립맹아학교는 1953년 8월에 서울 본교로 돌아가게 되고, 이 학교 교사인 유병온(兪炳溫)·안영환(安永歡)이 같은 해 9월에 부산분교를 설립하였다.

이는 다시 1955년 9월에 공립부산맹아학교로 승격되었다. 광복과 더불어 특수학교에 뜻을 둔 유지들에 의하여 사립 특수교육기관이 대구를 비롯하여 각지에 설립되었다.

1946년 4월에 이영식(李永植) 목사는 광복 후 최초로 특수교육기관인 대구맹아학교를 설립, 맹부(盲部)와 농부(聾部)로 나누어 맹아·농아의 교육을 실시하였다. 이 학교는 1951년에 중등과를, 1956년에 고등과를 병설하였으며 이어 대구맹아학교를 모체로 특수학교 교사양성기관인 한국사회사업대학(현 대구대학교)가 설립되었다.

1959년 3월에는 대구맹아학교가 대구광명학교·대구영화학교로 분리되어 특수교육의 선구자적인 구실을 계속하였다.1960년에는 김택용(金澤龍)에 의하여 광주에 전남농아학교가 설립되었다.

한편 법적인 측면에서 보면 1947년 보건후생부 소관이던 국립맹아학교가 문교부 관할로 이관되면서 특수교육에도 비장애아동을 위한 교육관계법이 준용되었다.

1949년에는 법률 제86호로 「교육법」이 제정, 공포되어 제143조·제144조·제145조에 특수교육의 목적·대상·설치 의무에 관한 언급을 하였다. 이로써 특수아동의 교육권을 법적으로 보장받게 된 것이다.

또 1948년에는 대통령령으로 특수교육과를 문교부 보통교육국 내에 설치하게 되었으나 1951년 이 과를 고등교육국으로, 이어 1955년에는 해외교육과로 이관, 축소하였다. 이는 특수교육행정의 후퇴요 문교행정의 맹점이 드러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1959년 1월에는 대통령령으로 맹아·농아 분리교육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즉, 이질적인 두 집단의 동시교육으로 어려움을 겪어온 서울맹아학교는 이 대통령령에 따라 대구맹아학교의 분리 인가에 이어 서울맹학교와 서울농아학교로 분리된 것이다.

이 시기의 또 하나 특징은 전란으로 인한 전쟁고아 급증에 사회가 눈을 돌리게 된 점이다. 이에 1952년 10월에 시달된 「후생시설요령」은 사회 유지들로 하여금 이들의 수용보호를 위한 사회복지시설을 설립하도록 하였으며, 이것이 1960년 이후에 특수학교의 설립모체가 된 것이 많았다는 점이다.

발전기의 특수교육(1961∼현재)

1960년대에 들어서면서 우리나라 특수교육은 양적 확대와 질적 발전을 이룩하게 되었다. 이를 항목별로 상술하면 다음과 같다.

① 특수교육기관:이 시기에 들어서면서 특수교육기관의 수는 크게 증가되어 2000년 현재 125개 학교가 되었다. 이 중 국립이 5개 학교, 공립이 37개 학교, 사립이 82개 학교로 전체 특수학교의 약 64%가 사립이다.

장애 영역별로 보면 시각장애학교가 12개 학교, 청각장애학교가 15개 학교, 지적장애학교가 78개 학교, 지체부자유학교가 18개 학교, 정서장애학교가 6개 학교이며, 학급수는 유치부 241학급, 초등부 1,209학급, 중학부 578학급, 고등부 521학급, 전공부 59학급 등 모두 2,608학급이다.

재학생수는 2만 4294명이며 재직 교사수는 4,530명에 이르고 있다. 한편 1963년 3월 부산시는 관내 초등학교에 취학하지 못하는 중증 지체부자유아동 128명을 위하여 초등교육 28개 학급의 가정방문교사제 특수학급을 개설하였다.

1968년에는 서울 월계초등학교에 최초의 약시아 특수학급이 설치되었고, 1971년에는 대구 칠성초등학교에서 교사 이용우(李用雨)의 노력으로 최초의 지적장애 특수학급이 운영되었다.

