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국 ()

조선시대사
인물
조선 후기에, 인목대비 폐비론을 주장하는 이이첨 세력에게 대항하다 처형된 문신.
이칭
국이(國耳)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미상
사망 연도
미상
관련 사건
폐모론
목차
정의
조선 후기에, 인목대비 폐비론을 주장하는 이이첨 세력에게 대항하다 처형된 문신.
생애 및 활동사항

자는 국이(國耳). 할아버지가 중추부경력(中樞府經歷) 허진(許震)이다. 생원으로 성균관에 들어간 뒤 1615년(광해 7)에 진사 정택뢰(鄭澤雷) 등 19인이 연명으로 소를 올려 이원익(李元翼)의 무죄를 호소할 때 참여하였다.

나아가 인목대비(仁穆大妃)의 폐위 여론이 나도는 가운데 대북파의 이이첨(李爾瞻) 등에게 대항하여 “대비를 폐하면 인심을 잃을 것이니 대비를 구원하여 인심을 얻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 일로 인하여 국문(鞠問: 왕이나 왕의 대행을 받은 관원이 신문을 함.)을 당하고 풀려났으나 1619년(광해 11) 인목대비가 폐위되어 서궁(西宮)에 유폐되자 다시 절도에 위리안치되었다.

참고문헌

『광해군일기(光海君日記)』
집필자
이상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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