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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진기(洪璡基)

법제·행정인물

 해방 이후 대검찰청 검사, 법무부차관, 법무부장관 등을 역임한 법조인.   관료·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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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역닫기영역열기 정의
해방 이후 대검찰청 검사, 법무부차관, 법무부장관 등을 역임한 법조인.관료·언론인.
영역닫기영역열기내용
1917년 경기도 고양(高陽)에서 출생했다. 본관은 남양(南陽), 호는 유민(維民)이다.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를 지낸 김신석의 사위이다. 1930년 3월 왕십리공립보통학교, 1934년 3월 경성제1고등보통학교를 거쳐 1937년 3월 경성제국대학 예과, 1940년 3월 경성제국대학 법문학부 법과를 졸업했다. 1940년 4월 경성제국대학 법문학부 조수로 근무, 10월 일본 고등문관시험 사법과에 합격해 1942년 3월 조선총독부 사법관시보로 경성지방법원 및 동 검사국에서 1년 6개월 간 근무했다. 1943년 12월 전주지방법원 예비판사, 1944년 9월 전주지방법원 판사에 임명되어 해방 때까지 재직했다.
광복 후 1945년 9월 미군정청 법제부 법제관, 10월 법제부 사법요원양성소 교수를 거쳐, 1946년 10월 사법부 법률조사국 법무관이 되었다. 1948년 11월 법무부 조사국장으로 대한민국 법전편찬위원회의 위원으로 위촉되었다. 1949년 6월 법무부 조사국장 겸 대검찰청 검사, 1950년 4월 법무부 법무국장 겸 대검찰청 검사에 임명되었다.
한일회담이 전개되었던 1951년부터 1953년까지 한국 측 대표 재산청구분과 위원장으로 활동했다. 1954년 2월 법무부 차관, 1955년 10월 제2대 해무청장으로 취임했으며, 1958년 2월 법무부 장관이 되었다. 1960년 3월 내무부 장관에 임명되어 재직 중 4·19 혁명을 맞았으며, 3·15 부정선거 및 4·19 발포명령의 책임자로 체포되었다. 1961년 12월 혁명재판소 상소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으나, 1963년 8월 석방되었다.
1964년 9월 라디오 서울방송 사장, 1966년 12월 중앙일보사 회장, 1969년 5월 동양방송 사장, 1975년 2월 중앙일보와 동양방송 대표이사에 취임했다. 1976년 제일합섬, 중앙개발, 삼성코닝, 삼성중공업, 삼성전자, 삼성물산 등의 이사를 지냈으며, 1980년 9월 중앙일보사와 동양방송 회장으로 취임해 활동 중이던 1986년 7월 13일 사망했다.
영역닫기영역열기상훈 및 추모
상훈으로는 1970년 대한민국 국민훈장 모란장, 1981년 4월 대만 문화장장(文化獎章), 1986년 대한민국 금관문화훈장 등이 있다.
영역닫기영역열기 참고문헌
영역닫기영역열기 집필자
집필 (1995년)
이강국
김희만(성화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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