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시대로부터 고려 전기까지 창작되었으며, 도솔가(兜率歌)와 사뇌가(詞腦歌)도 포함한다. 중국시가에 대한 우리 나라 고유의 시가를 지칭하기도 하며, 신라가요 · 신라시가라고도 부른다.
도솔가는 오늘날의 농악이나 쾌지나칭칭 · 강강수월래에서 볼 수 있는 회악(會樂) · 원무가(圓舞歌) · 윤무가(輪舞歌)의 성격을 가진 것과, 불교의 도솔(tusita : 欲界六天)과 관련된 월명사(月明師)의 <도솔가>로 나누어진다.
전자를 도율가(또는 두율가)라 부르고 후자를 도솔가라 구분하여 부르기도 한다. 이러한 도솔가의 의미와 개념에 의하여 도솔가는 향가 중에서 도율가로 일컬어지는 유리왕대의 <도솔가>와 월명사의 <도솔가>에만 쓰이는 명칭이다.
사뇌가는 처음에 사뇌야(詞腦野 : 신라의 수도인 경주주변을 사릿들이라 불렀음.)지방에서 주로 승려계층을 중심으로 유포되다가 뒤에 신라시가 전체를 대표하게 된 일종의 정형시이다. 사뇌가가 신라시가 전체를 대표하게 된 것은 ≪균여전 均如傳≫에 기인한다.
신라향가 전체를 통하여 사뇌가라는 명칭은 <찬기파랑사뇌가 讚耆婆郎詞腦歌> 및 <신공사뇌가 身空詞腦歌>와 ≪균여전≫ 소재의 향가에서만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사뇌가는 사뇌격조(詞腦格調)로 노래된 극히 일부의 가요에 한정된 개념으로 통설화되고 있다.
종래에는 향가의 개념을 중국 시가에 대응하는 ‘우리 나라 노래’ 또는 ‘우리말 노래’로 이해하여 신라시대부터 고려시대에 이르는 우리말로 된 노래라면 모두 향가로 이해했으나 최근에는 그 가운데서도 ‘작자가 분명한 개인 창작의 시가’ 또는 ‘젓대나 가야금 · 향비파 같은 선율악기를 동반한 세련된 고급의 가악’으로 한정하여 이해하는 경향이 대두되었다.
이에 따라 종래 향가로 이해하던 <해가> · <지귀주사> · <비형랑주사> 같은 주술가요나 <풍요>와 같은 민요, <무애가>(원효가 지음)와 <산화가> 같은 화청(和請 : 불교의 포교를 위한 방편으로 생성된 교술적인 弘法가요로서, 북이나 목탁 · 꽹과리 같은 장단악기의 반주가 따름.) 등의 노래는 개인 창작의 고급음악이 아니므로 향가에서 제외한다.
향가의 하위 장르로는 월명사의 <도솔가> 같은 주술계 향가, 유리왕대의 <도솔가> · <회소곡> · <사내악> · <돌아악> 같은 차사(嗟辭) 사뇌계 향가, <헌화가> · <양산가> · <해론가> 같은 민요계 향가, 이른바 10구체 향가라 불리는 사뇌가 등의 네 종류를 든다. 여기에 도솔가를 향가의 하위 장르로 보는 견해도 있다.
또한 사뇌가는 <모죽지랑가> · <혜성가> · <찬기파랑가> · <안민가> 같은 화랑집단 중심의 풍월계 향가와 <원왕생가> · <도천수대비가> · <우적가> 같은 불교신앙 중심의 화청계 향가로 그 성격을 나누기도 한다.
현재 전하는 향가는 ≪삼국유사≫에 14수, ≪균여전≫에 11수로 모두 25수이다. 이들을 시대순으로 제시하면 〈표〉와 같다.
작품명 | 작자 | 연대 | 형식 | 출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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薯童謠 | 薯童 | 신라 진평왕대 (579~631) | 4구체 | 삼국유사, 권2 武王條 |
彗星歌 | 融天師 | 신라 진평왕대 | 10구체 | 삼국유사, 권5 融天師彗星歌 |
風謠 | 민중의 공동작 | 신라 선덕왕대 (632~647) | 4구체 | 삼국유사, 권4 良志使錫 |
願往生歌 | 廣德 또는 그 아내(?) | 신라 문무왕대 (661~681) | 10구체 | 삼국유사, 권5 光德, 嚴莊 |
慕竹旨郞歌 | 得烏 | 신라 효소왕대 (692~702) | 8구체 | 삼국유사, 권2 竹旨郞 |
獻花歌 | 牽牛老人 | 신라 선덕왕대 (702~737) | 4구체 | 삼국유사, 권2 水路夫人 |
怨歌 | 信忠 | 신라 효성왕 1년 (737) | 10구체 (현존8구) | 삼국유사, 권5 信忠掛冠 |
兜率歌 | 月明師 | 신라 경덕왕 9년 (760) | 4구체 | 삼국유사, 권5 明月師兜率歌 |
祭亡妹歌 | 月明師 | 신라 경덕왕대 (743~765) | 10구체 | 삼국유사, 권 明月師兜率歌 |
讚耆婆郞歌 | 忠談師 | 신라 경덕왕대 (743~765) | 10구체 | 삼국유사, 권2 忠談師 |
安民歌 | 忠談師 | 신라 경덕왕대 (743~765) | 10구체 | 삼국유사, 권2 忠談師 |
禱千手觀音歌 | 希明 | 신라 경덕왕대 (743~765) | 10구체 | 삼국유사, 권3 芬皇寺千手大悲 |
遇賊歌 | 永才 | 신라 원성왕대 (785~798) | 10구체 | 삼국유사, 권5 永才遇賊 |
處容歌 | 處容 | 신라 헌강왕 5년 (879) | 8구체 | 삼국유사, 권2 處容郞望海寺 |
禮敬諸佛歌 | 均如大師 | 신라 신덕왕 6년 ~고려 광종 24년(917~973) | 10구체 | 大華嚴首座 圓通兩重 大師 均如傳 |
稱讚如來歌 | ||||
廣修供養歌 | ||||
懺悔業障歌 | ||||
隨喜功德歌 | ||||
請轉法輪歌 | ||||
請佛住世歌 | ||||
常隨佛學歌 | ||||
恒順衆生歌 | ||||
普皆廻向歌 | ||||
總結無盡歌 | ||||
〈표〉 現傳하는 鄕歌 |
이 밖에 고려 예종이 1120년에 지은 <도이장가 悼二將歌>도 일반적으로 향가에 귀속시키고 있으며, 정서(鄭敍)가 고려 의종 때(1146∼1170)에 지은 <정과정곡 鄭瓜亭曲>도 현재 고려속요로 전하나 그 형태가 10구체 향가와 흡사하다고 보아 향가의 범위에 넣기도 한다. <도이장가>와 <정과정곡>을 포함하여 현존 작품은 27수이다.
