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에 현유(賢儒)의 위패를 봉안, 배향하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하여 창건되었다. 창건연대는 미상이며 1417년(태종 17)에 현재의 위치로 이건하였다. 1907년에 현감 이종호(李鍾浩)가 명륜당을 중수하였고, 1972년에 교궁(校宮)의 전체적인 보수가 있었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6칸의 대성전, 7칸의 명륜당, 각 5칸의 동재(東齋)와 서재(西齋), 내삼문(內三門) · 외삼문(外三門) · 고사(庫舍) 등이 있다. 이 향교는 동재 · 서재와 명륜당 등의 기단이 매우 높은 것이 특이하다. 대성전에는 5성(五聖), 송조4현(宋朝四賢), 우리 나라 18현(十八賢)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건물 배치는 앞에 교육 공간을 두고 뒤에 제사 공간을 배치한 전학후묘(前學後廟)이다. 대성전은 겹처마 맞배지붕으로 양측 면에는 방풍관을 설치하였고, 명륜당은 누각 형식이다.
조선시대에는 국가로부터 토지와 전적 · 노비 등을 지급받아 교관 1명이 정원 30명의 교생을 가르쳤으나, 조선 후기 이래 향교는 교육 기능이 쇠퇴하고 대신 선현에 대한 제향을 통한 교화 기능을 주로 담당하였다. 봄 · 가을에 석전(釋奠)을 봉행(奉行)하며, 초하루 · 보름에 분향하고 있다.
1985년 경상북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으며, 향교의 운영은 전교(典校) 1명과 장의(掌議) 수명이 담당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