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지 ()

조선시대사
제도
조선시대 업무를 위임하며 작성해준 문서.
이칭
이칭
패자(牌子), 패자(牌字), 배지, 배자, , 패지(牌旨)
정의
조선시대 업무를 위임하며 작성해준 문서.
개설

조선시대 고문서 가운데 ‘패지’, ‘패자’, ‘배지’, ‘배자’, ‘ᄇᆡᄌᆞ’ 등으로 지칭되는 문서가 있었는데, 주로 전답 등을 매매할 때 상전이 자신의 노비에게 해당 매매 행위를 대행시키면서 작성해 준 사례가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러나 조선시대 문서 중에는 이러한 경우 외에도 궁방에서 수세(收稅) 등의 목적으로 발급한 도서패자(圖書牌子), 관아에서 발급한 관패자(官牌子), 서원이나 문중에서 발급한 패자 등 다양한 용도의 패지(또는 패자)가 존재하였다.

즉, 패지는 조선시대에 사용된 문서의 일종으로서 전답 등을 매매할 때 위임장 역할을 했던 패지, 궁방에서 발급한 도서패자, 관이나 서원 등에서 어떤 사안에 대한 처리를 지시하면서 발급한 패자 등이 있었다. 이상의 패자들은 문서의 작성 양식이 대동소이하고, 위계상 고위에 있는 사람이나 기관이 하위에 있는 사람에게 어떤 일에 대한 이행을 지시하다는 점에서 동일한 특징을 갖고 있으므로 ‘패지’ 또는 ‘패자’라는 큰 범주에서 함께 다룰 수 있다.

내용

현재 남아 있는 실물 문서를 분석해 본 결과, 한자로는 ‘패지(牌旨)’ 또는 ‘패자(牌子, 牌字)’라는 용어가 고르게 사용되었고, 한글로는 ‘배지’, ‘배자’, ‘ᄇᆡᄌᆞ’ 등으로 지칭되었다.

이미 중국에서도 패자(牌子)라고 지칭되는 문서가 있었으나, 조선에서 사용된 사례와는 문서의 형태나 용도상 차이가 있었다. 현재 남아있는 패지 가운데 절대 다수는 매매계약서인 명문(明文)과 짝을 이루는 위임장 성격의 패지이고, 이 외에 궁방, 관아, 서원, 문중 등에서 발급한 각종 패자가 일부 남아 있다.

각종 매매에 사용된 패지에는 일반적으로 매매를 위임받은 하인의 이름, 매매 사유, 매매 물건, 해당 물건을 적절한 가격에 팔아오라는 내용 등을 구체적으로 적고, 마지막에 문서의 작성 날짜와 문서 발급자의 성명 및 서명을 기재하였다. 이에 대해서는 조선 후기 문서작성 실무참고서라 할 수 있는 『유서필지(儒胥必知)』에 ‘사부가 가사패지(士夫家家舍牌旨)’ 라는 문서 작성례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궁방에서 발급한 도서패자는 주로 궁방에서 관할하는 토지가 있는 지역의 삼공형(三公兄)이나 도장(都掌) 등에게 세금 납부나 특정 지시사항을 독촉할 때 사용되었다. 궁방의 붉은색 인장이 찍혀 있었으므로 도서패자라고 지칭되었다. 실물은 몇 건 남아있지 않지만, 몇몇 궁방의 등록(謄錄)에는 도서패자의 내용을 등서해 놓은 사례가 많다.

관아, 서원, 문중 등에서 발급한 패자도 발급 주체가 특정 사안에 대한 지시사항을 내릴 때 사용한 것으로서 문서의 작성 양식은 앞서 설명한 다른 패자들과 동일하다. 다만, 관에서 발급한 패자에는 관인(官印)이 사용되었고, 서원이나 문중에서 발급한 패자에는 해당 서원이나 문중의 인장이 사용되었다. 서원에서 발급한 패자 가운데에는 조선 후기 화양서원에서 발급한 패자가 유명하여 일명 ‘화양묵패(華陽墨牌)’ 라고 지칭되기도 하였다. 그만큼 화양서원에서 발급한 패자의 위세가 대단하였음을 알려준다.

변천과 현황

패자(牌子)라는 용어 자체는 다양한 경우에 사용되었다. 나무 재질에 문자를 새겨 제단(祭壇)에 올려놓거나 몸에 패용하는 패자도 있었고, 홍패(紅牌)·백패(白牌) 등과 같이 문서의 이름에 패(牌)자가 들어가는 문서를 패자라고 지칭하기도 하였다.

조선에서 패지라고 표기하고, 읽기를 배지 또는 배자로 하게 된 연유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조선 후기 실학자 정약용은 『아언각비(雅言覺非)』의 ‘패자’ 항목에서 군령을 전달하던 용도로 사용되었던 패자를 속유(俗儒)들이 잘못 이해하여 조선 특유의 패자가 출현한 것으로 봤으며, 패지의 ‘지(旨)’자도 황제의 명을 지칭하는데 사용하는 말을 참람하게 사용한 것이라고 지적하였다.

현재 남아 있는 패지 또는 패자는 적어도 300여 점 이상인 것으로 파악되고, 작성 연대는 대부분 1500년대 이후로 보인다.

의의와 평가

패지 또는 패자가 문서로서 어떤 기능을 하였는지를 면밀히 살펴봄으로써 조선시대 사회상이나 법제도의 일면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전답의 매매에 사용된 패지의 성격을 놓고 현대법적 시각에서 위임장으로 볼 수 있는지의 여부를 따져보는 것이 그 좋은 예이다. 또한 궁방, 서원, 문중 등에서 사용한 패자의 성격도 이와 유사한 성격의 다른 문서와의 비교 연구를 통해 패자 특유의 기능과 역할을 살펴볼 수 있다.

참고문헌

『특권문서로 본 조선사회』(김혁, 지식산업사, 2008)
『근세의 법과 법사상』(박병호, 진원, 1996)
『증보판 한국고문서연구』(최승희, 지식산업사, 1989)
「고문서 패자에 관한 고찰」(박성호, 『국학연구』 15, 한국국학진흥원, 2009)
「한글 토지매매명문과 배지(牌旨)에 대한 일고찰」(정승혜, 『국어사자료연구』 1, 국어사학회, 2000)
「조선후기 한글 고문서의 양식」(홍은진, 『고문서연구』 16·17, 한국고문서학회, 2000)
한국학자료센터 한국고문서자료관(archive.kostma.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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