향가 가운데는 비록 작품 자체는 전하지 않으나, ≪삼국유사≫ · ≪삼국사기≫ · ≪고려사≫ · ≪동도악부 東都樂府≫ · ≪증보문헌비고≫ · ≪대동운부군옥≫ 등의 문헌에는 한역(漢譯)된 가요 혹은 작품의 제목이나 창작경위를 서술해 주는 설화가 상당수 보이고 있어 향가의 보조자료로서 중요시된다. 이들을 ‘실전향가(失傳鄕歌)’라 부른다.
실전향가는 그 성격에 따라 의식가(儀式歌) · 민요 · 연락가(宴樂歌) · 찬가(讚歌) 등의 집단가요와 개인작의 서정가요로 나눌 수 있다.
의식가요로는 물론 주사(呪詞)도 포함되는데, 유리왕대의 <도솔가>(순수 서정시가로 보는 이도 있음.) · <치술령곡 鵄述嶺曲> · <달도가 怛忉歌> · <비형랑주사 鼻荊郎呪詞> · <지귀주사 志鬼呪詞> · <해가 海歌> · <이견대가 利見臺歌> · <신공사뇌가> · <산화가 散花歌> 등을 포함시킬 수 있다.
일반민요로는 <회소곡 會蘇曲> · <장한성 長漢城> · <무애가 無㝵歌> · <방등산 方等山> · <도파요 都波謠>를, 연락가로는 <동경 東京> · <안강가 安康歌> · <번화곡 繁花曲> · <여나산 余那山>을, 찬가로는 <해론가 奚論歌> · <양산가 陽山歌>를 각각 들 수 있다.
개인작의 서정가요로 추정되는 것은 <물계자가 勿稽子歌> · <우식악 憂息樂> · <실혜가 實兮歌> · <천관원사 天官怨詞> · <명주가 溟州歌> · <앵무가 鸚鵡歌> · <현금포곡 玄琴抱曲> · <대도곡 大道曲> · <문군곡 問群曲> · <목주가 木州歌> · <망국애가 亡國哀歌>를 들 수 있다.
향가의 장르적 성격은 상당히 복잡하다. 주자료(主資料)인 현존 25수의 향가만을 놓고 볼 때도 그렇거니와, 보조자료인 실전향가를 아울러 생각할 때는 더욱 복잡하다.
우선 향가 가운데는 <풍요 風謠>와 같은 민요도 있고, <혜성가 彗星歌> · <도솔가>와 같은 의식가도 있고, 이와 달리 개인작의 서정가요도 있다.
그래서 향가를 제신가(祭神歌) · 민요 · 사뇌가로 3분하여 장르체계를 세우기도 하고, 이보다 더욱 세분하여 민요[동요 · 참요(讖謠) · 군악(郡樂)포함] · 예능요(藝能謠)[금곡(琴曲) · 연희가무(演戱歌舞) 포함] · 제신가[무가 · 제축(祭祝) 포함] · 담가(譚歌) · 불사요(佛事謠)[사뇌가 · 보시(布施)동냥가 · 향찬(鄕讚) 포함] · 장가(長歌) · 창작가요[궁정가요 포함] 등으로 하위범주(下位範疇)를 설정하기도 한다.
그러나 향가를 세분할수록 서로 겹치는 경우가 많다. 이를테면, <찬기파랑가>는 창작가요이면서 사뇌가요 향찬이다. 이러한 향가의 세분은 장르체계에 혼란을 가중시킬 뿐이다. 이보다는 향가의 형태에 밀착시켜 민요격 향가(4구체)와 사뇌격 향가 곧 사뇌가(10구체 및 8구체)로 2분하는 방법이 보다 설득력을 가진다.