1973년 특수학급 설치를 위한 세미나 개최 이후 특수학급이 증설되기 시작하여 1985년에는 1,568개, 2000년에는 3,826개의 학급으로 증가되었고 학생수는 2만 6680명이다. 맹학교는 대상아동 출현율의 감소로 양적 증대는 기대되기 어려우나 약시학급은 증설이 요망되고 있다.

또한 농학교는 농교육의 조기교육 필요성에 따라 유치부 병설이 이루어졌거나 시도되고 있는 경향을 보이며 직업교육에도 주력하고 있다.

지체부자유아교육은 일반학교에서 전담하여 왔으나 1964년 병원내 지체부자유아학교로 인가된 연세소아재활원국민학교를 필두로 1966년 통학제 대구보건학교가 설립되고 모두 18개 학교가 개교, 치료와 교육을 병행하고 있다.

최초의 지적장애 특수학교는 1966년에 설립된 대구보명학교이나, 이후 급격한 발달을 보여 수적으로 78개 학교에 달하고 있다.

② 교원양성:이 시기의 특기할 사항으로는 특수학교 교사양성을 대학이 전담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1961년 한국사회사업대학에 특수교육과가 설치된 것을 시초로 하여 1971년에 이화여자대학교·단국대학교, 1980년에 강남대학교, 1981년에 전주우석대학, 1983년에 공주대학 등에 각각 특수교육과가 설치되었다.

2000년에는 특수교육과를 설치한 대학교와 대학원은 공주, 부산, 강남, 단국, 대구, 용인, 우석, 이화, 창원, 조선, 천안, 순천향, 여수, 나세렛 등 14개 대학으로 증가되었다.

그리고 전문특수교육대학원도 대구대학교(7개 전공), 단국대학교(7개 전공), 공주대학교(5개 전공), 우석대학교(1개 전공)에 설치하였고, 교육대학원에 특수교육전공을 설치한 곳도 대구, 우석, 세종, 인제, 가톨릭, 대구교대, 광주교대, 청주교대, 진주교대, 인천교대, 공주교대, 영남대학교 등으로서 특수학교 교사의 양성이 대학원 수준에서 일반학교 교사자격을 가진 경력자가 대상이 되고 있다.

그리고 장애 영역별(시각, 청각, 지적장애, 지체부자유, 정서장애), 학급별(유아, 초등, 중등)로 분화되고 치료교육교사까지 양성하게 되어 전문화·다양화되었다. 이들의 취업상황을 보면 초등은 적체현상이 나타나고 있으나 중등은 거의 모두 취업되고 있으며, 초·중등을 막론하고 남자교사가 심하게 부족한 상태이다.

③ 관련제도 및 법규:1962년 10월 교육부는 특수학급 증설의 필요성을 절감하여 ‘맹·농아를 위한 특수학교 설치에 대한 권장지시(문학관 7567)’를 시달하였다.

1963년 11월 「교육법」의 개정으로 특수학교에 고등과가 설치되었고, 같은 해 12월에는 교육부 기구가 대상별 조직에서 기능별 조직으로 바뀜에 따라 교육행정과에 특수교육계가 설치되었다.

1964년 11월 「교육공무원법」의 개정으로 특수학교 교사의 법적 지위가 분명하여지고 신장되었다. 1971년 12월에는 대통령령으로 특수학교 교사자격증 표시과목에 대한 언급이 있었고, 1967년 4월 문교부령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맹학교(초·중·고)와 농학교(초·중·고) 교육과정이 공포되었다. 농학교 교육과정은 1979년 3월에 개정되었다.

1974년 1월에는 정신박약아학교(교육가능급) 교육과정이 제정되었으며, 1983년에는 맹학교·농학교·지체부자유학교·지적장애학교·특수학급(지적장애) 교육과정이 개정 또는 제정, 공포되었다. 1984년과 1985년에는 교사용지침서를 개발, 보급하여 특수교육의 질적 성장의 전기가 되었다.

