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에 현유(賢儒)의 위패를 봉안, 배향하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하여 창건되었다. 창건연대는 미상이며 임진왜란 후 현감 이영도(李詠道)가 구(舊)교동에 중건하였다가 1759년(영조 35) 현감 김광태(金光泰)가 현재의 위치로 이전하였다.
1901년에 현감 허고(許估) 등이 중수하였고 1914년 행정구역의 변경으로 달성군의 관할이 되었다. 1931년 군수 신현구(申鉉求) 재직시 대성전 · 동무(東廡) · 서무(西廡) · 명륜당 등을 중수하였다.
1969년에 명륜당을 보수하였고, 1974년에 대성전 · 명륜당 및 단청을 보수하였으며, 1975년에 동무 · 서무를, 1978년에 내삼문(內三門)을, 1979년에 외삼문을 각각 중수하였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6칸의 대성전, 8칸의 명륜당, 각 4칸의 동무와 서무, 각 4칸의 동재(東齋)와 서재(西齋), 내삼문 등이 있다.
대성전에는 5성(五聖), 송조4현(宋朝四賢)의 위패가, 동무 · 서무에는 우리 나라 18현(十八賢)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건축형태는 대지를 3단으로 조성하여 대성전과 명륜당이 축을 이루면서 좌우에 동무 · 서무, 동재 · 서재를 각각 배치한 전학후묘(前學後廟)의 형태이다. 대성전은 겹처마 맞배지붕으로 연화문을 새긴 주초석을 사용하였고, 후면은 자연석 덤벙 주초와 탑신석을 주초로 사용하였다. 명륜당도 대성전과 같이 겹처마 맞배지붕으로 중앙에 대청으로 좌우에 협실을 둔 중당협실형(中堂挾室形)이다. 동무 · 서무는 홑처마 맞배지붕이며, 동재 · 서재는 홑처마 맞배지붕 건물이고, 동재는 현재 주사(廚舍)로 사용되며, 좌측 칸은 부엌으로 개조되었다.
조선시대에는 국가로부터 전적 · 노비 등을 지급받아 교관 1명이 정원 30명의 교생을 가르쳤으나, 조선 후기 이래 향교는 교육 기능이 쇠퇴하고 대신 선현에 대한 제향을 통한 교화 기능을 주로 담당하였다. 봄 · 가을에 석전(釋奠)을 봉행(奉行)하며 초하루 · 보름에 분향을 하고 있다.
현풍향교의 대성전은 1995년 대구광역시 문화재자료(현, 문화유산자료)로 지정되었으며, 전교(典校) 1명과 장의(掌議) 수명이 운영을 담당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