이처럼 향가라는 명칭은 장르적 성격이 확연히 다른 몇 개의 범주를 포함하는 상위개념으로 사용되므로 엄밀한 의미에서 장르 명칭은 될 수 없다.
향가의 개념 자체가 몇 개의 하위장르를 포함하고 그들 대부분의 작품들이 전하지 않기 때문에, 이들 하위장르를 향가라는 상위개념으로 편의상 통합할 때에 비로소 향가의 역사적 전개는 진술이 가능해진다. 이러한 관점에서 향가의 역사적 전개를 설정하면 다음과 같다.
① 형성기 : 신라 3대 유리왕∼10대 내해왕(1∼3세기), ② 발전기 : 10대 내해왕∼30대 문무왕(3∼7세기), ③ 전성기 : 31대 신문왕∼51대 진성여왕(7세기말∼9세기말), ④ 쇠퇴기 : 신라 52대 효공왕∼고려 18대 의종 (10∼12세기).
①에서 ②로 넘어가는 계기는 ≪삼국사기≫ 잡지 악조(樂條)에 기록이 보이는 내해왕(196∼230) 때의 악곡 사내악(思內樂) 혹은 사뇌악의 존재에 근거를 둔 것이다. 사뇌악의 출현은 향가가 악가(樂歌)로서의 형태를 굳히고 발전의 전기를 마련한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②의 시기에는 거문고의 명수인 물계자(勿稽子)의 등장, 백결선생(百結先生)의 <대악 碓樂>을 비롯한 악곡의 창작, 신라에 귀화한 우륵(于勒)의 십이곡(十二曲) 정리 등, 전문악사의 출현에 따른 악곡과 가요의 발달이 향가의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을 것이다.
또한, 화랑제도의 성립과 발전 및 불교의 전래와 호국불교로의 성장은 향가의 작가층으로서 화랑과 승려의 적극적인 참여를 가능하게 하고, 나아가 향가의 격조를 한층 높이는 데 이바지하였을 것이다.
②와 ③의 경계는 신문왕 9년(689)에 사내무(思內舞) · 한기무(韓岐舞) 등의 무악(舞樂)이 정리, 체계화되고, 가척(歌尺)이 전문적으로 사뇌가를 부르는 등 향가의 전성기를 맞이하였을 것으로 추정되기 때문이다.
③의 시기에 불교는 왕실중심에서 민중불교로 전환하는 가운데 동냥승[動鈴僧] · 가무승(歌舞僧)의 가요활동에 의한 향가창작, 화랑 및 낭도들의 풍류생활의 대폭 확대에 따른 창작활동, 특히 삼국통일 이후 향찰표기가 전면적으로 실현됨에 따라 향가를 자유롭게 문자화할 수 있었다는 점 등이 전성기를 맞을 수 있었던 제반조건이 되었다 하겠다.
③의 하한선은 진성여왕대에 ≪삼대목 三代目≫이라는 향가집을 편찬한 사실에서 잡을 수 있다. 그 이전에 왕성하게 창작되었던 작품을 일단 정리, 보존한다는 것은 향가창작이 쇠퇴의 기미를 보이기 시작하였다는 것을 입증할 수 있기 때문이다.
④의 시기에 결정적 계기가 된 것은 무엇보다 향가의 표기수단이었던 향찰이 그 전성기를 지나 지식인에게는 한문에 의하여 그 기능이 많이 대치되었다는 점, 향가의 주류작가층인 화랑 또는 낭도계층은 그 역사적 존재가치를 상실하게 되었으며, 승려계층은 구산(九山)을 중심으로 한 선종(禪宗)으로의 방향전환이 일어나 거리를 나다니며 가요를 읊는 대신 심산유곡의 사찰 속으로 잠입해버렸다는 점 등이 향가를 쇠퇴의 길로 들어서게 하였을 것이다. 그뒤 고려속요와 경기체가의 등장을 계기로 향가는 소멸하였을 것으로 보인다.
향가의 작가는 다양하지만 중심이 되는 작가층은 화랑과 승려계층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충담사(忠談師) · 월명사 같은 화랑 소속 낭도승과 균여 같은 승려 등이 향가를 잘 하기로 널리 알려져, 민간인은 물론 왕이나 도둑들까지 감복할 정도로 명성을 떨친 바 있다.
이 가운데 균여는 당대의 이름난 고승이지만 나머지는 그렇지 않은 것 같다. ≪해동고승전≫ 같은 문헌에 이들 이름이 보이지 않을 뿐 아니라, 옷차림이나 행색으로 보아 동냥승 내지는 가무승 계층일 가능성이 짙다. 또한, 월명사는 승려이면서 낭도였으며, 아울러 주술적인 직능을 가진 것으로 보아 융천사(融天師)와 함께 주술사(呪術師)로 짐작되기도 한다.
