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6년 2월 17일에 전라남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이곳은 해남군의 최남단으로 현재와 같은 방파제가 만들어지기 전에는 월송리의 바로 앞까지 바닷물이 들어왔었다고 한다. 즉 조산 고분은 원래 해변에 위치하고 있었던 것으로 짐작되고 있다. 이 조산 고분이 알려진 것은 실로 우연한 기회에 의해서이다. 즉 1973년에 증산부락의 주민들이 방송용의 스피커를 설치하기 위하여 제토작업을 벌이다가 발견하게 되었다.
조산은 평지에 반구형으로 불거진 구릉 형태인데 분구형으로 남아있는 밑변의 직경이 약 17m이고, 높이는 약 4.5m로서 그 남쪽에는 대밭이 우거져 있고, 대밭의 아래에는 민가가 자리하고 있었으며, 주위는 밭으로 경작되고 있었다. 주민들은 이 구릉이 자연적인 것이 아니라 인공적으로 조성된 것임을 알고는 있었으나, 고분으로는 생각하지 못하였다. 조산 고분에 대한 본격적인 조사와 실측이 이루어진 것은 1982년이었다. 발견 당시로부터 10년 정도의 세월이 흐른 이후의 일이다. 그럼에도 분구와 매장의 주체시설인 돌방(石室)은 온전히 남아있었지만 유물들은 당시 마을주민들에 의하여 임의로 수거되었기 때문에 자세한 출토정황은 알 수 없다.
조산 고분은 생토면 위에 성토한 분구의 한 가운데에 돌방을 축조하고 있다. 돌방의 바닥은 생토면에서 1.2m 위에 해당하는데 이렇게 분구 중에 돌방이 축조되어있다는 사실이 가장 중요한 특징으로 꼽힌다. 또한 일반적인 백제의 돌방무덤과는 달리 동∼서 장축을 취하고 있는 점도 눈에 띄는 점이다. 돌방은 서벽의 중앙에 입구와 널길(羨道)시설을 마련한 굴식돌방무덤(橫穴式石室墳)인데 바닥은 판돌 1매를 깔고 있으며, 벽면은 판돌(板石)과 깬돌(割石)을 섞어서 축조하였다. 장방형(長方形)의 형태를 하고 있는 한편 벽면은 위로 올라가면서 내경되게 축조하였으며, 벽면의 위에는 3매의 판돌을 이용하여 덮고 있다.
이 조산 고분에서는 194점에 달하는 방대한 유물이 출토되었다. 유물 중에서 대종을 이루는 것은 역시 토기였다. 그 중 구멍뚫린입큰항아리는 전남지역에서 발견되는 특징적인 기형으로서 그 북한계선은 전북지방이 되고 있는데 전남지역에서 크게 유행한 독널무덤(甕棺墓)과 더불어 백제토기 중에는 매우 특이한 기형이라고 할 수 있다. 토기 이외에 철기류도 많은 종류가 출토되었는데, 그 중에는 백제 굴식돌방무덤에서 출토의 예가 드문 마구도 있었다. 또한 여기에서는 동경(銅鏡)도 출토되었는데 이 역시 다른 지역의 백제 고분에서는 출토의 예가 없는 것들이다. 그러므로 조산 고분은 고분의 연구에서 고분의 성격과 계통, 특히 주변지역에서 널리 유행한 독널무덤과의 관계를 구명하는데 있어 좋은 단서가 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