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8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윤덕희가 1719년(숙종 45)에 부친 윤두서의 작품을 모아 화첩으로 꾸민 것으로『가전보회(家傳寶繪)』와 『윤씨가보(尹氏家寶)』 2종류가 있다. 비단 바탕에 채색으로 그렸고, 크기는 32.8×40.3㎝이다. 해남 윤씨 종가의 윤형식이 소장하고 있다.
1722년(경종 2) 남쪽 지방을 여행하던 이하곤(李夏坤)이 11월 16일에 해남 녹우당(綠雨堂)에 들렀을 때 윤덕희가 윤두서의 화권(畵卷)을 보여주면서 남의 집에 소장한 윤두서의 그림을 다른 그림으로 바꾸어 와서 그 중에 좋은 것만 골라 화첩을 만들었다고 하였는데, 바로 이 두 화첩이 그 당시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가전보회』에는 산수화(山水畵)와 산수인물화(山水人物畵) 15점, 화조화(花鳥畵) 3점, 마도(馬圖) 1점, 고사인물화(故事人物畵) 1점, 사군자(四君子) 1점, 용도(龍圖) 1점, 초서(草書) 1점 등 22점의 작품이 실려 있다. 이 화첩은 모두 부채그림으로 되어 있다. 초서로 쓴 「차의정무사(此意靜無事)」(1715년)는 과감한 장법과 유려한 흐름 속에서도 힘찬 필세를 구사한 작품이다. 「희룡행우(戱龍行雨)」는 용을 그려 비를 내려주기를 기원하는 화룡기우(畵龍祈雨)의 화제로서 부채 상단에 비구름을 몰아오는 용의 모습을 부채살의 흐름과 상응하도록 하여 비를 쏟아 붓는 듯이 표현하였다.
『윤씨가보』에는 산수화와 산수인물화 23점, 풍속화(風俗畵) 5점, 나한도(羅漢圖) 2점, 인물화 4점, 사생도(寫生圖) 3점, 마도 5점, 화조화 2점 등 모두 44점의 작품이 실려 있다. 이 화첩에는 그의 회화사적 의의를 살필 수 있는 중요한 작품이 다수 실려 있는데, 풍속화인 「짚신삼기」, 「나물캐기」, 「선거도」 등은 18∼19세기에 유행하는 풍속화의 선구적인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짚신삼기」를 보면 이전의 산수인물화 형식을 빌어 등장인물만 고사(高士)에서 농부로 바꾸어 그림으로써 새로운 풍속화를 시도하고 있다.
또 윤두서는 말을 사랑하여 말을 타지 않았고 시종들에게 말을 함부로 부리지 못하게 하였다고 한다. 이처럼 극진한 애정 속에 그린 말 그림이 그의 장기가 되었는데, 이 화첩에 실린 「유하백마」가 그의 대표적인 예이다. 바람에 흔들리는 버드나무를 배경으로 매우 정연한 자세의 말을 대비시킨 단조로운 구성이지만, 치밀하게 그린 버드나무와 섬세한 필치로 묘사한 말에서 사실적이면서도 깊이 있는 표현력을 엿볼 수 있다.
이 작품들을 본 이하곤은 “이것들은 평생에 뜻을 얻은 보배들이다”라고 평가하였는데, 그의 화풍과 회화사적 업적을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작품임에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