한편, 기록에 보이는 상당수의 향가작가가 실존인물이 아니라 그 배경설화와 연관되어 이름지어진 가공인물일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
이를테면, 충담사는 경덕왕에게 <안민가 安民歌>를 지어 바친 작가로 되어 있지만, 왕으로 하여금 올바른 왕도를 펴서 백성들을 복되게 하여달라는 ‘충성의 말’을 내용으로 담은 가요와 관련되었으므로, <도천수관음가 禱千手觀音歌>의 작가 희명(希明)은 눈먼 자녀의 개안(開眼), 곧 ‘밝음을 기원’한 노래와 관련되므로, 융천사는 혜성이 심대성(心大星)을 범한 ‘하늘의 괴변을 융화시킨’ <혜성가>의 작가이므로, 월명사는 해가 둘이 아울러 나타난 괴변을 호국신인 미륵보살의 힘에 의하여 없애고 나라의 질서를 달이 밝듯 환하게 밝혀놓았다 하여서, 영재(永才)는 향가를 잘한 인물 곧 가요인인 ‘영언(永言)에 재능을 가진 인물’이므로 각각 그러한 이름이 임의로 붙여졌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 작가명이 설화상의 가공적 작명(作名)이라 하여도, 향가의 작자는 실제 존재하였을 것이며, 다만 이름을 잃은 채 전승되어오다가 설화에 맞추어 후대에 재명명(再命名)된 것으로 보인다. 향가 가운데는 작가를 확정짓기 어려운 것도 있고, 또 그 신분을 추정하는 데 엇갈린 견해를 보이기도 한다.
먼저 <원왕생가 願往生歌>의 작가는 광덕이라는 설, 광덕(廣德)의 아내라는 설, 원효(元曉)라는 설, 그 어느 것도 아닌 작가미상의 노래라는 설이 나와 있는데, 처음과 끝의 설이 유력시되고 있다.
<헌화가 獻花歌>의 작가 견우노옹(牽牛老翁)은 그 신분을 선승(禪僧)으로, 농민으로, 신적인 인물로 보는 견해가 있으며, <처용가>의 작자 처용은 화랑 · 무부(巫夫) · 선승 · 지방호족 출신 또는 이슬람상인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
한편, 최근(1989년) 부산에서 발견된 필사본 ≪화랑세기≫(이 책에 대하여 국사학계에서는 위작여부를 놓고 논쟁중임.)에 의하면 화랑집단은 무술과 협기(俠氣)에 뛰어난 호국선(護國仙)과 향가와 청유(淸遊)를 잘하는 운상인(雲上人)의 두 계통의 집단이 있다고 기록한 것으로 보아 향가의 중심 담당층은 불교 승려가 아니라 화랑집단 가운데 운상인 계통임을 알 수 있고, 그 가운데서도 상열가악(相悅歌樂)과 유오산수(遊娛山水)를 중심으로 하는 운상인 집단이 젓대와 같은 악기의 수련을 통해 향가를 특히 잘했음을 알 수 있다.
이에 따라 종래에 그 신분을 단순히 불교의 승려 혹은 주술사로 이해해 오던 융천사나 월명사, 충담사 등도 풍월도(風月道)를 신앙하는 화랑집단의 낭도승임을 보다 확실히 하게 되었다.
향가의 형식은 음악적 형식과 문학적 형식으로 나누어진다. 전자는 향가가 노래로 불려졌으며, 그 곡명이 ≪삼국사기≫ 악조에 다양하게 전함을 근거로 하나, 그 자세한 형식은 알 수 없다.
다만, ≪삼국유사≫에 전하는 향가가 일정하게 분절(分節)되어 수록되어 있는데, 그 분절양상이 문학적인 형식분절과는 상당한 차이를 보이고 있어, 이것이 곧 음악적 형식에 의한 분절임을 추측하게 한다.
이를 자세히 살펴보면, <서동요 薯童謠> · <헌화가> · <도솔가>는 3구로, <풍요>는 4구로, <우적가 遇賊歌>는 6구로, <제망매가 祭亡妹歌> · <안민가>는 8구로, <모죽지랑가 慕竹旨郎歌> · <혜성가> · <원왕생가>는 9구로, <찬기파랑가> · <도천수관음가> · <원가 怨歌>는 10구로 분절되어 있다(단, 처용가는 분절되어 있지 않음.). 여기에서 보통 감탄사로 된 낙구(落句)는 독립구로 계산에 넣지 않은 것이고, 또 <원가>의 경우 후 2구가 망실되었으므로 12구로 그 형식을 생각할 수도 있다.
향가의 문학적 형식은 4구체 ·8구체 ·10구체로 3분하는 것이 통상이다. 그러나 10구체설에 대하여 11구체설을 주장하는 경우도 있다.
이 3분법은 의미론적 단위에 의한 구분 방법인데, 현존 향가를 보면, <서동요> · <헌화가> · <풍요> · <도솔가>는 4구체로, <모죽지랑가> · <처용가> · <도이장가>는 8구체로, 앞에 소속되지 않은 ≪삼국유사≫ 소재의 향가 8수와 균여의 <보현십원가 普賢十願歌>11수 및 <정과정곡>은 10구체로 분류된다.
여기에 진화론적 사관에 의한 발생론이 곁들이게 되는데, 즉 이들 형식 가운데 4구체가 가장 오래된 것이고 10구체가 최종완성형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향가는 처음 4구체의 민요형식으로 시작된 서정시로서, 인간의 감정이 점차 복잡하여짐에 따라 보다 장형화(長型化)하려는 경향을 보이게 되어 4구체 ·6구체 ·8구체 ·10구체 사이를 방황하다가, 삼국통일기에 들어서자, 마침내 10구체의 사뇌가 형식으로 완결되었다는 견해이다.
그리하여 10구체 사뇌가 형식은 작품 전체를 다시 3장으로 구분할 수 있는데, 제1장과 제2장은 각 4행으로, 제3장은 2행으로 구성된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제1장만으로는 4구체와 같은 형식이고, 제2장까지만 보면 8구체와 같은 형식이 된다고 추정한다.