한편 1972년에는 대통령령으로 「특수학교교원특별수당지급에 대한 규정」이 마련되었고, 1977년 12월 「특수교육진흥법」이 제정, 공포되어 특수교육의 법제도적 규정을 보다 실효성 있게 추진할 수 있게 되었다.

무엇보다 의미있는 것은 이로 인하여 특수아동에 대한 공교육의 기회가 신장되었다는 것이다. 또한 이 법의 시행에 따른 특수교육진흥을 위한 중·장기 계획을 수립하게 되었으니, 교육적 측면과 아울러 대상아동들의 복지적 측면이 크게 강화되었다.

1994년 「특수교육진흥법」이 개정 공포(법률4716호)되어 교육부에 특수교육 담당팀이 구성되고 행·재정적 지원이 증대되었다. 특수교육기관과 대상의 확대가 이루어져 학습장애아도 교육대상이 되었고 순환교육, 치료교육, 완전통합교육, 직업진로교육을 강화 실시하게 되었다. 2007년 「특수교육진흥법」은 「장애인 등에 대한 특수교육법」으로 변경되었다.

1974년부터 대구대학교부설 특수교육연구소에서는 교육부 지원으로 전국맹학교의 초등과 교과서를 무상으로 출판, 공급하고 있으며, 1981년부터는 중등교과서까지 확대 실시하고 있다.

④ 관련단체 및 연구:우리나라 특수교육의 발전에 학교교육 못지않은 구실을 해낸 것은 특수교육 관련단체를 통한 활동과 연구이다. 심신장애인의 교육과 복지를 위한 단체는 비교적 많은 편이다.

그 가운데에서도 교육을 위하여 한국특수교육총연협회와 한국지적장애교육학회 및 한국지체부자유교육회, 한국정서학습장애아 교육학회, 한국시각장애연구회 등의 활동이 현저하다.

한국특수교육총협회는 대한교육총연합회 산하단체로서 특수교육관계자를 총망라한 교직단체이다. 1962년에 창립되었으며, 교육부와 긴밀한 관련을 가지고 특수교육진흥을 위한 정책자료 제공, 건의교섭 등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특히 낙후된 특수교육의 발전을 촉진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법적 뒷받침이 필요하다는 것을 절실히 느껴 「특수교육진흥법」의 제정을 건의, 교섭, 뒷받침하여 1977년 12월 16일에 국회를 통과하고 1979년부터 시행을 보게 되도록 촉진하는 데 큰 기여를 하였다.

한국지적장애교육학회는 1974년 전국 특수학급 담당교사를 중심으로 조직된 단체로서 각종 연수와 세미나 등으로 특수교사나 관계전문직의 자질 향상에 많이 기여하고 있는 바 현재는 지적장애아교육 관계자를 총망라한 단체로서 각 시·도 21지부 조직까지 가지고 있다.

한국지체부자유교육학회는 2000년 1월 20주년 기념국제학술 세미나를 개최하였고 논문집 제35집을 발행하였고 연수회를 40회 가졌다. 특수교육에 관한 연구는 대학부설연구소를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한국특수교육총연합회는 매년 현장연구논문 발표대회를 개최하고 있으며 1985년에는 150여 편의 발표가 있었다. 또한 1973년 대구대학교 대학원에 석사과정이 설치되고 1975년에는 박사과정이 설치되었으며, 이어서 단국대학교와 이화여자대학교의 대학원에도 석·박사과정이 설치되었다. 여기에서 해마다 많은 논문들이 발표되고 있다.

⑤ 복지:1979년에는 범태평양국제재활회의가 서울에서 개최되어 재활사업 발전의 전환점이 되었으며 1972년 4월 20일 한국장애자재활협회는 이 날을 ‘재활의 날’로 정하여 기념행사를 가지는 등 사회의 관심을 촉구하고 있다.

또한 정부는 1981년에 유엔이 정한 ‘장애인의 해’를 기하여 「심신장애자복지법」을 제정, 공포하였는데, 1989년 12월 31일에 「장애인복지법」으로 개정되었다.

