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장사 홍균(洪鈞)의 아들이다.
1269년(원종 10) 서북면병마사가 되었다. 그러나 부임한 지 열흘만에 서북면병마사영(西北面兵馬使營)의 기관(記官) 최탄(崔坦) 등이 왕을 폐위하고 안경공(安慶公) 왕창(王淐)을 옹립한 임연(林衍)에 반대하여 난을 일으켰다. 홍녹주의 아버지 홍균이 서북면을 두 번이나 다스리면서 선정을 베푼 덕이 있었기 때문에 최탄이 그를 풀어주어 개경(開京)으로 되돌아왔다.
1274년 원나라에서 일본정벌을 위해 대선(大船) 300척을 요구하자 우복야(右僕射)로서 나주도도지휘사(羅州道都指揮使)가 되어 공장(工匠)과 인부를 징집하여 조선소로 보내고, 나주도(羅州道) 천관산(天冠山)에 가서 배를 만들 재목을 준비하였다.
1275년(충렬왕 1) 경령전(景靈殿)에서 제사 일을 맡아보았다. 1277년 세자조호(世子調護)가 되었다. 시호는 희순(熙順)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