제3장은 낙구 · 격구(隔句) · 후구(後句)라고 부르며, 그 첫머리에 ‘아야(阿耶)’ 또는 그밖의 감탄사를 쓰는 것이 특징으로 되어 있다. 또한, 제1장의 제1행은 다른 행에 비하여 보통 그 길이가 짧은 것이 두드러진다.
그러나 이런 진화론적 가설은 현존 향가를 놓고 볼 때 많은 문제점이 있다. 우선, 현존 향가 중 가장 연대가 오래인 진평왕대에 4구체인 <서동요>와 10구체인 <혜성가>가 공존하여 있고, 신라시대 향가 가운데 가장 후대의 것인 <처용가>는 10구체가 아닌 8구체로 남아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8구체 향가는 4구체의 2배 형식이라기보다는 10구체의 압축형이라는 사실이 밝혀져, 오히려 10구체에서 8구체로 응축되었다는 역의 가설이 제시되고 있는 형편이다.
한편, 향가의 형식을 통사론적(統辭論的) 관점에서 민요격과 사뇌격으로 2분하는 견해가 있다. 즉, 향가의 형식은 작품 내부에 1개의 종결어미를 가진 민요격과, 제4·8·10구 끝에 나타나는 3개의 종결어미를 가진 사뇌격으로 구분되는데, 전자는 4구체 향가가, 후자는 8구체와 10구체 향가가 해당된다는 것이다.
이 가운데 8구체는 10구체의 제5구와 제6구가 생략되었을 뿐 그 형식의 의미는 10구체와 완전히 동일하기 때문에, 이 둘을 한 형식으로 묶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사뇌격은 종결어미가 나타나는 제4·8·10구를 경계로 3장으로 나누어지고, 각 장은 다시 전부와 후부로 나누어져 모두 6부절(部節)로 구성된다고 한다. 이처럼 사뇌격은 3장 6부절로 분석되는데, 이는 균여의 향가형식을 두고 최행귀(崔行歸)가 3구6명(三句六名)이라 한 것과 일치한다는 견해이다.
여기에서 3구6명은 향가의 형식 혹은 율격을 밝히는 데 중요한 열쇠가 된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 용어에 관한 해명에도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 이를테면, 3장6구로, 혹은 3장6부절로, 혹은 3연(聯)6구로, 혹은 제1·3·7구인 3구에 6음절을 유지한다는 견해 등이 그것이다. 아직도 정설로 굳어진 학설은 없으며, 좀더 밝혀져야 할 문제이다. 그리고 향가의 형식과 율격의 문제도 해독의 진전에 따라 좀더 밝혀질 것으로 생각된다.
향가의 성격은 주술적인 면과 불교적인 면에서 파악된다. 그리하여 향가의 밑바탕을 이루는 사상적 배경도 이 두 차원에서 해명되고 있다.
먼저 불교사상의 측면에서 향가와의 상관성을 보면, 월명사의 <도솔가>는 내세에 다시 현신(現身)하여 중생을 구제할 것으로 믿어지고 있는 미륵에 대한 신앙, 즉 미륵하생신앙(彌勒下生信仰)을 바탕으로 한 작품이고, <원왕생가>는 극락왕생을 핵심으로 하는 정토사상(淨土思想)과 관련되며, <도천수관음가>는 현세적 소망의 기구(祈求)가 바쳐지는 관음불에 대한 신앙을 바탕으로 하고 있고, <보현십원가>는 화엄사상의 가요적 설경(歌謠的說經)으로 알려져 있다.
그 밖에도 <제망매가>는 아미타사상의 색채가 짙으며, <도솔가>와 <혜성가>는 밀교사상과 연결되고, <처용가>와 <우적가>는 선교의 공사상(空思想)과 관련된다고 한다.
이보다 한걸음 더 나아가 불교사상의 전체상을 환상(還相)과 왕상(往相)으로 나누어 이에 따라 향가를 체계화하기도 한다. 즉, 환상은 ‘보살이 이승에 환생하여 일체중생을 제도(濟度)함으로써 이들에게 이익을 준다는 현실적 의미가 있는 사상’으로서 <서동요> · <헌화가> · <도솔가> · <산화가> · <풍요>등이 속한다고 한다.
왕상은 ‘보살이 자기의 선근공덕(善根功德)을 일체 중생에게 되돌려 베풂으로써 공생정토(共生淨土)하게 한다는 사상’으로서 <원왕생가> · <제망매가> · <찬기파랑가> · <우적가> · <보현십원가> 등이 그것의 표출이라 한다.
한편, 주술적 차원에서 향가를 보는 관점에 따르면 <도솔가> · <서동요> · <혜성가> · <원가> · <처용가> 등이 주사로서의 은유 원리를 갖춘 주가(呪歌)라 한다.
즉, <도솔가>는 그 기능과 효험에 있어서뿐 아니라 서술양식에 있어서도 분명히 주가이며, <서동요>는 인간의 주관적 의지가 투영된 사랑의 주가이고, <혜성가>는 변괴가 없어져야 할 현실을 언어에 의하여 선행적으로 묘사한 은유의 주가이며, <원가>는 소극적인 명령법을 간직한 주술적 기능이 잣나무를 시들게 한 주력(呪力)을 보인 가요이며, <처용가>는 감염법칙의 주술원리와 일어나기를 바라는 바의 반대 상황을 진술한 역의 유사법칙이 내재한 주가라는 것이다.
