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안현(利安縣) 사람이다. 문장에 능하여 당시의 표(表)와 전(箋)이 모두 하천단의 손에서 나왔다고 한다. 만년에는 불경을 좋아하였고, 고종이 일찍이 몽고의 침입을 피하여 대사동(大寺洞)에 이어(移御)하고자 할 때 지형이 좋지 않다고 하여 중지시켰다.
1254년(고종 41) 비서감으로 국자감시를 주관하여 시(詩)·부(賦)로 이소(李邵) 등 33인을 뽑았다. 이 때 고원(誥院)에 함께 있던 최온(崔昷)이 그의 명성을 시기하여 가볍게 대하였으나 굴하지 않았으며, 이규보(李奎報)·최자(崔滋)·김구(金坵)·이백순(李百順) 등과 함께 당시의 문단을 휩쓸었다. 특히, 외교문서에 능하였다. 판위위사(判衛尉事)로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