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직은 청주(菁州 : 지금의 진주)도독이었다. 822년(헌덕왕 14) 3월 당시 웅천주(熊川州 : 지금의 공주) 도독 김헌창(金憲昌)이 반란을 일으켜 무진주(武珍州 : 지금의 광주)·완산주(完山州 : 지금의 전주)·사벌주(沙伐州 : 지금의 상주)·청주 등의 도독 및 국원경(國原京 : 지금의 충주)·서원경(西原京 : 지금의 청주)·금관경(金官京 : 지금의 김해) 등의 사신(仕臣)과 여러 군·현의 수령들을 협박하여 복속시켰을 때, 당시 향영은 청주의 도독으로 있으면서 이에 복속되지 않고 도망하여 추화군(推火郡 : 지금의 경상남도 밀양)으로 달아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