이처럼 동일 작품을 놓고 한편에서는 불교가요로, 한편에서는 주술가요로 규정하고 있다. <도솔가> · <처용가> · <혜성가>의 경우 특히 그러하다.
이들 가요는 주술적 요소와 불교적 요소를 동시에 갖춘 가요로 이해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작품의 공간적 배경이 되는 신라사회는 이른바 무불습합(巫佛習合)의 문화적 구조를 가지고 있었으므로, 향가 또한 주술적인 것과 불교적인 것의 융합에 바탕을 둔 가요가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향가의 성격을 보다 정밀하게 파악하여 이보다 세분하는 경우도 있다. 이를테면, <안민가> · <우적가> · <보현십원가>는 수심요결(修心要訣)로 보고, <도천수관음가> · <원왕생가>는 기원 · 계청(啓請)으로, <모죽지랑가> · <찬기파랑가> · <제망매가>는 찬가로, <도솔가> · <혜성가> · <원가>는 주사로 보는 견해가 그것이다.
이 가운데 찬가의 성격을 중시하여 향가, 특히 사뇌가를 중국의 한찬(漢讚)이나 일본의 화찬(和讚)에 대응하는 '향찬(鄕讚)'으로 일괄하여 성격을 규정하기도 한다. 그러나 실제로 향가 가운데는 찬가적 성격을 가지지 않는 가요도 상당히 보이므로 찬가문학인 '향찬'으로 일괄하는 데는 문제가 있다. 그리고 기원 혹은 기도의 가요와 찬가와는 구별할 필요가 있다.
이 둘은 종교적인 예배행위에 있어서 불가분의 관련을 가지지만, 찬가는 어떤 인물 · 국가 · 풍경 등에의 찬양을 비롯하여 종교적인 귀의와 그러한 집단적 경험과 감정의 표현으로서 신적이거나 영웅적인 혹은 성스러운 대상에의 찬양 · 환호 · 감동을 그 중심 내용으로 하므로 ‘대상지향적 성격’을 가진다.
이에 반하여 '기도 또는 기원'은 나쁜 역신(疫神)을 몰아내고 선한 것을 불러들이려는 청원주술에서 비롯된 것으로, 청원이나 명령 혹은 직접적인 호소를 통하여 기원자 자신의 소원을 담기 때문에 칭명이나 탄원을 기본으로 하는 ‘자기지향적 성격’을 가진다.
<찬기파랑가>와 <칭찬여래가 稱讚如來歌>는 찬가의 대표적 예이며, <원왕생가>와 <도천수관음가>는 신라시대 기도의 한 전형이라 할 것이다.
그런데 <보현십원가>는 예찬적인 찬가의 요소도 있고 기도 및 기원적인 요소도 있어 양자의 복합체로 이루어졌다 하겠다. 그러면서 작품의 의미가 ≪화엄경≫의 보현행원품(普賢行願品) 속의 보현십원의 내용과 밀착되어 있어 교훈성이 중심이 되는 교훈시가로 볼 수 있다.
향가 가운데 <우적가>와 <안민가> 같은 작품도 교훈문학의 범주에 넣을 수 있다. 한편, <모죽지랑가>와 <원가>를 주술 및 종교적 성격의 가요로 보는 데에 반대하고 순수 서정 시가로 보는 견해도 있다.
즉, <모죽지랑가>는 작품 내부에 종교적 요소나 찬가적 속성을 전혀 포함하고 있지 않으며, 자아의 강조성이나 주관적 감정의 표백 및 여성적 정조로 표출되고 있어 순수한 서정가요이며, <원가>는 대상에 대한 원망의 감정을 자연과 정신의 병렬적인 대비에 의하여 표출한 순수서정가요라는 것이다. 예외적으로 <원가>의 경우는 주술적인 내적 긴장성을 완전히 배제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향가 전체가 원칙적으로 서정가요에 수렴된다는 데에 의견의 일치를 보인다. 이렇게 되면 향가의 서정성은 다시 찬송적 서정성(찬가) · 기원적 서정성(기도) · 주술적 서정성(주가) · 교훈적 서정성(교훈시)으로 세분할 수 있게 된다.
한편, 최근에는 향가의 사상적 기반이나 작품 성격을 종래와 달리 향가의 중심 담당층(작가층)과 사상적 기반이 화랑집단의 풍월도(뒤에 풍류도로 됨.)라는 점에 주목하여 단순히 불교사상이나 무교(巫敎)의 주술사상으로 이해하거나 혹은 무불습합사상에 기반한 것으로 이해하던 것에서 벗어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향가에 보이는 불교성이나 주술성, 혹은 유교적 기반은 화랑의 고유신앙인 풍월도가 선도(仙道)를 중심으로 하면서도 무교와 유 · 불 · 도의 삼교를 포괄하고 있는 데에 기인한 것으로 본다. 특히 향가의 주술성은 미개인의 전논리적 · 토템적 사유에 바탕한 무속적 주술력에 근거하는 것이 아니라, 기원자의 지극한 덕과 정성에 감응하는 풍월도의 고등종교적 힘에 바탕하고 있는 것으로 이해한다.