그리고 같은 날 「장애인고용촉진법」도 제정되어 취업기회의 확대를 보장하게 되었다. 1988년 세계장애인 올림픽대회인 파라림픽대회가 한국에서 개최되어 장애인과 더불어 삶의 질을 향상시키자는 의식이 확산 심화되었고, 1994년에는 한국특수교육 100주년 기념행사를 갖고 기념 엽서 및 우표도 발행하고 특수교육백서(교육부)와 대한특수교육학회편의 『한국특수교육 100년사』의 간행은 기념비적인 일로서 한국특수교육의 선진화·전문화 등에 공헌했다.

문제점 및 전망

최근 특수교육과 재활대책은 과거 어느 때보다 급속한 발전을 하고 있다. 특히 현대사회에 있어 인간본위적 가치관의 존중, 계속적인 경제발전, 민주적 사회체제의 발전, 정보과학기술의 혁신, 의학의 발달 등으로 국가사회는 특수교육과 재활에 많은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리하여 「특수교육진흥법」과 「장애자복지법」이 제정되었고, 그 시행령이나 규칙에 따라 교육기회를 확대하는 학교·학급의 증설과 행정적·재정적인 지원, 교육과정의 제정 및 개정과 이에 따른 교사용지도서의 개발·보급, 교사의 양성 및 재교육, 직업지도 및 조기교육에 의한 평생교육의 체제확립 등이 활발히 추진되고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개선해야 할 당면과제들이 많이 남아 있다.

① 특수아동의 발생을 예방할 수 있는 「모자보건법」·「공해방지법」 등의 철저한 시행이다. ② 조기발견, 진단, 판별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강화하는 일이다.

③ 조기치료·훈련·교육기관의 확충과 특수학교의 유치부 설치를 의무화하여 장애의 경감과 개선, 보상기능의 개발을 극대화하는 일이다. ④ 특수교육공학 및 재활공학의 개발과 보급에 진력하는 일이다.

⑤ 현재 특수학교교육은 사학에 의존하고 있는 바 사학의 행정적·재정적 지원과 공교육기관의 확대가 절실하다. ⑥ 치료교육의 효율화를 위한 재활전문교사의 정원 증원이 요청된다.

⑦ 직업교육 및 지도·훈련을 위한 진로지도 체계의 확립이 요구된다. ⑧ 개별화 수업의 실현을 위한 교재교구 자료의 개발과 제작·관리·보급·활용을 전담하는 교재창제도의 도입과 지원이 필요하다.

⑨ 유능한 특수교육 교사의 양성과 유치체제, 특수학교 교원의 국내외 연수제도와 우대책이 마련되어야 한다. ⑩ 특수학급의 증설과 분화가 요구되며 운영의 개선이 필요하다.

장차 특수교육은 선진외국의 이론이나 실천성과를 소개하는 데 머무르지 않고 한국화하는 데 힘써야 할 것이며, 특수아동의 생존·발달·교육·근로권 등의 권리를 보장하여 모든 특수아동에게 공교육으로서 완전 무상의무교육이 실시되어 독립된 생활로 삶의 질 향상에 힘써야 할 것이다.

아울러 완전참여와 평등이라는 이념에서 주류에로의 통합, 완전통합교육, 정상화, 탈분류화, 개별화교육, 고용의 의무화, 평생교육 등 비장애아동과 동등한 참여와 전인간적 복권인 완전자활이 국가와 사회의 전반적인 배려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참고문헌

『서유견문(西遊見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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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수교육학』(이태영·김정권, 형설출판사, 1981)
『최신특수교육원리』(이태영, 형설출판사, 1980)
『특수교육의 역사적 이해』(김병하, 형설출판사, 1977)
『한국특수교육의 발달과정의 연구』(안병즙, 1974)
『특수교육개론』(이태영, 집문사, 1963)
『서울맹학교창립50년』(서울맹학교, 1963)
『施政25年史』(朝鮮總督府, 1935)
The Life of Rev. William James Hall(Hall,R.S., Press of Eaton Mains, 1902)
Modern Education in Korea(Underwood,H.H., International Press, 1926)
The History of Protestant Mission in Korea 1832∼1910(Paik,L.G., Yonse University Press, 1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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