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공암(孔巖: 지금의 서울 양천구). 자는 재중(在中), 호는 야당(埜堂). 양천군(陽川君) 허백(許伯)의 손자이며, 지신사(知申事)를 지낸 허경(許絅)의 아들이다. 어머니는 죽산박씨(竹山朴氏)로 박원(朴遠)의 딸이다.
1357년(공민왕 6) 당시 정당문학(政堂文學) 이인복(李仁復)의 문하에서 급제하여 교서교감(敎書校勘)에 제수되었으며, 이후 여러 벼슬을 거쳐 예의정랑(禮儀正郎)이 되었다. 우왕을 옹립하는 데 반대하였으며, 윤소종(尹紹宗)·조인옥(趙仁沃)·조준(趙浚) 등 뒷날 조선왕조 개국의 주역들과 친교가 있었다.
성품이 조용하며 권력에 아부하지 않았고 불교를 좋아하지 않았다. 은퇴한 뒤에는 사재를 털어 약을 사서 귀천을 가리지 않고 많은 사람들을 구호하였다. 50살이 못 되어 죽으니 사림(士林)이 크게 애석해하였다고 한다. 시호는 문정(文定)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