서정시로서의 향가는 어법적인 기능이나 서정표출의 근본 형태에 따라 다음과 같이 분류할 수 있다. ① 칭찬 · 환호 · 칭명 · 추종 · 감탄 등의 어법, ② 청원 · 탄원 및 기구 · 고백의 어법, ③ 명령 · 위압 · 칭명의 형태, ④ 격언 · 경구 · 권고의 형태, ⑤ 운율적 단순가요 형태 혹은 서술적 직설법의 형태 등이다.
여기에서 ①이 중심이 되면 찬가, ②가 중심이 되면 기도, ③은 주사, ④는 교훈시가, ⑤는 민요가 된다. 그리고 ⑤의 형태를 가졌더라도 그것이 주술적 혹은 종교적 마력을 행사할 만한 내적 긴장을 가질 때는 단순한 민요라 할 수 없다. <서동요> · <헌화가>의 경우가 그러하다.
또, 어느 형태, 어느 어법으로 표현되든 그것이 주술적 · 종교적 색채를 전혀 가지지 않을 때는 순수서정시로 볼 수 있다. <모죽지랑가>가 그 예이다.
향가는 위의 다섯 가지 어법 혹은 형태 가운데 어느 하나로 나타나지만, 실제 작품은 그러한 단순 요소보다는 여러 요소의 복합형태로 나타나는 것이 보통이다. 그만큼 향가는 복합적 성격을 가진 가요라 하겠다. 이를테면, <원왕생가>는 ①과 ②의 어법을, <예경제불가 禮敬諸佛歌>는 ①과 ④의 어법을 동시에 보이고 있다.
향가에 나타난 표현기교 내지는 수사문제를 밝히는 일은 쉽지 않다. 그것은 무엇보다 현존 향가의 어학적인 해독이 현재로서는 불완전하기 때문이다. 우선 대체적인 윤곽을 작품별로 살펴보기로 한다.
<원왕생가>에는 ‘달’을 통한 상징 돈호법(頓乎法)과 의인법이 쓰이고 있다. <제망매가>에는 죽음에 의한 ‘이별’의 원관념을 ‘낙엽’이라는 보조관념으로 전화(轉化)하고, 나뭇가지와 잎을 통하여 혈육의 관계를 표상한 기능적 비유가 직유법을 통하여 드러나 있고, 바람은 자연현상으로서의 의미와 생사를 가르는 초자연적 존재로서의 의미를 동시에 보여주는 중의법(重義法)으로서 나타나 있다.
<처용가>에는 두 사람을 가리키는 말로 신체의 한 부분인 ‘네 다리’란 간접증거로 표현함으로써 제유법(提喩法)을 보이고, 또 작품의 전체구조가 수수께끼 형태의 질문방식을 택하고 있어 선불교의 공안형식(公案形式)에 깊이 관련된다.
<찬기파랑가>의 경우 색채어를 비롯하여 달 · 구름 · 냇물 · 자갈 · 잣나무 · 눈[雪] 같은 자연물이 대립적인 상징의 구조로 짜여 있고, <도솔가>는 상징 · 의인화 · 돈호법 · 명령법의 복합체라 할 수 있다.
<원가>는 은유 · 직유 · 의인법 등 비유적 표현이 두드러지며, <풍요>는 점층적 구조의 반복법이 특성이다. <안민가>는 인칭적 은유가 주축이 되고, <헌화가>는 도치법과 상징법, <모죽지랑가>는 은유와 돈호법, <서동요>는 상황을 전도시키는 아이러니, <혜성가>는 상징과 완곡법(婉曲法), <보현십원가>는 바다와 물의 이미지를 통한 상징법이 두드러지게 보인다. 이처럼 향가의 수사적 특성은 서정시가로서 보일 수 있는 표현기교를 두루 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향가의 미의식은 ‘그 뜻하는 바가 매우 높고(其意甚高)’, ‘그 구절들이 깨끗하고도 아름답다(詞淸句麗)’라는 ≪삼국유사≫와 ≪균여전≫의 기록처럼 숭고하고 원융(圓融)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향가는 대체로 주술신앙 · 밀교신앙 · 미타신앙 · 미륵신앙 · 관음 및 정토신앙을 바탕으로 현실의 구체적인 재난이나 한계, 불만과 고뇌 등을 극복함으로써 숭고미를 드러내는 경우가 흔하다.
이를테면, <혜성가>와 <도솔가>는 주술신앙을 바탕으로 ‘주술적 숭고’를 구현하며, <원왕생가> · <제망매가> · <안민가> · <도천수관음가> · <보현십원가>등은 불교의 제신앙을 바탕으로 ‘불교적 숭고’를 구현한다.
그러나 이 두 가지는 확연히 구분되어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무불습합의 문화구조에 따라 주술 · 종교의 동질적인 융합을 보일 경우가 많다. <풍요> · <모죽지랑가> · <찬기파랑가> · <원가>의 경우는 현실의 고뇌와 아픔이 주술 혹은 종교적 신앙을 바탕으로 한 숭고성에 의하여 다소 제어, 조정되고 있어 파멸에까지 이르지는 않으나 비극미를 표층에 드러내고 있다.
<우적가>와 <처용가>는 신라 후기에 새로운 시대정신으로 풍미하기 시작한 선불교의 양면적 정신원리를 반영함으로써 숭고미와 희극미를 동시에 구현하고 있다. <서동요>와 <헌화가>는 민중의 발랄한 감정에 기초한 우아미를 구현하고 있지만, 그 이면에는 주술 혹은 불교신앙을 바탕으로 한 숭고성을 전혀 배제할 수는 없다.
전체적으로 볼 때 향가는 숭고미가 가장 핵심적인 미의식으로 나타나며, 이를 바탕으로 하여 약간의 비극미(비장미) · 우아미 · 희극미(골계미)가 함께 드러나는 문학이라고 할 수 있다.
향가는 문학사적으로 중요한 자료일 뿐만 아니라 고대 국어 연구에 있어서도 가장 중심적인 자료가 된다. 사서들에 보이는 인명이나 지명의 표기에서 시작하여 서기체(誓記體)나 이두문(吏讀文)으로 된 기록들이 없는 바 아니나, 그것들은 단편적인 어휘기록에 그치거나 변칙적인 반한문적 기록들이고 완전한 우리말 문장으로 된 자료로는 오직 향가가 있을 뿐이다.
다만, 향가는 그 표기방법이 한자의 새김(釋, 訓)과 음을 이용하여 우리말을 적는 일종의 차자표기방법(借字表記方法)인 향찰(鄕札)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해독(解讀)을 거치지 않고는 어학적 연구자료로도 이용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문학적 이해를 위한 문면의 확보도 될 수 없다는 데에 어려움이 있는데, 반세기 이상에 걸친 여러 연구자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만족할 만한 단계에까지는 도달하고 있지 못한 것이 현재의 실정이다.
19세기말까지는 향가를 해독하려는 시도가 있었다는 증좌를 발견할 수 없고, 20세기에 들어와서야 비로소 해독에의 길이 열리게 되는데, 이 단계의 작업이 주로 일본인 학자들에 의하여 영위되었다는 것도 눈에 띄는 일 가운데 하나이다.
초창기의 향가 해독자들이 다투어 <처용가>를 해독의 대상으로 선택한 것은 고려가요 가운데 가명과 내용이 비슷한 노래가 있다는 점에서 오히려 자연스러운 선택이었다고 할 수 있겠으며, 그 다음에 <풍요>나 <서동요>같이 비교적 길이가 짧고 내용이 간단해 보이는 것들에 관심이 퍼져간 것도 이해할 만한 일이었다.
향가 25수 전체에 대한 최초의 해독은 오구라 신페이(小倉進平)의 ≪향가 및 이두의 연구 鄕歌及び吏讀の硏究≫(1929)를 효시로 한다. 비록, <우적가> 같은 노래에 있어 일부 해독을 유보한 부분이 있기는 하나 25수 전체를 읽어냈다는 점에서 획기적인 업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오늘날의 안목에서 보면 상당한 허점이나 결함이 발견되고, 그가 해독의 기준으로 제시한 원칙들이 잘 지켜져 있지도 않은 것을 볼 수 있지만, 당시의 사람들, 특히 우리 나라의 식자들을 경탄시키기에 충분한 업적이었다.
오구라의 저작에 자극을 받고 각고 끝에 나온 양주동(梁柱東)의 ≪조선고가연구 朝鮮古歌硏究≫(1942)는 오구라의 경지를 넘어서서 향가해독을 본궤도에 올려놓았다. 이 책이 오랫동안 향가 해독의 정본(定本)으로서의 권위를 유지하여 왔다는 것은 향가에 대한 어학적 · 문학적 연구의 대부분이 그의 해독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입증될 수 있을 것이다.
그의 해독이 성공적일 수 있었던 이유는 해박한 지식과 광범위한 문헌 섭렵 및 강인한 천착 등의 종합적 결과이지만, 시작(詩作)의 경력을 지닌 문학적 직관의 공로도 간과될 수 없을 것이다.
양주동 이후의 해독작업은 지헌영(池憲英)의 ≪향가여요신석 鄕歌麗謠新釋≫(1947), 이탁(李鐸)의 ≪국어학논고 國語學論攷≫(1958), 김선기(金善琪)의 <향가의 새로운 풀이>(現代文學 145∼250호 사이 16회에 걸쳐 연재), 서재극(徐在克)의 ≪신라향가(新羅鄕歌)의 어휘연구(語彙硏究)≫(1974), 김준영(金俊榮)의 ≪향가문학 鄕歌文學≫(1979), 김완진(金完鎭)의 ≪향가해독법연구 鄕歌解讀法硏究≫(1980), 정창일(鄭昌一)의 ≪향가신연구 鄕歌新硏究≫(1987), 양희철(楊熙喆)의 ≪고려향가연구 高麗鄕歌硏究≫(1988), 김선기의 ≪엣적 노래의 새풀이 鄕歌新釋≫(1993), 유창균(兪昌均)의 ≪향가비해 鄕歌批解≫(1994), 강길운(姜吉云)의 ≪향가신해독연구 鄕歌新解讀硏究≫(1995)로 이어져 오며, 해독의 원칙과 실제 양면에 걸친 발전을 보고 있고, 그 결과에 따라 고대국어의 특징들도 어느 정도 부각되고 있으나, 더 많은 것이 앞으로의 연구에 기대된다 할 것이다.
한편, 북한 문헌의 개방에 따라 홍기문의 ≪향가해석≫(1956)과 정렬모의 ≪향가연구≫(1965)의 존재가 알려져 연구에 참조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